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 센터의 장애인 응대 수준

유정과 내가 둘이 일정이 안 맞는 바람에 오래 전부터 가려고 했던 베이비페어에 함께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않은가. 다음 베이비페어는 출산 후가 될 텐데...

모처럼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미 고마운 지인 새내기 부부들이 육아용품도 많이 보내주었고 유정이 미리미리 당근거래도 해놓은 터라 새로 살 물건이 많진 않았다. 육아 용품 구매보다는 정말 모처럼 부모님과 떠나는 나들이라는 기분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 센터로 향했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센터라면 장애인이 혼자서 쇼핑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지원하는 시스템이 있으리라. 게다가 박람회가 열리는 홀까지만 가면 박람회 안전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충분히 혼자 쇼핑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까지 모험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보다는 베이비페어가 주는 그 활력과 꿈과 희망을 부모님과 함께 즐기고 싶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센터와 박람회 안전요원들의 장애인 지원 시스템을 굳이 테스트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늘은 나들이하는 날이니까. 만약 조금 더 도전 의식을 발휘했더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 센터와 베이비페어는 나 한 명쯤이야 충분히 지원해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기대하는 것도 과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 대한민국의 품격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센터의 장애인 응대 시스템은 내가 택시에서 내려서 부모님을 만나기까지 단 2분 사이에 냉혹한 현실을 철저히 자각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치 내가 지난 30년 동안 장애에 관해서 잘 모르고 살았던 사람인 것처럼, 내가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나를 대했다.

내게 일어난 일은 이것이다.


택시에서 나는 컨벤션 센터의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먼저, 상담원에게 베이비페어가 열리는 홀이 어느 쪽 문과 가까운지 물어 택시에서 내려야 할 위치를 정확히 확인했다. 상담원은 매우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다음으로, 조금 난이도를 높여서 나의 장애 상태를 설명하고 택시 하차 후 컨벤션 입구부터 홀까지 안내해 주는 서비스를 요청했다. 물론 그런 서비스를 명시적으로 안내받은 적은 없다. 그리고 정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서비스를 거부할 것을 대비해서 이전에도 그런 서비스를 받은 적이 잆다고 덧붙였다. 상담원은 잠시 해당 팀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확인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잠시 후 다시 연결된 상담원이 조금 난처한 목소리로 그런 서비스는 없는 것 같지만 일단 내 전화번호를 전달해주겠다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정말 이 정도 서비스가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잠시 후 담당 팀의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나에게 매우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객님, 이전에도 그런 서비스를 받았다고 하셨는데 아마 그때 안내를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서비스가 없어요. 고객님을 지원하러 나가려면 그 사이에 누군가는 자리를 이탈해야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요.”

“아, 그런가요? 제가 분명 그런 서비스를 받았는데요.”

“아마도 그때도 안 되는데 저희가 해드렸던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늘도 도와드리긴 할게요. 할 건데 일단 이런 서비스가 없다는 건 알아 주시고 다음부턴 어렵다는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도착하시면 전화 주세요. 저희가 마중 나가겠습니다.”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해서 담당 팀으로 전화했고 금세 안내요원이 나왔다. 입구 문을 열고 들어가서 몇 발자국을 더 가니 바로 베이비페어가 열리는 홀이 나왔다. 마침 바로 부모님이 나를 발견해서 내가 안내를 받은 시간은 채 30초가 되지 않았다. 내가 담당자와 통화한 시간과 안내를 받은 시간을 합하면 2분이 채 되지 않는다.

다행히 그 2분을 제외하면 이후의 일정은 아무런 문제 없이 스무스하게 흘러갔다. 부모님과 기분 좋게 박람회를 둘러보았고 기분 좋게 물건을 구매했고 우리 가족에겐 또 하나의 추억이 쌓였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장애를 뼛속까지 자각했다. 내 가슴에 남은 것은 또 하나의 상처다. 돌이켜 보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 부모님께 같이 가달라고 요청하면서 애써 나들이로 포장했다.

  실은 베이비페어에 혼자 갈 수 없다는 철저한 현실 인식이 아니면 애초에 부모님께 부탁을 안 했을 수도 있다. 나는 나를 기망했다.

• 상담원과 담당 직원에게 이전에도 서비스를 받았다고 신신당부했다.

  실제로 안내 서비스를 한두 번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이유는 서비스가 없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 이번 한 번만 더 도와준다는 말에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실은 속이 쓰렸다. 다음 번에 서비스를 거절당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장애가 있는 예비 부모일 수도 있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그 짧은 2분 동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 센터는 내가 컨벤션 센터에 혼자 올 수 없는, 혼자 와서는 안 되는 장애인이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마치 명백한 진리인 양 설파했다. 이것이야말로 실질적인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 아닌가? 이래서 학교에서 하는 장애 이해 교육, 직장에서 하는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은 다 위선이고 거짓인 것이다.

정작 장애인 당사자는 매일 같이 이런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다.

헛웃음이 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컨벤션 센터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다른 수많은 행사장들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이 점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내 통화를 듣고 계시던 택시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안내를 해준다니 코엑스는 다르군요. 제가 일산에 있는 킨텍스에 시각장애인 손님을 네 번 정도 모시고 갔는데 한 번도 전화 통화가 안 되더라고요. 매번 제가 안쪽까지 모셔다 드렸죠. 그래도 여긴 전화를 받네요.”

시각장애인으로 30년 살아 보니 좋은 점 5가지와 안 좋은 점 5가지

오늘은 김헌용 장애인 등록 30주년이다! 🦯

기념으로 시각장애인으로 30년 동안 살면서 좋았던 점 Best 5와 안 좋았던 점 Worst 5를 꼽아 본다.

참고로 사진은 장애인등록 30주년을 인증하는 복지카드. 최초 발급일이 1994년 1월 12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개인정보 부분은 캐릭터 이미지로 가려놓았다.


🙌 시각장애인으로 30년 살아 보니 좋은 점 Best 5

  • 군대를 안 가도 된다.
  • 가족과 자가용으로 이동할 때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에 주차할 수 있다. 
  • 주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외모를 신경쓰지 않아도 돼서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
  • 인권과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다.
  •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 시각장애인으로 30년 살아 보니 안 좋은 점 Worst 5

  • 자가용이 있어도 운전을 못한다.
  • 말이 별로 없는 사람과는 어울리기가 힘들다.
  • 직업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 남들과 대중 문화를 소재로 공감대 형성이 안 된다.
  • 밝은 대낮에도 자꾸 잠이 온다.

키보드만으로 이모지와 다양한 기호 빠르게 입력하는 방법(알트 입력법 포함)

요즘엔 소셜 미디어나 메신저에서 이모지를 사용하는 빈도가 매우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보드에 별도 키로 존재하지 않는 글머리 기호(•, ‘불릿 기호’ 또는 ‘구분점’이라고도 함)와 같은 흔한 기호를 입력하는 것도 여전히 곤욕입니다. 심지어 작은따옴표(‘ ’) 같은 쉬운 기호도 키보드에 있는 아포스트로피(') 키로 쓰다 보면 앞뒤가 뒤집혀서 속까지 뒤집히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이죠. 😅

문제는 이런 디지털 소통 방식이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단순히 답답한 것을 넘어 관계의 장벽이 된다는 사실인데요. 마우스 사용이 어렵다 보니 이모지 패널에서 고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

하지만 PC를 사용하는 분이라면 키보드를 통해 다양한 이모지와 기호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단, 기호 입력을 위해선 숫자패드가 있는 키보드가 있어야 합니다! 🌟

아래는 키보드만으로 이모지와 다양한 기호들을 손쉽게 입력하는 방법입니다. 🎉👩‍💻


1. 키보드로 이모지 입력하는 방법


  • 윈도우 사용자는 윈도우 키 + . 또는 윈도우 키 + ;을 동시에 누르세요.
  • 맥 사용자는 Cmd + Ctrl + Space를 누르세요.
  • 이모지 패널이 열립니다. 여기서 원하시는 이모지를 선택하고 엔터를 누르신 후 esc를 누르시면 커서가 있는 자리에 이모지가 나타납니다.
  • 이모지의 카테고리는 최근에 사용한 항목, 웃는 얼굴 및 동물, 피플, 축하 행사 및 물건, 음식 및 식물, 교통편 및 장소, 기호로 나뉘어 있고, 각 카테고리에 수백 개씩 있습니다. 원하시는 이모지를 골라 쓰시면 됩니다.


2. 키보드로 다양한 기호 입력하는 방법


    알트 입력법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영어 알파벳(대문자와 소문자), 숫자, 일반적인 구두점, 특수 문자 등 다양한 문자를 키보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알트 입력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무위키 기사를 참고하세요!
  • 윈도우 사용자는 숫자패드의 Num Lock을 활성화한 후, Alt키를 누른 상태에서 숫자패드로 숫자를 입력하세요.
  • 예를 들어, Alt 키를 누른 채로 숫자패드에서 149를 입력하고 Alt 키를 떼면 커서가 있는 자리에 글머리 기호(•)가 입력됩니다. 
  • 여는 작은따옴표의 코드는 145, 닫는 작은따옴표는 146이고, 여는 큰따옴표의 아스키 코드는 147, 닫는 큰따옴표는 148입니다. 말줄임표는 133, 가운뎃점은 183입니다.
  • 맥 사용자는 Option 키를 누르고 다른 키를 조합해서 원하는 기호를 입력합니다. 다만 윈도우에서의 코드와 조합하는 키가 다르다고 합니다.
  • 예를 들어, 글머리 기호(•)를 입력하려면 Option + 8을 누르면 된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해 보진 않았습니다.


제가 사용한 운영체제는 윈도우 10과 11입니다. 하지만 맥에서도 위에 안내한 방법으로 무리 없이 이모지와 다양한 기호를 입력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턴 소셜에서 대화하거나 문서 작성할 때 이모지와 기호를 풍부하게 사용해 보세요! 🌈🌟 모두가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 봅시다! 💪🌍

센스리더로 인터넷 탐색할 때 자주 사용하는 키 13개

윈도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때 일반적으로 Chrome이나 Edge와 같은 브라우저를 사용하게 됩니다. 저 같은 시각장애인이 인터넷을 사용할 때는 브라우저에 장착된 TTS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웹 페이지와 다양한 인터랙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크린 리더를 사용하는데요. 한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크린 리더는 (주)엑스비전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센스리더입니다.

요즘처럼 다양한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웹에서 구현되는 시대에는 웹 페이지를 탐색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웹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파악을 해야만 그 웹 페이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래는 센스리더를 사용해서 인터넷을 탐색할 때 알아두면 유용한 키 13개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 13개의 키를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거의 매번 사용하고 있는데 탐색이 매우 빨라져서 편리합니다. (아래 목록은 피드백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하겠습니다)


* 운영체제는 윈도우 10이며 센스리더 탭키 설정 중 ‘브라우저 탭키’ 환경을 기본으로 합니다.


[웹 브라우저에서 자주 사용하는 센스리더 탐색 키 13개]


  • h: 다음 헤딩으로 이동
      - 다음 제목이나 소제목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인터넷 기사나 블로그에서 목차별로 빠르게 이동해야 할 때 유용합니다.
  • 숫자 1~6키: 헤딩1부터 헤딩6까지 다음 헤딩 레벨로 이동
      - 다음 헤딩 레벨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큰 제목부터 작은 제목까지 헤딩1~헤딩6으로 분류되는데 같은 헤딩 레벨 사이를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n: 다음 컨트롤로 이동
      - 다음 주요 컨트롤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버튼, 라디오버튼, 체크상자, 풀다운 메뉴, 편집창 등 주요 컨트롤을 빨리 탐색해야 할 때 유용합니다.
  • l: 다음 링크로 이동
      - 다음 링크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웹 페이지에서 링크만 빠르게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z: 본문 영역으로 이동
      - 해당 페이지의 본문 영역으로 포커스를 한 번에 이동합니다.
  • i: 목록 내에서 다음 항목으로 이동
      - 목록 안에서 다음 항목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목록 안에 텍스트나 컨트롤이 구분점이나 숫자로 나열되어 있는 경우 빠르게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Ctrl + Alt + 방향키: 테이블 내에서 항목 간 이동
      - 테이블 안에서 항목 간에 좌우, 위아래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행과 열이 있는 테이블 안에 텍스트나 컨트롤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 빠르게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F2: 다음 편집창으로 이동
      - 다음 편집창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 F3: 다음 검색한 문자열로 이동
      - 웹 페이지 내에서 Ctrl + f를 이용하여 문자열을 검색한 경우 다음 같은 문자열이 있는 위치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 F4: 다음 텍스트로 이동
      - 다음 텍스트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 F6: 다음 브라우저 기능 영역으로 이동
      - 브라우저 내에서 다음 기능 영역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페이지 영역, 툴바, 탭바, 사이드바 등 브라우저 영역 사이를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Tab키: 다음 링크 또는 컨트롤로 이동
      - 다음 링크나 컨트롤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단 탭키는 센스리더 포커스뿐 아니라 브라우저의 포커스도 함께 이동시킵니다.
  • Ctrl + Tab키: 다음 페이지 탭으로 이동
      - 다음 페이지 탭으로 창을 전환합니다. 브라우저에 여러 개의 페이지 탭이 열려 있을 때 그 사이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위 키는 모두 Shift 키와 함께 누르면 반대 방향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 헤딩으로 이동하고 싶다면 Shift + h 키를 누르면 됩니다.

[도도에게 들려주는 유정과 헌용의 모험] 프롤로그. 아빠가 도도에게

아빠에겐 여행이 꽤나 어려운 일이야. 흰지팡이가 없으면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가거든. 그런데 가끔은 흰지팡이가 있어도 길을 헤맬 때가 있어. 나갈 땐 괜찮은데 돌아올 때가 문제지. 종종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근처에서 의도치 않게 여행을 하곤 해. 엉뚱한 데 한눈을 팔다 보면 길을 잃는 거지(‘한눈 판다’는 표현이 아빠에겐 적절한지 모르겠구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다’는 뜻으로 쓴 표현이야). 그럴 땐 귀를 쫑긋 세우고 흰지팡이를 고쳐 잡아.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한참을 헤매다 보면 익숙한 지면이 발바닥에 느껴질 때도 있고 끝끝내 방향을 못 찾을 때도 있어. 못 찾을 때면 아빠는 엄마한테 영상 통화를 건단다. 엄마는 “헌용~”하고 외치면서 전화를 받지. 그리곤 카메라를 요리조리 돌려보게 한 후 길을 알려줘. 그럼 아빠의 여행은 안전하게 끝이 나는 거야.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거지.


엄마는 아빠에게 늘 그런 존재였단다. 응, 그래. 내비게이션 같은 존재. 아빠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면 엄마는 길을 안내해주곤 했어. 그런데 엄마도 여느 내비게이션이랑은 조금 달라서 빠른 길을 알려주진 않았단다. 항상 아빠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로 데리고 가곤 했거든. 그렇게 아빠는 엄마랑 많은 여행을 했어. 응, 맞아. 엄마만의 여행 방식 있잖아. ‘유정 투어’. 엄마는 그게 세상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했어. 남들은 목적지를 정하고 어떻게든 거기까지 빨리 가려고 하는데 엄마는 달랐지. 그렇게 갈 거면 택시를 부르라는 거야. 엄마랑 갈 거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해.


앞으로 쓸 글은 그렇게 아빠랑 엄마랑 유럽에 다녀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란다. 2023년 1월이었어. 아빠가 유럽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하나였어. 생애 최초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 아빠는 그것만으로 족했지. 멋지지 않니?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 아빠가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것들이 거기에 있었어. 쾰른대성당의 첨탑과 라인강변. 그리고 그것들은 아빠가 나이가 들면서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졌거든. 엄마랑 같이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어.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단다.


그런데 있잖아. 엄마랑 같이 여행을 간 이상 그걸로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단다. 그때부턴 엄마에게 모든 걸 맡겼어. 신나는 아빠와 엄마의 모험이 그렇게 시작됐지. 이 글은 아빠가 유럽에 있는 동안 그리고 유럽에서 돌아온 후 페이스북에 올린 일기와 엄마가 여행하는 동안 남긴 이미지랑 영상을 주재료로 사용했어. 아빠는 텍스트에, 엄마는 멀티미디어에 강하거든. 아빠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엄마가 명쾌하게 설명해 줄 거야.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도도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여행을 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아마 도도도 같이 다시 가보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땐 우리 셋이 더 즐거운 모험을 떠나자! 훨씬 더 흥미진진한 모험을!

 

2024년 1월

사랑하는 아빠 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