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교육 거버넌스다 ― 통제하의 자율, 강제하의 포용은 옳은가?

중앙집권적 관료제는 어떻게 교육을 지배해 왔나?

1. 대한민국 교육은 오랫동안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체계 위에 서 있었다.

2. 교육부 장관은 학교장의 인사부터 교과서 선정까지 유·초·중등학교의 교육정책 전반을 관장하며 ‘제왕적 장관’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장관)가 선출된 권력(교육감)을 압도하는 구조는 민선 교육감제 시행 18년째인 현재까지 흔들리지 않고 있다.

3.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 학교와 교사는 이 위계 구조의 하위에 위치하며, 정책의 집행자로 기능하도록 고정되어 있다. 특히 교사는 ‘말단 행정직’의 지위를 강요받는다.

4. 이러한 구조는 단지 관료제의 역효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자율성과 교육의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정치적 질서로 기능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교육의 본질적 질문조차, 교사가 아닌 교육부의 고시와 승인에 종속된다.

교사는 무엇이 되었나?

5. 교사는 행정 시스템의 말단이 아니라, 공공성과 전문성을 구현하는 시민적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6. 그러나 지금의 체계는 교사의 교육적 판단을 불신하며, 교사들을 ‘지시 이행자’로 전락시킨다.

7. 교육과정 결정권에서 배제된 교사는, 생활지도 권한에서도 학부모 민원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8. 교사의 지도는 존중이 아닌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책임만 남은 자리에서 권위는 철저히 무너졌다.

9. 서이초 사건은 이 붕괴된 위상이 단지 교육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교사의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비극적으로 방증했다.

구조에 대한 도전은 있었다

10. 교사들이 이 구조에 단순히 순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1.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전교조는 그 저항의 상징이었다. 전교조는 중앙집권적 교육정책의 심장을 뚫는 강력한 힘이었다.

12. 하지만 단극 저항 체제는 집중된 힘만큼이나 쉬운 표적이 되었다. 2010년대 내내 탄압받았고, 그 결과 저항력은 물론 교사 집단 내부의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도 약화했다.

13. 그 대안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교과 기반, 지역 기반의 다양한 노조들이 출연하며 교사들은 저항의 다극화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생활 밀착형 문제 해결과 생존권 투쟁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그 또한 문재인 정권이라는 우산 아래여서 가능했다. 이는 후술할 거버넌스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14. 어쨌든 이러한 교사들의 다변화한 저항은 단순한 조직 분산이 아니라,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거버넌스에 대한 조직적 반발이었다.

15. 그러나 전체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 다극적 저항 또한 제한된 영향력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현재 다양한 교사 집단이 존재하지만, 그 요구가 실질적 정책으로 전화되기 위한 제도적 통로는 지금 이순간에도 차단되어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850만 학생과 50만 교원의 요구가 교육부 장관 한 명에게 수렴되는 단극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거버넌스는 참여자들조차 위계화한다

16. 문제는 교육부의 권한 집중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17. 이 수직적 거버넌스는 그 안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위계적 질서를 강제한다.

18. 17개 시도교육청은 중앙의 정책을 ‘현장에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하며, 정책 설계에 있어 실질적 자율권은 없다.

19. 교원노조 역시 정책 테이블의 협의 주체가 아닌, ‘의견 청취 대상’으로만 간주된다. 전술했듯 교사 집단의 다극적 저항 역시 중앙이 설정한 어젠다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구조 내부의 반응으로만 머문다.

20. 요컨대, 시도교육청은 중앙의 키워드를 반복하거나 모방하며, 자율을 가장하지만 실질적인 어젠다 생산 권한은 부재하다. 교원노조도 정책 담론에 참여하지만, 거버넌스 하부 구조에서 소모될 뿐, 중심을 구성하지는 못한다.

21. 여전히 교육정책의 어젠다 세팅 권한은 조직적으로는 교육부, 지역적으로는 서울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22. 수직적 거버넌스는 비판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비판마저 위계화하고, 저항조차 체계 안에 포섭한다. 자율은 흡수되고, 저항은 관리된다. 구조는, 견고하게 지속된다.

그런데 그 통제가 포용을 가능케 했다?

23.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불편한 사례를 마주한다.

24. 지금까지 비판해온 이 중앙집권적 거버넌스—그 수직적 통제가 때로는 포용의 진전을 가능케 한 유일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이다.

25. 대표적인 사례가 장애인 교원 고용 확대다.

26. 현재 전국에는 5천여 명의 장애인 교원이 존재한다.

27. 이것은 현장의 인식 변화나 자발적 개방의 결과가 아니다. 1990년 제정된 「장애인고용촉진법」이 국가기관의 장애인 고용 의무화의 초석을 놓았고, 2005년, 당시 우원식 의원(현 국회의장)이 발의한 법률 개정이 교원임용시험 체계 내 장애인교원 특별전형 의무화로 이어진 결과다.

28. 법에 따라 2007학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은 매년 일정 비율의 장애인 교사를 선발하게 되었고, 지금의 수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29. 요컨대, 장애인교원 포용은 의식의 성장으로 실현된 것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한 강제적 개입의 산물이었다.

30. 우리는 이 사례 앞에서 다시 묻게 된다. 정녕 통제 없이 포용은 실현될 수 없는가?

다시 묻는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31.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개별 정책이 아니다.

32. 그 정책들을 반복적으로 만들고 실패하게 만드는, 통치 구조, 즉 위계적 거버넌스에 있다.

33. 이 체계에서는 자율이 허락을 받아야 하고, 포용은 강제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34. 이런 조건부 자율과 억압적 포용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35. 그렇다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정책이 아니라, 그 정책을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권력의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정당화하는 질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36. 첫째,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37. 지금처럼 교육부에 건의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법률안 발의, 행정 고시 제안, 교육부의 수용 의무 부과 등이 가능해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38. 둘째, 교과서 발행 체계를 자유발행제로 이행해야 한다.

39. 검정제 중심에서 인정제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유발행제까지 이양하는 단계적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교과서는 교사의 철학과 전문성이 구현되는 가장 구체적 장치이며, 그 장치를 누가 통제하느냐가 교육 자율성의 핵심이다.

40. 셋째, 포용 정책을 국가 프레임워크로 제도화해야 한다.

41. 법률이든 고시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포용이 임의가 아닌, 국가의 책임으로 강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포용의 규범을 실현하는 데 있을 뿐이다.

누가 해야 할까?

42. 두 말할 것 없이 궁극적 의사결정자인 국회, 특히 민주당이 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말잔치는 그만하자. 민주당이 가장 잘해 온 것은 민주화다. 이제는 교육이라는 마지막 중앙집권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할 때다.

43. 다음으로 시도교육감들이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라면, 이제 그 권력에 걸맞은 정치적 담대함을 보여야 한다. 교육부의 하위 집행기관이 아니라, 분권형 교육 질서를 설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44. 그리고 교원노조들이다. 이미 구성원의 수로 인해 무시하지 못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정해진 어젠다를 수정하거나 반대하는 조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정치적 행위자로 서야 한다.

45. 시대의 과업은, 거버넌스를 해체하고 다시 짜는 일이다.

46. 이재명 정부 교원 정책의 화두가 교사 정치 참정권 보장이다. 하지만 참정권 보장은 단지 몇 개의 법률안 통과로 달성되지 않는다. 구조 안에서 실질적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우리가 끝까지 물어야 할 질문

47. 우리는 아직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48. 통제하에서만 허용되는 자율, 강제하에서만 작동하는 포용은 정당한가?

49. 교육 개혁의 열쇠는 정책이 아니라, 구조다. 그 구조를 다시 묻는 일에서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50. 새로운 분권형 교육 거버넌스를 상상하고 설계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AIDT가 던지는 통제와 포용의 역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질 것들 - 민주당의 나태함에 부쳐

AI 디지털 교과서는 왜 실패했나?


1. AIDT의 결정적 패착은, 교육부가 정점에 선 중앙집권적 거버넌스 구조에 있었다.

2. AI가 열어주는 교육의 가능성은 분산성과 탈중심화, 그리고 학습자가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3. 그러나 AIDT의 설계, 심사, 배포의 전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은 배제되었다. 분산도, 탈중심도 없었다. 오직 교육부와 출판사·개발사만 있었다.

4. 이에 더해, AIDT는 교육부가 독점해 온 교과서 콘텐츠 편집 권한과 결합해, 교육을 더욱 획일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콘텐츠와 툴이 완전히 결합되며, 중앙통제의 완결판이 된 것이다.

5. 그 결과는 AI를 활용한 교육이 아니라, AI를 명분 삼아 기존 교육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고착화한 것에 불과했다.

6. 압축하면, AIDT 강제는 통제 기반의 거버넌스가 자율적 학습 생태계의 가능성을 압살한 사건이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잘못되기만 했나?


7. 그런데 위 주장에는 강력한 안티테제가 존재한다.

8.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중앙집권적이고 통제적인 거버넌스였기 때문에 AIDT 정책에 장애학생과 장애인 교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었다.

9. KERIS가 2023년 9월에 배포한 「AIDT 개발 가이드라인」에는 “제8장 UDL 및 접근성”이 별도 챕터로 들어갔다. 이 내용은 바로 2024년부터 검정 심사 기준이 되었고, 모든 출판사/개발사가 강제로 최소한의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만 하는 강력한 제도적 수단이 됐다. KERIS는 뿔 난 출판사/개발사들을 달래주기 위해 2025년, 개발 업무 담당자들이 실질적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웹 접근성 테스트랩을 개관하기까지 했다.

10. UDL+접근성 기준의 가이드라인 삽입에서 컨설팅 테스트랩 구축까지, 이런 체계적인 포용적 조치는 우리나라의 공공 발주형 기술 사업에서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대담한 조치였다.

11. 이 정도의 강제적 조치는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하는 느슨한 구조에서는 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획일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였기에 가능했다. 통제 기반 거버넌스가 자율성을 억압했지만, 동시에 포용의 공간을 연 것이다. 우리 사회처럼 생존의 논리가 모든 가치를 덮어버리는 곳에서는, 이런 방식만이 취약계층에게 유일한 안전망이 되기도 한다.

12. 이것이 AIDT가 던지는 통제와 포용의 역설이다.


민주당이 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13. 그렇다면 민주당이 주도하는 AIDT 교육자료 격하 법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4. 민주당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핵심은 ‘교육자료’ 범주를 신설해, AI 디지털교과서 등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 및 전자 저작물을 모두 교육자료 에 해당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즉, AIDT의 껍데기를 바꾸는 법안이다.

15. 껍데기가 바뀌면 AIDT는 각종 규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 대신 치열한 시장의 경쟁을 뚫고 스스로 학교로 들어가는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16. 요컨대, AIDT의 성격을 공공재에서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17. 4일,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민주당의 접근은 무엇이 잘못됐나?


18. 나는 이런 민주당의 ‘이전 정권 정책 백지화’식의 무차별적 폐기는 오히려 교육 현장에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9. 게다가 교육의 공공성보다는 상업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그 효과성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있겠지만 내가 관심 있는 거버넌스 개선과 포용성 증대 차원에선 분명한 역행이다.

20. 당장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UDL 및 접근성 기준을 포함해 학생 및 교사 권리 보장을 위한 각종 규제가 모두 무효화될 것이다. KERIS가 개관한 테스트랩은 문을 닫을 것이고, 출판사/개발사들에 포용적 의무를 부과할 어떠한 정책적 수단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21. 검정심사제로 대표되는 경직된 하향식 교과서 정책을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로 전환하는 근본적 개혁은커녕 현재 교과서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할 동력조차 일어버릴 것이다. 현장은 교과서와 교육자료가 따로 노는 개판이 될 것이다.

22. 요컨대, 민주당에겐 AIDT 사태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교육 거버넌스가 지닌 하향식, 중앙집권적 구조를 바꿀 비전도 없으며, 그렇다고 교육 취약계층 학생과 나와 같은 소수 장애인교원을 보호할 의지도 없다.

23. 한마디로 민주당에는 대안이 없다. 나태한 법안뿐이다.


무엇이 남나?


24. 교육자료로 격하된 AIDT는 치열한 시장의 경쟁을 거치겠지만 어쨌든 학교로 들어올 것이다. 이미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진 상태여서 그렇다. AIDT는 살아남을 것이다. 아무런 규제도, 정치적 압력도 받지 않는 형태로.

25. 출판사/개발사들은 AIDT가 평가와 입시에 활용되도록 로비할 것이다. 그래야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으니까. 각종 판촉물이 남을 것이다.

26. 출판사/개발사들은 교육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교육부에는 빚이 남을 것이다. 빚은 다른 교육 예산의 축소를 가져올 것이다.

27. 그리고 장애학생 및 장애인교원의 눈물이 남을 것이다. 국가가 아닌 출판사로, 개발사로, 국회로 향하는 허망한 발길만이 남을 것이다.

28. 새 정부의 교육부 차관은 이것들을 “약간의 혼란”이라 명명했다. 묻고 싶다. 그렇게 가벼이 볼 일인지.

29. 내가 보기에 남을 것은 출판사/개발사들의 비건설적인 경쟁, 공공의 빚, 소수 약자의 절망뿐이다.

구글이 AI 튜터를 만드는 방법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구글은 지난 5월 14일에 LearnLM이라는 언어 모델을 발표했다. LearnLM은 제미나이 1.0을 교육 목적으로 파인튜닝한 모델이다. 구글 딥마인드 연구팀은 LearnLM을 소개하면서 아카이브(arXiv)에 연구 보고서도 함께 발표했다. 이 연구 보고서는 AI를 실질적으로 쓸 만한 AI 튜터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정의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구글 딥마인드 팀은 AI 튜터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평가 프레임워크를 개발했고(7개의 벤치마크 포함), 안전성 프로토콜과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했고 무엇보다 제미나이 1.0 베이스 모델보다 교육학적으로 더 나은 언어 모델로 개발했다. 개발 과정에서 AI가 만든 데이터에서부터 교육 전문가가 직접 만든 데이터까지 다양한 레벨의 데이터셋을 만들어 학습시켰고 각각의 응답 및 대화에 대해서 실제 교육자 및 학생의 피드백도 반영했다. 그리고 이를 실제 교육 환경(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 적용해 효과성을 입증했다.

연구의 한계도 명확하게 보고서에 적시했다. 텍스트 기반 상호작용으로 제한되었고 강화학습(RL) 단계는 시행하지 못했다는 기술적 한계부터, 여전히 평가의 신뢰성 확보에 대한 어려움과 장기적 실용성을 검증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한계로 제시했다. 다문화 지원 확대와 문화적 다양성 을 고려한 개선사항 등의 향후 과제도 보고서에 남겼다.

최근 연구 책임자인 아이리나 주렌카(Irina Jurenka)가 구글 딥마인드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LearnLM 개발 과정과 연구 보고서에 관해서 설명했다. 이 연구는 AI를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고 이제서야 연구해야 할 범위와 깊이를 확인한 정도의 성과로 봐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8월 28일 제미나이 어드밴스드 업데이트 직후에 LearnLM을 직접 써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챗GPT나 다른 어떤 언어 모델보다도 학습에 맞춤화 된 대화가 가능했다. 이 정도라면 정말 학생들에게도 유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제미나이는 현재 18세 이상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보고서에 언급된 학생 피드백도 모두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학생들의 피드백이다. 구글이 얼마나 신중하게 AI튜터에 접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글이 교육 분야에 투자해 온 것은 이미 15년이 넘었다. LearnLM을 사용해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연구자와 개발자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지 궁금했는데 이 보고서를 통해 구글 딥마인드가 교육용 LLM 파인튜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 역량을 투입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에듀테크 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에듀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LearnLM은 제미나이 챗봇에서 Learning coach라는 젬(Gem)으로 사용해 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도 일부 교육용 영상에 적용되어 있다고 한다. 추후에는 구글 검색의 'AI 개요'에도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교육부의 AI 디지털교과서 사업, 현실과 이상 사이의 딜레마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야심찬 계획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 미국 거대 테크기업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게 AI 기술인데 교과서를 만드는 데 AI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술력도 자금도 부족한 교육부가 어떤 근거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과서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고, 기술 업계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친다. 냉정하게 말해 이번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년에 챗GPT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AI" 교과서가 나오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AI가 진짜 AI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AI 사랑을 보며 나는 이명박의 '자원외교'가 떠오른다. '뭔가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접근하다가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 교육행정기관과 출판사 몇 곳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문제는 그 모든 기관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질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들이라는 사실이다.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교과서를 웹에 구현해야 한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등 웹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해 사용자가 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출판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 전문성을 요구하는데 기존 출판사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이다. 둘째,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사용되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은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고도의 기술적 조치와 법적 대비가 필요하다. 셋째, 보편적 학습 설계(UDL) 원칙을 따라 개발해야 하고 웹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학습자의 요구를 고려하고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 고난도의 과제이다. 각각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며, 이를 모두 통합하여 교과서라는 형태로 구현해내는 것은 기존 교과서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다.

당연히 출판사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여러 에듀테크 기업들이 합류했지만, 역부족이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데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거의 없고, 제시한 시한은 너무 짧다. 모두 2024년 말에 끝내야 하는 일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웹 기반'이라는 점이다. 웹은 '접근성 표준'이 명확해서 개발자들에게 접근성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는 그동안 장애학생과 장애인 교원의 니즈를 무시하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개발되어 온 교과서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다.

나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을 통해 이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장교조는 교육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의 협의를 통해 개발 가이드라인에 접근성 관련 내용을 반영했고,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이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 중이다. 이제 곧 수십 명의 장애인 교원들이 발행사들을 직접 만나 접근성 관련 자문을 하게 된다.

이 사업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교육부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혁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교육 주체 당사자들에게 공감과 설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교육부는 시간에 쫓긴 나머지 이 중요한 과정을 건너뛰고 있다.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일정과 예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대로 추진할 경우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제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기술 혁신과 교육의 본질, 포용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최적의 균형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기술의 발전은 ‘교육과 기술의 최적의 균형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교육 주체들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나는 이 기회가 단순히 정치인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더 포용적이고 접근성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모멘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방향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당장 내년에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업을 통해 미래 교육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더 나은 교육적 선택이라고 믿는다.

주호민 사건의 진짜 비극

1. 지난 2월 1일, 주호민 사건의 1심 결과가 나왔다. 피고인 특수교사의 일부 발언이 정서 학대로 인정되어 200만 원 벌금의 선고를 유예한다는 결정이었다. 선고유예는 형의 집행을 미룸으로써 형 집행의 효과를 달성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유죄 선고가 없었던 효력을 갖게 하는 제도이다.


2. 경미하다고는 하지만 정서학대가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정서학대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정서학대는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이다. 이참에 아예 근절하여야 한다.


3. 이 점에 대해서 교사들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4. 그러나 여기에서 멈출 순 없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가 한 교사 개인의 일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학교 전체가 공범이다.


5. 대한민국의 학교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학대와 차별을 자행해 왔는가? 장애학생을 특수학교 또는 특수학급에 가두고 그들을 분리시키려는 노력을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여 왔는가? 장애학생의 문제행동을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대신 의료적 치료를 넌지시 권유하고 그들이 ‘전문가’라고 부르는 몇몇 사람들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았는가?


6. 이번 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주호민 작가의 아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의 행동은 중재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학교는 처음에는 성폭력 가해자로 다루려고 했고, 전학시키라는 말도 안 되는 피해학생의 부모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했다.


7. 피해학생의 부모는 전학을 시킬 수 없으면 통합 시간을 최대한 줄여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장애아동을 격리하고 배제하려는 전형적인 차별적 발상이다. 당연히 피해 학생의 회복 지원은 학교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이뤄졌어야 한다. 그렇지만 장애아동을 ‘가해자’로 낙인찍고 배제하려는 발상은 선을 넘은 것이다.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이다.


8. 이런 야만에 가까운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중재를 위해 노력한 것은 피고 특수교사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 중재를 위하여 개별화지원팀 회의를 개최한 것이 특수교사였다. 여기서부터 문제이다. 장애아동을 지원해야 하는 책임은 학교 전체에 있지 특수교사 한 명에게 있지 않다. 애초에 학폭 사안으로 봤다면 더욱이 사건 해결의 책임은 특수교사에게 있지 않다. 사건 자체가 통합 학급에서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담임교사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때 교장과 교감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회의에서 그들은 무슨 발언을 하였는가?


9. 학교가 비겁하다. 참으로 비겁하다. 지켜야 할 선도 지키지 못하고 특수교사에게 모든 일을 떠밀었다. 교육이 아니라 사건 처리를 맡겼다. 이것이 이 사건의 진짜 비극이다.


10. 학기 초부터 이런 어려운 일을 맡게 된 특수교사의 심정은 처참했을 것이다. 과도한 업무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학교 내에서 아무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철저한 고립감이었을 것이다. 특수교사도 사람이다.


11. 특수교사에게 법적 책임이 있을지언정 도의적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학교 시스템이 고장나 있는데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는 돌을 던져라.


12. 나는 작년 서이초 사건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의 본질은 학교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 주범이라고 보는 이유는 장애가 있는 교사들이 비슷한 문제를 매우 자주 겪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갑질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교사는 장애인 교사 중에도 많다. 청각장애인교원에게 상식적으로 이뤄져야 할 통역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보행상장애가 있는 교사에게 당연하게 이뤄져야 할 교통편의 및 근거리 배치가 이뤄지지 않고, 시각장애인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교재 및 업무 시스템 접근성 문제가 어디에서도 다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 활동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그것을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니 숨이 막히고 우울증에 빠진다.


13. 특수교사들도 차별적 대우를 많이 당한다. 아주 많이 당한다. 제발 학교가 할 일을 하자. 교사 개개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바로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인권과 권리가 뭔지도 모르는 후진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다.


<참고 링크>


아래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 2023년 8월 3일 자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칼럼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 사건이 일반 학교에서 궁지에 몰린 장애 아동의 학부모와 그들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특수 교사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생존 게임’의 양상을 띈다고 지적했다.

진짜 빌런은 학교다: 장애인 통합교육의 현실 - 슬로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