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AI 튜터를 만드는 방법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구글은 지난 5월 14일에 LearnLM이라는 언어 모델을 발표했다. LearnLM은 제미나이 1.0을 교육 목적으로 파인튜닝한 모델이다. 구글 딥마인드 연구팀은 LearnLM을 소개하면서 아카이브(arXiv)에 연구 보고서도 함께 발표했다. 이 연구 보고서는 AI를 실질적으로 쓸 만한 AI 튜터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정의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결과물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구글 딥마인드 팀은 AI 튜터의 효과성을 검증하는 평가 프레임워크를 개발했고(7개의 벤치마크 포함), 안전성 프로토콜과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했고 무엇보다 제미나이 1.0 베이스 모델보다 교육학적으로 더 나은 언어 모델로 개발했다. 개발 과정에서 AI가 만든 데이터에서부터 교육 전문가가 직접 만든 데이터까지 다양한 레벨의 데이터셋을 만들어 학습시켰고 각각의 응답 및 대화에 대해서 실제 교육자 및 학생의 피드백도 반영했다. 그리고 이를 실제 교육 환경(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 적용해 효과성을 입증했다.

연구의 한계도 명확하게 보고서에 적시했다. 텍스트 기반 상호작용으로 제한되었고 강화학습(RL) 단계는 시행하지 못했다는 기술적 한계부터, 여전히 평가의 신뢰성 확보에 대한 어려움과 장기적 실용성을 검증하지 못했다는 점 등을 한계로 제시했다. 다문화 지원 확대와 문화적 다양성 을 고려한 개선사항 등의 향후 과제도 보고서에 남겼다.

최근 연구 책임자인 아이리나 주렌카(Irina Jurenka)가 구글 딥마인드 팟캐스트에 출연해서 LearnLM 개발 과정과 연구 보고서에 관해서 설명했다. 이 연구는 AI를 교육에 활용하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고 이제서야 연구해야 할 범위와 깊이를 확인한 정도의 성과로 봐 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8월 28일 제미나이 어드밴스드 업데이트 직후에 LearnLM을 직접 써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챗GPT나 다른 어떤 언어 모델보다도 학습에 맞춤화 된 대화가 가능했다. 이 정도라면 정말 학생들에게도 유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제미나이는 현재 18세 이상으로 사용이 제한되어 있다. 보고서에 언급된 학생 피드백도 모두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학생들의 피드백이다. 구글이 얼마나 신중하게 AI튜터에 접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글이 교육 분야에 투자해 온 것은 이미 15년이 넘었다. LearnLM을 사용해 보면서 얼마나 많은 연구자와 개발자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을지 궁금했는데 이 보고서를 통해 구글 딥마인드가 교육용 LLM 파인튜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 역량을 투입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에듀테크 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에듀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LearnLM은 제미나이 챗봇에서 Learning coach라는 젬(Gem)으로 사용해 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도 일부 교육용 영상에 적용되어 있다고 한다. 추후에는 구글 검색의 'AI 개요'에도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교육부의 AI 디지털교과서 사업, 현실과 이상 사이의 딜레마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야심찬 계획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 미국 거대 테크기업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게 AI 기술인데 교과서를 만드는 데 AI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술력도 자금도 부족한 교육부가 어떤 근거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과서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고, 기술 업계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친다. 냉정하게 말해 이번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년에 챗GPT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AI" 교과서가 나오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AI가 진짜 AI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AI 사랑을 보며 나는 이명박의 '자원외교'가 떠오른다. '뭔가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접근하다가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 교육행정기관과 출판사 몇 곳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문제는 그 모든 기관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질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들이라는 사실이다.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교과서를 웹에 구현해야 한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등 웹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해 사용자가 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출판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 전문성을 요구하는데 기존 출판사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이다. 둘째,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사용되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은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고도의 기술적 조치와 법적 대비가 필요하다. 셋째, 보편적 학습 설계(UDL) 원칙을 따라 개발해야 하고 웹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학습자의 요구를 고려하고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 고난도의 과제이다. 각각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며, 이를 모두 통합하여 교과서라는 형태로 구현해내는 것은 기존 교과서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다.

당연히 출판사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여러 에듀테크 기업들이 합류했지만, 역부족이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데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거의 없고, 제시한 시한은 너무 짧다. 모두 2024년 말에 끝내야 하는 일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웹 기반'이라는 점이다. 웹은 '접근성 표준'이 명확해서 개발자들에게 접근성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는 그동안 장애학생과 장애인 교원의 니즈를 무시하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개발되어 온 교과서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다.

나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을 통해 이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장교조는 교육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의 협의를 통해 개발 가이드라인에 접근성 관련 내용을 반영했고,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이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 중이다. 이제 곧 수십 명의 장애인 교원들이 발행사들을 직접 만나 접근성 관련 자문을 하게 된다.

이 사업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교육부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혁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교육 주체 당사자들에게 공감과 설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교육부는 시간에 쫓긴 나머지 이 중요한 과정을 건너뛰고 있다.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일정과 예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대로 추진할 경우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제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기술 혁신과 교육의 본질, 포용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최적의 균형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기술의 발전은 ‘교육과 기술의 최적의 균형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교육 주체들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나는 이 기회가 단순히 정치인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더 포용적이고 접근성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모멘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방향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당장 내년에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업을 통해 미래 교육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더 나은 교육적 선택이라고 믿는다.

주호민 사건의 진짜 비극

1. 지난 2월 1일, 주호민 사건의 1심 결과가 나왔다. 피고인 특수교사의 일부 발언이 정서 학대로 인정되어 200만 원 벌금의 선고를 유예한다는 결정이었다. 선고유예는 형의 집행을 미룸으로써 형 집행의 효과를 달성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유죄 선고가 없었던 효력을 갖게 하는 제도이다.


2. 경미하다고는 하지만 정서학대가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학생에 대한 교사의 정서학대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정서학대는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이다. 이참에 아예 근절하여야 한다.


3. 이 점에 대해서 교사들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4. 그러나 여기에서 멈출 순 없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가 한 교사 개인의 일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실 학교 전체가 공범이다.


5. 대한민국의 학교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학대와 차별을 자행해 왔는가? 장애학생을 특수학교 또는 특수학급에 가두고 그들을 분리시키려는 노력을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여 왔는가? 장애학생의 문제행동을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대신 의료적 치료를 넌지시 권유하고 그들이 ‘전문가’라고 부르는 몇몇 사람들의 문제로 축소하지 않았는가?


6. 이번 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주호민 작가의 아이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의 행동은 중재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학교는 처음에는 성폭력 가해자로 다루려고 했고, 전학시키라는 말도 안 되는 피해학생의 부모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했다.


7. 피해학생의 부모는 전학을 시킬 수 없으면 통합 시간을 최대한 줄여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장애아동을 격리하고 배제하려는 전형적인 차별적 발상이다. 당연히 피해 학생의 회복 지원은 학교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이뤄졌어야 한다. 그렇지만 장애아동을 ‘가해자’로 낙인찍고 배제하려는 발상은 선을 넘은 것이다.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것이다.


8. 이런 야만에 가까운 발언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중재를 위해 노력한 것은 피고 특수교사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 중재를 위하여 개별화지원팀 회의를 개최한 것이 특수교사였다. 여기서부터 문제이다. 장애아동을 지원해야 하는 책임은 학교 전체에 있지 특수교사 한 명에게 있지 않다. 애초에 학폭 사안으로 봤다면 더욱이 사건 해결의 책임은 특수교사에게 있지 않다. 사건 자체가 통합 학급에서 일어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담임교사는 어디에 있었는가? 그때 교장과 교감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회의에서 그들은 무슨 발언을 하였는가?


9. 학교가 비겁하다. 참으로 비겁하다. 지켜야 할 선도 지키지 못하고 특수교사에게 모든 일을 떠밀었다. 교육이 아니라 사건 처리를 맡겼다. 이것이 이 사건의 진짜 비극이다.


10. 학기 초부터 이런 어려운 일을 맡게 된 특수교사의 심정은 처참했을 것이다. 과도한 업무보다 더 비참한 것은 학교 내에서 아무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모든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철저한 고립감이었을 것이다. 특수교사도 사람이다.


11. 특수교사에게 법적 책임이 있을지언정 도의적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학교 시스템이 고장나 있는데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는 돌을 던져라.


12. 나는 작년 서이초 사건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의 본질은 학교 밖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 주범이라고 보는 이유는 장애가 있는 교사들이 비슷한 문제를 매우 자주 겪기 때문이다. 학부모의 갑질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는 교사는 장애인 교사 중에도 많다. 청각장애인교원에게 상식적으로 이뤄져야 할 통역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보행상장애가 있는 교사에게 당연하게 이뤄져야 할 교통편의 및 근거리 배치가 이뤄지지 않고, 시각장애인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교재 및 업무 시스템 접근성 문제가 어디에서도 다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 활동에서 많은 문제가 생기는데 그것을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니 숨이 막히고 우울증에 빠진다.


13. 특수교사들도 차별적 대우를 많이 당한다. 아주 많이 당한다. 제발 학교가 할 일을 하자. 교사 개개인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바로 학교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인권과 권리가 뭔지도 모르는 후진 학교 문화와 시스템이다.


<참고 링크>


아래는 이 사건과 관련해서 2023년 8월 3일 자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칼럼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 사건이 일반 학교에서 궁지에 몰린 장애 아동의 학부모와 그들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특수 교사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생존 게임’의 양상을 띈다고 지적했다.

진짜 빌런은 학교다: 장애인 통합교육의 현실 - 슬로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