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 - LG전자 볼드무브 1기 활동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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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주관하고 무의가 함께하는 볼드무브 1기 활동이 짧고 굵게 마무리되었다. 모든 활동이 끝난 것은 아니고 오프라인 3회, 온라인 2회로 이루어진 핵심적인 모임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한 달여 동안은 볼드무버들의 제품 리뷰와 LG전자의 매거진 제작 및 출판회 등이 더 이어질 예정이다. 

첫 헤이그라운드 워크숍에 다녀오고 나서 후기를 썼는데 이후에 이어진 온라인 밋업 두 차례와 오프라인 모임 두 차례에 대한 리뷰를 간략하게 작성해 보려고 한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프로그램이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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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온라인 밋업


첫 워크숍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진행된 첫 번째 온라인 모임에서는 10명으로 구성된 1기 볼드 무버들이 처음으로 두 팀으로 나뉘었다. 나는 B팀에 속했는데 같은 팀에는 모주영, 전선미, 이승일님이 함께했다. 이때는 각자의 삶과 인상 깊었던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가전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얘기하며 서로를 조금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었다.

모주영님은 정수기, 인덕션, 전자레인지를 자주 사용하고 특히 이동식 트롤리가 가전제품 사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선미님은 정수기를 가장 편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온수를 사용할 때 안전에 대한 걱정도 있다고 했다. 이승일님은 세탁기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인데 드럼통 안쪽으로 몸을 기울여 빨래를 꺼내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아마존 에코, 구글 홈, 애플 홈팟, 네이버 클로바 등 AI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보일러나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을 음성으로 제어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경험담을 공유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전제품을 활용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는 걸 이 모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2차 워크숍 (헤이그라운드)


[이미지 설명] 볼드무브 2차 워크숍에서 문자통역사가 흰 키보드를 치고 있는 모습. 볼드무브가 열린 헤이그라운드 브릭스는 모든 행사에 문자통역을 지원한다.


12월 4일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2차 워크숍은 박세라 LG전자 선임연구원님의 진솔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이런 형태의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박 선임님은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내준 작은 공감들이 모여 지금의 볼드무브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수의 이슈는 소수이기 때문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참가자들이기에 박 선임님의 짧은 발표가 끝나고 큰 박수가 터졌다.

1부에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유정님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 볼드무브 1기에는 '원샷한솔', '구르님' 등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는데, 강연을 들으면서 과연 이 시대의 장애 관련 콘텐츠는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사회 전반의 장애 감수성을 높이고, 새로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크리에이터 자신의 긍정적 자아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형성된 크리에이터들의 긍정적 자아 이미지는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전이되고, 다시 높아진 사회의 인권 감수성과 만나 이전에는 없던 화학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나는 그러한 화학작용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진보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지 생각했다. 

2부에서는 각자의 실천적 목표를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세 가지 큰 미션을 정했다. 첫째는 가정생활에서의 의존성 줄이기다. 매일 집안일이나 육아 중 최소 한 가지는 혼자 독립적으로 해내고 이를 인증하는 것을 작은 목표로 잡았다. 둘째는 TFE(Tech for Everyone)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가전 접근성 관련 기사를 읽고, LG ThinQ 앱의 기능을 시험해 보고 피드백을 남기기로 했다. 셋째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여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한편, 첫 워크숍에 이어 이날도 도도와 유정이 함께했다. 내가 워크숍에 몰두하는 동안, 도도는 행사장 뒤편에서 테이블 여섯 개를 이어 붙인 즉석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특히 원샷한솔 삼촌과 함께 보낸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도도가 다양한 어른들과 어울리며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커뮤니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2차 온라인 밋업


12월 11일에 열린 이 온라인 모임에는 하마터면 나는 참여하지 못 할 뻔했다. 아내 유정이 외출한 사이 아기 도도를 혼자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참여가 원활하지 못했음에도 B팀 팀원들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고, 회의 내내 스크린에 난입했던 도도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채팅방에 올려주시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는 B팀이 본격적으로 해킹할 가전제품을 정했는데 정수기로 결정됐다. 정수기 한 제품만 가지고도 할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대화는 모임이 끝나고도 한참 채팅방에서 이어졌다. 팀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정수기의 용도는 아침 물 마시기, 따뜻한 차 준비하기, 얼음 사용하기 등 다양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팀원들은 높이 조절과 온수 사용의 안전성이, 시각장애가 있는 나는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의 접근성 문제가 정수기를 사용하면서 주로 겪는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미 현재 상태로 만족스러운 점도 많았다. 최신에 나온 정수기들은 온도 설정 유지 기능, 구체적인 출수량을 정해놓고 내릴 수 있는 기능 등 장애인 사용자들에게 특히 유용한 기능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슬림한 디자인 등 인테리어 요소로서의 기능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컴포트 키트의 개발과 음성 인식 기능의 고도화 등 제품 개선이 조금만 더 수반된다면 정수기 정복도 머지않은 미래로 보였다.


3차 워크숍 (그라운드 220, 마지막 모임)


12월 18일에 열린 마지막 워크숍은 장소부터 특별했다. LG전자의 가전 체험형 쇼룸인 영등포 그라운드 220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박세라 선임님의 제안으로 빨강과 초록의 드레스 코드로 연말 분위기를 살려 보기로 했지만 나는 옷의 색깔을 잘못 파악하고 남색 옷을 입고 참석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이미지 설명] LG전자의 그라운드 220에서 세탁기와 건조기가 전시된 공간을 배경으로, 이승일님이 회색옷을 입은 홍윤희 이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음. 배경에는 여러 대의 LG TROMM Objet Collection 세탁기와 건조기가 전시되어 있고, 홍윤희 이사장 앞으로 고개를 숙인 초록색 니트를 입은 스토리소사이어티 구아정 이사님의 뒷모습도 보임.

[이미지 설명] LG전자 매장에서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원샷한솔님이 깔끔한 디자인의 LG 정수기의 조작 패널을 살펴보고 있음. LG 직원이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으로 제품의 버튼과 인터페이스를 한솔님에게 가리키며 세밀하게 확인해 주는 모습.

[이미지 설명] 나와 LG전자 직원이 그라운드 220의 흰색 테이블에 앉아 대화 나누는 모습. 나는 LG의 점자 스티커를 만지고 있고, 맞은편에 흰색 니트 스웨터를 입은 직원이 설명을 하고 있음.


우리는 먼저 1층 쇼룸에서 LG전자의 다양한 가전제품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세탁기나 청소기를 휠체어 사용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정수기와 오븐의 터치 패널을 시각장애인 사용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조작할 수 있을지 실물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니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렇게 자유롭게 쇼룸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해방감이 느껴졌다. 가전제품의 구매에 있어 사실 많은 장애인 사용자들은 사전 정보를 얻거나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워크숍은 2층으로 올라가 스토리 소사이어티 채자영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립재활원 이평호 연구원의 ‘보조기기를 통한 나다움의 발견과 접근성 향상’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은 후, 팀별로 모여 2차 온라인 밋업에서 나눈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우리 B팀은 정수기 챌린지를 하고 있었으므로 더 편리한 정수기 사용을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고민해 보았다. 상지 장애 및 뇌병변장애가 있는 사용자들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컴포트 키트로 뜨거운 물 사용 시 쉽게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이동형 가림막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각장애인들이 어려워하는 유지관리 측면에서 필터 교체 시기에 대한 알림 기능 강화와 오염 방지를 위한 자동 세척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안되었다. 더 나아가 렌탈 서비스와 통합된 관리 시스템 안에서 특별히 장애인 사용자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개선 체계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러한 제품 개선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접근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구현할 것과 컴포트 키트의 핵심 원칙이 ‘최소한의 변화로 최대한의 효과(Less is More)’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우리는 제품 디자인의 심미성을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았다. 이 점에 있어 LG전자는 이미 방향을 정확히 잡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앞으로도 더욱 굳건히 그 방향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이 모임에서는 마지막으로 볼드무버들이 돌아가며 참여 소감을 나누었다. 비록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이것이 끝이 아닌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귀갓길에 올랐다. 주차장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홍윤희 이사장님 등 무의 매니저님들과 LG전자 관계자님들이 에스코트와 환송을 해 주었다. 이 환대야말로 이번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내내 나와 참여자들을 감동시킨 포인트였다. 볼드무버들의 역할은 이제 그 환대를 더 많은 LG전자 장애인 소비자들이 느낄 수 있게 주체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일 테다. 


앞으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1기 볼드무버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LG전자 브랜드 해킹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냈다. LG전자는 실제로 추후 컴포트 키트 개발에 이 의견들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LG전자는 지난 12월 9일에 신규 컴포트 키트 6종을 공개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덕션 실리콘 패드와 정수기 실리콘 커버, 저시력자를 위한 로봇청소기 컬러시트,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냉장고 회전 선반 등이 그것이다. (관련 기사: LG전자, ‘컴포트 키트’ 신규 6종 출시)

그러나 LG전자의 장애인 소비자 관련 사업은 컴포트 키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LG전자가 추진해 온 사업들을 보면 그 방향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2019: 시·청각장애인용 TV 보급사업
  • 2021: 전용 점자 스티커 배포, 장애인 자문단 운영, 수어 상담 서비스 도입
  • 2022: 아이콘 모양의 범용 점자 스티커 개발 및 보급
  • 2023: ‘모두를 위한 모두의 LG’ 캠페인
  • 2024: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보조 액세서리, 컴포트 키트 출시 (3월, 12월)
이 트렌드를 요약하면 일방향성 자선 사업에서 쌍방향 소통을 통한 제품·서비스 개선으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2020년 이전에는 LG전자에게 장애인을 위한 제품은 있었지만 ‘장애인 소비자’는 없었다. 그러나 2021년부터는 LG전자가 직접 장애인 소비자와 소통을 시작했고, 빌드업을 거쳐 2024년 말에 바로 우리가 참여한 볼드무브라는 커뮤니티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LG전자의 변화에 더 많은 장애인 소비자가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LG전자는 이미 올해 3월 국립재활원과 협약을 맺어 가전제품 접근성 개선을 위한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또한 ‘모두를 위한 모두의 LG’ 캠페인을 통해 장애인과 시니어를 위한 제품 교육 영상을 제작하고, 매장에서도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장의 제품 개선을 넘어 연구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서비스와도 연결하는 것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 기업의 ESG 비전인 ‘모두의 더 나은 삶(Better Life for All)’을 실천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장애인 소비자를 파트너로 보고 지속적인 발굴 및 협업을 늘려가는 것은 무척 반갑다. LG전자 입장에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다양한 사용자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장애인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기회이니 강력한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LG전자는 가전을 넘어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을 표방하고 있는데 장애인 소비자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프런티어 기업인 LG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나는 볼드무브가 이러한 LG전자의 장기 전략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동안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장애 관련 사업은 일회성이거나 공급자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1기 볼드무브의 활동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지만 이러한 LG전자의 여정에 나도, 다른 볼드무버들도 계속해서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후기]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 반가웠던 LG전자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 첫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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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와 사단법인 무의가 함께 만든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의 첫 모임에 다녀왔다.

 

‘볼드무브’는 ‘Bold Today, Possible Tomorrow(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라는 슬로건으로 장애인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실제 제품 개선 아이디어까지 창출할 목적으로 LG전자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LG전자는 ‘모두를 위한 가전’을 표방하며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촉각 스티커를 비롯해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혁신적 도구들을 ‘컴포트 키트’라는 이름으로 개발해왔다. 여기에 ‘모두의 1층’, ‘휠체어로 성수 완전정복 지도’ 개발 등 늘 상상을 뛰어넘는 장애인 이동권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무의가 만났으니, 이보다 더 기대되는 협업 프로젝트도 드물 것 같다!


[첫 모임 단체 사진] 빨간색과 흰색의 볼드무브 배경 현수막 앞에서 8명의 참가자들이 다양한 포즈로 활기차게 서 있다. 앞줄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4명의 참가자가 나란히 앉아 각각 밝은 미소와 함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 참가자는 ‘BOLD MOVE’ 피켓을 들고 있고, 다른 참가자는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뒷줄에는 서 있는 4명의 참가자들이 수어로 ‘LG’ 모양을 만들어 볼드무브의 정신을 표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참가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포즈와 따뜻한 표정, 나무 천장에서 내려오는 부드러운 조명이 어우러져 화기애애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Described by ChatGPT

 

앞으로 나를 포함한 10여 명의 1기 볼드무버들은 3개월 동안 가전제품을 통해 ‘나다움’을 발견하고,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직접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오늘은 바로 그 첫 모임이었다. 장소는 늘 갈 때마다 정말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는 설렘을 주는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이었다.

 

첫 모임에서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의 ‘나만의 이야기를세상에 용기 있게 전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듣고, ‘나다움 발견하기’ 워크숍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은 스토리 소사이어티의 채자영 대표님이 해 주셨는데 처음 뵙는 분이지만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시각장애인 참가자들을 위해 자신의 외모와 인상착의를 먼저 설명하고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저는 167cm 정도의 키이고 오늘의 분위기에 맞게 블랙 자켓과 블랙 바지를 입었습니다.”

 

이런 상세한 시각적 설명은 이후 모든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해주셨는데 주최 측의 섬세한 준비가 빛나는 대목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워크숍이 시작됐다. 첫 순서는 남형도 기자님의 강연이었다.

 

남형도 기자님은 강연 내용에 앞서 실제로 만났다는 것부터가 참 반가웠다. 남 기자님은 2010년 데뷔 이후 본인만의 독특한 취재·보도 방식인 ‘체헐리즘’을 개척해오셨는데 사실 장애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분이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쓴 벚꽃 축제 체험기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던 기사이다. 그런 기자가 어떤 동기와 과정을 거쳐 기사를 쓰게 되는지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 쓰레기를 치우시는 여사님이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모습을 보고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순간이 기자님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경험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가끔은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이어진 ‘나다움 발견하기’ 워크숍은 재미있는 발견들의 연속이었다. 우선 나를 표현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고르는 과정에서 뜻밖의 단어를 발견했다. 내가 애용하는 AI 비서 Claude와 함께 고민한 끝에 ‘실천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는데, 가전제품 접근성 개선을 위해 그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내 모습이 잘 담긴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에는 유튜버 ‘구르님’ 김지우님이 집 안 곳곳에 IoT 기기를 설치해 스탠드 같은 제품을 음성으로 제어한다고 했는데, 나도 스마트홈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나중에 심도 있는 얘기를 해 보고 싶어졌다. 정원희님이 제안한 ‘세척 없는 가습기’는 당장 어제 가습기를 꺼내 대충 세척하고 쓰고 있는 터라 뜨끔하면서도 정말 공감되는 아이디어였다.

 

‘슈리우스’ 채널을 운영하는 김필우님은 시각장애인이면서도 패션, 특히 신발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데 최근 육아로 1년 정도 콘텐트를 업로드 못하고 있다는 말에 왠지 짠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이어서 가끔 집에 놀러가기도 하는데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신발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100만 구독자 유튜버 ‘원샷한솔’ 김한솔님의 이야기도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인상적이었다. 삼양식품과 협업해 개발한 점자 표기 컵라면 덕분에 나도 종종 도움을 받는데 이런 좋은 사례가 이번 ‘볼드무브’ 커뮤니티에도 이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발표하는 세션에서는 특히 정미나님의 솔직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어려워도 잘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장애와 함께 산다는 건 33년이나 함께 살아온 나도 여전히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내다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이기에 긍정하고 싶고 남들에겐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런 복합적 감정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런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보면 그래도 문득 화해의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때가 바로 그 때다. 그럴 땐 내 장애가, 아니 그걸 더 나은 것으로 승화시킨 내가 대견스러워지는 것이다. ‘볼드무브’도 그런 경험이 되리라 확신한다.

 

처음에는 ‘나다움 발견하기’라는 주제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20대 때 참여했던 ‘장애청년 드림팀’이 떠올라서 왠지 향수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장애에 대해 오랜만에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장애는 종종 꺼내보지 않으면 어느새 나를 규정하는 족쇄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활동들은 늘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꿀잼은 나와 동행해 준 유정과 도도였다. 특히 도도는 행사 내내 귀여운 옹알이를 하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헤이그라운드는 서울에서도 접근성이 잘 갖추어진 곳으로 손에 꼽히는 베뉴라 꼭 도도를 유아차에 태우고 데리고 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의 모임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이야기하는 곳이니까 더더욱 걱정이 없었다. 기대대로 모두들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어 넘 감사했다.


   

[볼드무브 로고 앞에서] 따뜻한 실내 조명 아래, 대형 디스플레이에는 여러 손이 하나로 모이는 볼드무브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떠 있다. 그 앞에 체크무늬 코트를 입은 나와 회색 우주복 같은 따뜻한 옷을 입은 도도가 있다. 도도는 유아차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고, 나는 그런 도도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고 있다.

  - Described by Claude


이런 사회적 의미를 담은 행사일수록 내용만큼이나 형식과 바이브가 중요하다. 감히 평하건대 이번 워크숍은 내용, 형식, 바이브를 모두 잡은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다음 주에는 ‘나다운 챌린지’를 선언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어떤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오갈지, 또 어떤 통찰을 얻게 될지 기대된다. 나 역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다.


* 관련 글: [후기] LG전자가 개발한 작지만 중요한 아이템, 점자 스티커 - 시각장애인 사용자라면 꼭 설치하세요. (워시타워 작동 영상 포함)

장애인 소비자, 국내 기업에겐 그저 투명인간일 뿐인가?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오늘 한국 기업 셀바스의 미국 법인이 주최한 '브레일 이모션'이라는 제품의 데모 웨비나에 참여하며 씁쓸함을 느꼈다. 셀바스는 국내 기업으로 점자 디스플레이/태블릿 제품인 한소네를 만드는 회사이다. 한소네가 미국에서도 잘 팔리기 때문에 미국 법인이 있다.
웨비나의 말미에 마이크를 켜고 한국에서는 이런 웨비나가 잘 없어서 매우 흥미롭게 참여했다고 말하니 데모를 진행한 미국인 시각장애인이 대답한다.
"Ironic."
맞다. 내가 한국 제품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해서 미국 사람들이 주최하는 웨비나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그런데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다.
3년 전, 결혼을 앞두고 LG 가전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했을 때 나는 장애인 고객을 위한 안내가 전혀 없어서 모멸감을 느꼈었다. 당시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제품의 접근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장애인 고객에 대한 안내가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는 무엇이 이슈가 되었었냐 하면 루시 그레코라는 미국인이 LG 세탁기를 리뷰하면서 접근성이 부족하다고 말한 것이 이슈가 됐다. LG는 미국에서 루시 그레코를 찾아가서 인터페이스에 대한 자문을 얻고 점자 스티커를 붙여주면서 제품 개선을 약속했다.
정확히 같은 일이 3년이 지난 올해 2월 내게도 있었다. 관련해서는 블로그에 포스팅도 했지만 매우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감사한 것과는 별개로 LG가 장애인 사용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한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야 수백 가지도 더 될 것이다. 미국은 시장도 크거니와 고객의 구매력도 크다. 그건 장애인 고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시장도 작고 그 중에 장애인 사용자의 구매력은 측정조차 불가능하다. LG 가전을 대규모로 구매할 수 있는 장애인 사용자가 국내에 과연 얼마나 될까? 아니, 시각장애인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한소네조차도 온전히 자비로 구매한 한국인은 손에 꼽을 것이다. 그러니 LG전자는 물론이거니와 셀바스도 국내 시장에서 장애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영업과 마케팅에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

장애인의 소비자 권리와 관련해서는 풀어가야 할 문제가 많이 있다. 하지만 복잡한 솔루션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씁쓸한 분노를 느끼자.
한국의 장애인은 소비자로서는 투명인간일 뿐이다. 보조공학기기 업체에게도 그렇다.

전맹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의 30일 육아 체험기 👶

도도가 세상에 나온 지 30일이 되었습니다! 🎉 원래 이 포스팅을 쓰기 시작한 건 5월 3일 밤인데 올리는 건 5월 5일 점심에서야 가능하네요~ 육아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ㅎ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로서 어려운 점 😓

예상대로 아빠로서의 역할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눈이라는 감각 기관의 도움 없이 소리와 촉각으로만 새로운 기능과 행동양식을 배운다는 건 정말이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간단하게는 아기를 안는 자세에서부터 분유를 타는 일까지 뭐 하나 자연스럽게 되는 일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편안하게 안는 자세와 트림시킬 때 안는 자세가 다르고 젖병을 물리는 각도도 아이가 분유를 마시는 양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조리원에 있을 때 관리사님들의 팔 각도를 일일이 만져보고 실습해 봤지만 추가로 유정의 가이드를 수도 없이 받고 나서야 아기의 머리와 허리가 일직선이 되는 각도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젖병을 물리는 일은 아기의 입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한 팔로 아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젖병을 들다 보니 아이가 얌전히 입이 벌려줄 때는 그나마 쉽게 입의 위치를 찾을 수 있지만, 마구 몸부림을 칠 때는 정확히 젖병을 가져다 대주는 것부터가 어려웠습니다.


육아 과업별 난이도 분석 📊

아빠가 할 일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젖병을 끓는 물에 소독하고 제때 꺼내주는 일(이걸 '열탕 소독'이라고 부르더군요)은 조심스럽게 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면 젖병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육아 과업은 다양한데요. 오늘은 육아 30일 동안 전맹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 입장에서 해 본 일을 중심으로 과업의 난이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 안아주기 (난이도: 하): 처음에 안전한 자세 교육이 필요하지만 연습을 통해 자연스러워집니다.
  • 젖병 물리기 (난이도: 중): 입 찾기, 마시는 속도에 따라 각도 기울이기 등 섬세 작업이 필요합니다.
  • 젖병 씻기 (난이도: 하): 위생을 위하여 젖병 씻기 전용 세제, 전용 솔, 전용 바가지가 필요합니다. 이 외에는 설거지와 비슷.
  • 젖병 열탕 소독 (난이도: 상): 젖병을 끓는 물에 넣고 제때 꺼내어 전용 트레이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젖병 소독기 사용 (난이도: 상): 열탕 소독까지 마친 젖병을 건조시키고 소독시키는 작업인데 전용 소독기에 음성 피드백이 없어서 세부 설정을 조작하기가 어렵습니다.
  • 트림시키기 (난이도: 하): 아기가 트림하기 좋은 자세로 안고 등을 문지르거나 살작 다독여 줍니다. 안는 자세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 기저귀 갈기 (난이도: 중): 기저귀 갈기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배변 상태를 봐서 적시에 해주는 것이 어렵습니다.
  • 옷/스와들업/속싸개 입히고 벗기기 (난이도: 중): 옷감이 부들거려서 모양을 파악하고 방향을 맞추는 것이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 분유 포트 사용 (난이도: 상): 물을 끓여주고 분유에 적당한 온도인 36°C~37°C에 맞게 보온시켜 주다가 설정한 양만큼 출수키시는 용도인데 터치 버튼이고 음성 피드백이 없어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 목욕시키기 (난이도: 상): 세숫대야 2개와 아기 욕조 1개를 준비해 놓고 얼굴, 머리카락, 몸통을 차례로 씻겨준 후 헹궈주고 빠르게 건조시켜주어야 합니다. 아기 귀나 코에 물이 들어갈 수 있고 미끄러워서 놓치기 쉬우므로 옆에서 잡아주는 등 제한적인 역할만 가능합니다.
  • 엉덩이 물로 씻기기 (난이도: 상): 아기가 대변을 보았을 때 세면대나 씽크대에서 엉덩이를 씻겨줍니다. 판때기처럼 생긴 전용 비대를 받쳐놓고 씻길 수 있습니다. 목욕시키기보다는 난이도가 낮지만 역시 안전상의 이유로 역할이 제한됩니다.

시각장애인 아빠의 육아 필수템 🍼

그래도 분유를 타는 일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수월해졌습니다. 브레짜 분유 제조기가 시각장애인들의 구세주이더라고요. 분유와 물을 넣어주면 7초 만에 정확한 비율에 따라 미리 설정해 둔 양의 분유가 제조되어 커피 머신처럼 젖병에 쏟아집니다. 비단 시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많이들 사용하는 기계인데 시각장애인 육아 동지들에게는 필수품인 것 같습니다! (미리 알고 선물해 준 장교조 동지들에게 감사합니다!) 브레짜와 관련해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설정한 양보다 10mL 정도 더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점만 기억한다면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육아템인 것 같습니다.


* 사진 by 유정

설명: 브레짜 분유 제조기. 제품의 윗면에 여섯 개의 버튼이 있다. 마치 한소네 버튼처럼 왼쪽에 3개, 오른쪽에 3개씩 있다. 중앙부에는 LCD 디스플레이가 있다. 버튼 아래 아이콘 모양의 LG전자 점자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브레짜의 버튼 구성은 오른쪽부터 다음과 같습니다.

  • 전원 버튼
  • 시작 버튼
  • 출수량(mL) 조절 버튼
  • 온도 조절 버튼
  • 청소 버튼 (물 빼는 용도)
  • 분유 브랜드 선택 버튼 (분유 제조사별로 할당된 번호가 다르며 각 브랜드에 해당하는 번호는 브레짜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해주는 육아템 💡

제가 도도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온 집안에 AI 스피커를 설치한 일인데요. 그동안 모아놓은 아마존 에코, 애플 홈팟 미니, 구글 홈 미니, 네이버 클로바 등 AI 스피커 6종을 집안 곳곳에 설치하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해 놓았습니다.아기를 재울 때 자장가나 파도 소리를 틀어주고, 아기랑 놀 때는 AJR이나 빅터 우튼, 칙 코리아 같이 분위기를 띄워주는 아티스트(부모의 개취가 다분히 반영됨!)의 음악을 틀어줍니다. AI 스피커는 저만이 아니라 유정도 정말 많이 사용하는데 아기를 안고 있다 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AI 스피커는 조리원에 있을 때도 가져다 놨을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매우 중요한 육아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힘든 점 🥲

초보 전맹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난감한 것은 육아에 필요한 각각의 과업과 단계들이 글 또는 말로 되어 있는 것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유튜브 영상들은 대부분 내레이션이 없고 육아 관련된 수많은 글은 아주 디테일한 행동까지 묘사해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눈으로 배워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게 가장 힘든 점인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좋은 점 ❤️

그럼에도 아기가 내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때 이 모든 걱정과 절망감이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아기의 체온에는 어른의 마음을 녹이는 마술 같은 힘이 있습니다. 아기가 내 품에 폭 안겨서 잠들어 있을 때 저는 다른 아빠들과 똑같은 한 명의 아빠가 됩니다. 저의 장애를 잊고 오롯이 도도와 연결된 기분은 일종의 해방감이라고 표현할 만합니다.

이제 겨우 한 달 지났을 뿐이니 앞으로는 더 많은 난관이 있겠지요. 그래도 도도는 우리 가족에 찾아온 가장 큰 행운입니다. 도도만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배우고 더 행복한 육아생활해 보겠습니다! 🎶

[TFE 리뷰] LG전자가 개발한 작지만 중요한 아이템, 점자 스티커 - 시각장애인 사용자라면 꼭 설치하세요. (워시타워 작동 영상 포함)

요약: 이 글에서는 3년 전에 가전의 접근성 개선을 기대하며 했던 노력들, 이번에 LG전자의 점자 스티커를 가전에 설치하는 과정에서 겪은 감동적인 경험, 점자 스티커의 종류와 부착 원리, 앞으로에 대한 저의 기대를 소개합니다.


들어가며


아기 도도의 출산을 기다리면서 예비 아빠로서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 분야는 가전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스마트 홈 구축을 위해 AI 스피커들도 연결하고 집 안에 있는 여러 기기의 사용법도 처음부터 다시 익혔습니다. 이제 곧 있으면 아이가 나올 텐데 집안일에서 버벅대면 안 되겠죠?


가전이 장벽으로 느껴졌던 3년 전...


문제는 몇 년 전부터 대부분의 가전이 버튼 없이 터치로만 작동하도록 개발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이것은 사실 시각장애인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만져지지도, 소리가 나지도 않는 가전 앞에서 시각장애인은 집안에서조차 소외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3년 전, 저는 이 문제에 관해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고 국가인권위에 장애인차별 진정을 넣기도 했었죠. 저의 페이스북 글을 본 강민정 국회의원님께서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도 발의해 주셨습니다. 저의 활동은 아래 기사들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번엔 다를까?


당시에는 큰 반향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LG전자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스티커를 개발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스마트 홈 앱인 LG 씽큐(LG ThinQ) 앱에 음성 피드백 기능이 개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이른바 로테크(Low technology)에 해당하는 점자와 하이테크(high technology)에 해당하는 앱 활용을 잘 조합하면 가전을 조금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두를 가능케 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하는 것도 언제나 서비스입니다. 제가 인권위 진정을 넣었던 내용 중 하나는 LG전자에서 장애인 사용자에 대한 안내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점이 얼마나 개선되었을지에 대해서는 큰 확신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검색해 보니 장애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LG전자의 블로그 글이 몇 편 나왔습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징조였습니다.



사실 이런 마케팅은 중요합니다. LG전자가 장애인 등 다양한 사용자를 위에 어떤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지 보여주고, 고객 입장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심어 주니까요. 그래서 저는 바로 다음 날 LG전자의 대표 번호인 1544-7777번으로 전화를 걸었죠. 그러고 나서 경험한 일은 저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서비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감동이었다!


먼저, 고객센터 상담사는 매우 친절하게 저의 상황과 요구를 파악했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 후 저에게 콜백을 해 주었습니다. 저의 지역인 강동서비스센터에서 집에 직접 방문해 점자 스티커를 설치해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설치 당일, 놀랍게도 강동서비스센터 직원만이 아니라 LG전자 본부에서 연구원님 두 분이 함께 나오셨습니다. H&A사업본부 고객가치혁신기획파트 박세라 선임 연구원님과 이지연 연구원님이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제가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할 틈도 없이 세 분은 저의 손에 LG전자가 직접 개발한 점자 스티커 꾸러미를 쥐여주며 점자 스티커의 원리와 가전 사용법을 친절히 설명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박세라 선임 연구원님은 점자 스티커를 직접 개발한 분이셨습니다. 저처럼 많은 가전에 한꺼번에 점자 스티커를 설치하는 경우도 드물거니와, LG 고객센터에 점자 스티커 설치까지 신청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현장에서 고객의 만족도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방문해 보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은 점자 스티커를 배송받아서 스스로 설치하거나 가전을 구매할 때 설치 기사님이 붙여주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잠시 LG전자가 자체 개발한 점자 스티커의 종류와 원리에 관해서 짧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사진: LG전자가 개발한 가전용 점자 스티커]

사진 설명: LG전자의 점자 스티커 세트. 검은색의 포장지 위에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점자 스티커 세트를 올려놓았다. 다양한 가전 제품의 기능을 나타내는 아이콘(예를 들어, 전원, 재생 및 일시정지, 플러스, 마이너스 등의 기호를 상징하는 아이콘) 등이 점자로 표현되어 있다. 포장지에도 ‘LG전자’라는 글자가 점자로 표시되어 있다.


스티커의 종류는 어느 제품에나 붙일 수 있도록 범용성이 있는 아이콘 모양의 스티커 10종, 0부터 9까지의 숫자 스티커 그리고 (이게 정말 혁신적인데) 손가락이 움직이는 길을 표시해 주는 직선 모양의 가이드라인 스티커, 이렇게 세 가지로 개발되어 있습니다.

스티커를 부착하는 원리는 먼저 손가락이 닿을 만한 위치에 아이콘이나 숫자 스티커를 붙이고, 거기서부터 터치 버튼까지의 길을 가이드라인 스티커로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터치 버튼이 보통 기기 본체에서 매우 좁은 면적에 위치해 있고 살짝만 닿아도 작동이 되기 때문에 아이콘이나 숫자 스티커가 터치 버튼에 겹쳐서는 안 되고, 실제 버튼의 좌우 또는 상하 2c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붙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가이드라인 스티커를 수직 또는 수평으로 정확히 붙여 줍니다.

이렇게 하면 시각장애인이 터치 버튼의 위치를 잘 모르더라도 점자 스티커를 따라가면서 원하는 터치 버튼을 한 번에 정확하게 누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모양과 사용법은 게시물 하단에 있는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박세라 선임 연구원님은 저의 집에 있는 가전을 하나하나 돌며 점자 스티커를 붙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점자 스티커의 모양과 기능을 상세히 설명하며 스마트폰 앱과 어떻게 연동이 되는지까지 확인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가전제품의 기능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해 줄 수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점자 스티커를 붙이는 작업도 미세 작업이어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번에 저희 집에서 점자 스티커를 설치한 가전은 로봇청소기, 에어컨, 스타일러, 오븐, 냉장고, 식기세척기, 워시타워, 등 LG 가전 7종과 밥솥, 인덕션, 제습기, 가습기, 보일러 온도조절기, 그리고 나중에 제가 따로 설치한 AI 스피커 등 다른 브랜드 가전 6종까지 총 13종이었습니다. 이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LG전자가 개발한 점자 스티커는 꼭 LG 가전이 아니어도 집 안에 있는 어느 가전에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 보니 박세라 연구원님은 아이콘 모양의 스티커를 원래 30종 정도 개발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촉각 인지력을 고려하여 실제 패키지에는 10종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10종은 직관적인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밋밋한 터치 버튼을 불편해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자 스티커가 의미하는 것은 점자 그 이상


집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가전에 점자 스티커를 붙이고 나니 3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준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습니다. 단순히 감사한 정도가 아니라 3년 전 혼자 싸우면서 느꼈던 서러움까지 다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단순한 점자 스티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개발하기 위해 선임 연구원님이 거쳤을 수많은 기획 회의와 시행착오가 예상되어서 더욱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제품의 완성은 서비스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습니다. 가전제품은 궁극적으로 물건이 아니라 서비스인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의 문제는 소프트웨어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IoT가 발달할수록 예상하지 못했던 접근성 이슈가 발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장애인 사용자에게 획기적인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최근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인간과 기계 간의 상호작용이 더욱 직관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제까지나 기본은 충실히 지켜주어야 합니다. 점자 스티커는 시각장애인에게 스마트폰이 없이도 독립적으로 가전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고 스마트폰이 있다면 더욱 풍성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점자는 어떠한 첨단 기술로도 대체할 수 없는 직관적 매체이고 다른 모든 수단을 보완·강화 하는 토대가 되어 줍니다.


이후에 조사해 보니 LG전자는 디자인과 서비스 모든 면에서 가전을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시키려는 ‘심리스 테크놀로지(끊김 없는 사용자 경험을 중시하는 기술 트렌드)’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많이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IoT 분야에서 국제 표준을 제정하는 단체인 CSA(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에서 최근에 의장사를 맡았던 것도 가전과 생활의 연결을 중시하는 LG전자의 접근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러한 화려한 기술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점자 스티커와 같은 작은 디테일에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닌까 합니다. 진정한 ‘심리스’가 구현되려면 역으로 현재 가장 심리스하지 않은 경험을 하는 사용자의 어려움을 반드시 살펴봐야 할 테니 말입니다. 앞으로 많은 브랜드가 LG와 같이 접근성(accessibility)을 사용자 경험(UX)의 사례 스터디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바라봐 주었으면 합니다.


한편, 그런 의미에서 LG전자가 개발한 점자 스티커를 어떤 기업이든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공 샘플로 공개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오픈소스가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것처럼 LG전자의 점자 스티커가 범용화되면 더 많은 시각장애인 사용자가 혜택을 누림과 동시에 다양한 기업의 접근성 기술 발전에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오며


도도의 출산을 기다리며 집을 더욱 접근성 높은 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은 무척 즐거웠습니다. 도도가 나오면 집 곳곳에서 점자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 유정의 가사 부담도 조금이라도 더 덜어줄 수 있겠지요! 제가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은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늘 그랬듯 환경을 사소하게 변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도도에게는 장애인 아빠가 비장애인이 중심인 세상에서 ‘심리스’하게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P.S.: 점자 스티커를 사용해서 워시타워를 작동시키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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