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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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왼팔에 칭얼거리는 도도를 안고 오른손으로 분유를 탄 젖병 뚜껑을 열고 있었다. 나는 아기를 안은 채 주방 아일랜드 옆에 서 있었다. 그때 도도가 갑자기 회전하면서 내 왼편으로 벗어나려고 몸을 기울였다. 상체가 단번에 옆으로 넘어갔다. 몸무게 10kg의 우람한 아이여서 그런지 움직임이 특별히 크지 않았는데도 아차 하는 찰나에 쑥 넘어갔다.

빨리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도도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도도는 아일랜드 옆에 세워 둔 하이체어의 앉는 부분에 얼굴을 그대로 처박았다. 그제야 나는 도도의 몸을 안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내가 아이를 세워서 안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가 떨어진 거리가 족히 1미터는 되었다.

도도는 괴성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말 그대로 젖 먹던 힘을 다해 울었다. 도도를 부여잡고 아이를 달래면서 나도 속으로 울었다.

“도도야, 미안해. 미안해. 아프지. 미안해...”

아이는 20분은 족히 울었다. 그리고 나서야 울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지만 숨소리에는 여전히 울음이 묻어 있었다. 뺨과 턱, 목과 이마를 만져 보면서 다친 곳이 없는지 계속 살폈지만 촉각만으론 알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아버지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얼굴에 상처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카메라를 이쪽저쪽 비추는 사이 도도는 가만히 손을 뻗어 내 스마트폰을 잡으려고 했다. 평소 같은 행동이었다. 아버지는 도도의 표정이 다행히 편안해 보인다고 했다. 아기가 배고파 보이길래 전화를 끊고 분유를 먹였다. 30분여 전에 아이에게 주려고 탔던 그 분유였다.

도도는 다행히도 평화롭게 분유를 먹었다. 하지만 목이나 어깨 근육이 놀랐을까, 뼈가 다치진 않았을까 너무 걱정되었다. 몸을 살살 만지며 눌러 보았지만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도도가 졸려 하길래 살살 도도를 눕혔다. 잠깐 잠이 들었다. 하지만 한 5분 만에 다시 일어나서 울었다. 그러기를 두세 번을 반복했다. 이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몸이 아픈 건지, 마음이 놀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도도를 꼭 껴안아 달래주었다.

아기가 의자로 떨어진 일이 있고 나서 2시간여 후에 유정이 돌아왔다. 내가 미리 말해 놓은 터라 유정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황급히 안방으로 뛰어가 도도를 꼭 껴안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다시 눈물을 훔쳤다. 도도는 자다가 깨서 엄마를 보고 씩 웃어주곤 다시 깊이 잠들었다. 곧 유정도 아기 옆에서 함께 잠들었다.

유정에게 할 말이 없었다. 이건 온전히 나의 부주의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가 너무 안이했다. 두 손으로 안고 있어야 했는데 한 팔로 안고서 동시에 분유를 타려고 했던 내 잘못이었다. 그동안 도도가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서, 늘 내 어깨에 잘 매달려주어서 방심했던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도도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도도가 지난 6개월 동안 큰 사고 없이 잘 큰 것은 온전히 유정의 초인적인 노력과 행운 덕분이었다. 앞으로는 점점 더 어려울 것이다. 우리 부부는 가급적 내가 아기를 혼자 보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늘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이렇게 가슴 철렁한 일을 겪으며 부모가 되어가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조심해야겠다.

부디 도도가 건강하게만 자라 주기를.

나쁜 아빠가 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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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앞에 앉아 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응애애애애애애애~"

도도의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운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바닥에 있는 매트로 내려가 급히 더듬어 보니 도도가 역류방지쿠션에서 옆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모빌 받침에 부딪힌 것 같았다.

시터님도 깜짝 놀라 달려 오시고 나도 도도를 어르고 달래며 평화롭기만 했던 금요일 오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도도가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는 순간.

생후 다섯 달이 되어가는 도도는 이제 뒤집기는 기본이고 조금씩 배밀이를 한다. 유정이 도도가 깨어 있을 땐 항시 옆에 붙어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본격 육아 5일 만에 가슴 철렁한 순간을 겪고 말았다.

홈카메라에는 잠에서 깨어 쿠션을 탈출하려고 뒤집는 도도와 그런 것도 모르고 헤드폰을 쓴 채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나의 뒷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나쁜 아빠.

전맹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의 30일 육아 체험기 👶

도도가 세상에 나온 지 30일이 되었습니다! 🎉 원래 이 포스팅을 쓰기 시작한 건 5월 3일 밤인데 올리는 건 5월 5일 점심에서야 가능하네요~ 육아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ㅎ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로서 어려운 점 😓

예상대로 아빠로서의 역할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눈이라는 감각 기관의 도움 없이 소리와 촉각으로만 새로운 기능과 행동양식을 배운다는 건 정말이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간단하게는 아기를 안는 자세에서부터 분유를 타는 일까지 뭐 하나 자연스럽게 되는 일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편안하게 안는 자세와 트림시킬 때 안는 자세가 다르고 젖병을 물리는 각도도 아이가 분유를 마시는 양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져야 합니다. 조리원에 있을 때 관리사님들의 팔 각도를 일일이 만져보고 실습해 봤지만 추가로 유정의 가이드를 수도 없이 받고 나서야 아기의 머리와 허리가 일직선이 되는 각도에 익숙해질 수 있었습니다.

젖병을 물리는 일은 아기의 입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아 당황했습니다. 한 팔로 아기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젖병을 들다 보니 아이가 얌전히 입이 벌려줄 때는 그나마 쉽게 입의 위치를 찾을 수 있지만, 마구 몸부림을 칠 때는 정확히 젖병을 가져다 대주는 것부터가 어려웠습니다.


육아 과업별 난이도 분석 📊

아빠가 할 일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젖병을 끓는 물에 소독하고 제때 꺼내주는 일(이걸 '열탕 소독'이라고 부르더군요)은 조심스럽게 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타이밍을 잘 맞추지 못하면 젖병이 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아직 시도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육아 과업은 다양한데요. 오늘은 육아 30일 동안 전맹 시각장애인 초보 아빠 입장에서 해 본 일을 중심으로 과업의 난이도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 안아주기 (난이도: 하): 처음에 안전한 자세 교육이 필요하지만 연습을 통해 자연스러워집니다.
  • 젖병 물리기 (난이도: 중): 입 찾기, 마시는 속도에 따라 각도 기울이기 등 섬세 작업이 필요합니다.
  • 젖병 씻기 (난이도: 하): 위생을 위하여 젖병 씻기 전용 세제, 전용 솔, 전용 바가지가 필요합니다. 이 외에는 설거지와 비슷.
  • 젖병 열탕 소독 (난이도: 상): 젖병을 끓는 물에 넣고 제때 꺼내어 전용 트레이에 올려놓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 젖병 소독기 사용 (난이도: 상): 열탕 소독까지 마친 젖병을 건조시키고 소독시키는 작업인데 전용 소독기에 음성 피드백이 없어서 세부 설정을 조작하기가 어렵습니다.
  • 트림시키기 (난이도: 하): 아기가 트림하기 좋은 자세로 안고 등을 문지르거나 살작 다독여 줍니다. 안는 자세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 기저귀 갈기 (난이도: 중): 기저귀 갈기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배변 상태를 봐서 적시에 해주는 것이 어렵습니다.
  • 옷/스와들업/속싸개 입히고 벗기기 (난이도: 중): 옷감이 부들거려서 모양을 파악하고 방향을 맞추는 것이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연습을 통해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 분유 포트 사용 (난이도: 상): 물을 끓여주고 분유에 적당한 온도인 36°C~37°C에 맞게 보온시켜 주다가 설정한 양만큼 출수키시는 용도인데 터치 버튼이고 음성 피드백이 없어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 목욕시키기 (난이도: 상): 세숫대야 2개와 아기 욕조 1개를 준비해 놓고 얼굴, 머리카락, 몸통을 차례로 씻겨준 후 헹궈주고 빠르게 건조시켜주어야 합니다. 아기 귀나 코에 물이 들어갈 수 있고 미끄러워서 놓치기 쉬우므로 옆에서 잡아주는 등 제한적인 역할만 가능합니다.
  • 엉덩이 물로 씻기기 (난이도: 상): 아기가 대변을 보았을 때 세면대나 씽크대에서 엉덩이를 씻겨줍니다. 판때기처럼 생긴 전용 비대를 받쳐놓고 씻길 수 있습니다. 목욕시키기보다는 난이도가 낮지만 역시 안전상의 이유로 역할이 제한됩니다.

시각장애인 아빠의 육아 필수템 🍼

그래도 분유를 타는 일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수월해졌습니다. 브레짜 분유 제조기가 시각장애인들의 구세주이더라고요. 분유와 물을 넣어주면 7초 만에 정확한 비율에 따라 미리 설정해 둔 양의 분유가 제조되어 커피 머신처럼 젖병에 쏟아집니다. 비단 시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많이들 사용하는 기계인데 시각장애인 육아 동지들에게는 필수품인 것 같습니다! (미리 알고 선물해 준 장교조 동지들에게 감사합니다!) 브레짜와 관련해서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설정한 양보다 10mL 정도 더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점만 기억한다면 거의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육아템인 것 같습니다.


* 사진 by 유정

설명: 브레짜 분유 제조기. 제품의 윗면에 여섯 개의 버튼이 있다. 마치 한소네 버튼처럼 왼쪽에 3개, 오른쪽에 3개씩 있다. 중앙부에는 LCD 디스플레이가 있다. 버튼 아래 아이콘 모양의 LG전자 점자 스티커를 붙여 놓았다.


브레짜의 버튼 구성은 오른쪽부터 다음과 같습니다.

  • 전원 버튼
  • 시작 버튼
  • 출수량(mL) 조절 버튼
  • 온도 조절 버튼
  • 청소 버튼 (물 빼는 용도)
  • 분유 브랜드 선택 버튼 (분유 제조사별로 할당된 번호가 다르며 각 브랜드에 해당하는 번호는 브레짜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해주는 육아템 💡

제가 도도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해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온 집안에 AI 스피커를 설치한 일인데요. 그동안 모아놓은 아마존 에코, 애플 홈팟 미니, 구글 홈 미니, 네이버 클로바 등 AI 스피커 6종을 집안 곳곳에 설치하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독해 놓았습니다.아기를 재울 때 자장가나 파도 소리를 틀어주고, 아기랑 놀 때는 AJR이나 빅터 우튼, 칙 코리아 같이 분위기를 띄워주는 아티스트(부모의 개취가 다분히 반영됨!)의 음악을 틀어줍니다. AI 스피커는 저만이 아니라 유정도 정말 많이 사용하는데 아기를 안고 있다 보면 스마트폰을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AI 스피커는 조리원에 있을 때도 가져다 놨을 만큼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에게 매우 중요한 육아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힘든 점 🥲

초보 전맹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난감한 것은 육아에 필요한 각각의 과업과 단계들이 글 또는 말로 되어 있는 것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유튜브 영상들은 대부분 내레이션이 없고 육아 관련된 수많은 글은 아주 디테일한 행동까지 묘사해 주지는 않습니다. 한마디로 눈으로 배워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게 가장 힘든 점인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빠로서 가장 좋은 점 ❤️

그럼에도 아기가 내 품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때 이 모든 걱정과 절망감이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아기의 체온에는 어른의 마음을 녹이는 마술 같은 힘이 있습니다. 아기가 내 품에 폭 안겨서 잠들어 있을 때 저는 다른 아빠들과 똑같은 한 명의 아빠가 됩니다. 저의 장애를 잊고 오롯이 도도와 연결된 기분은 일종의 해방감이라고 표현할 만합니다.

이제 겨우 한 달 지났을 뿐이니 앞으로는 더 많은 난관이 있겠지요. 그래도 도도는 우리 가족에 찾아온 가장 큰 행운입니다. 도도만을 생각하며 더 열심히 배우고 더 행복한 육아생활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