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 - LG전자 볼드무브 1기 활동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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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주관하고 무의가 함께하는 볼드무브 1기 활동이 짧고 굵게 마무리되었다. 모든 활동이 끝난 것은 아니고 오프라인 3회, 온라인 2회로 이루어진 핵심적인 모임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한 달여 동안은 볼드무버들의 제품 리뷰와 LG전자의 매거진 제작 및 출판회 등이 더 이어질 예정이다. 

첫 헤이그라운드 워크숍에 다녀오고 나서 후기를 썼는데 이후에 이어진 온라인 밋업 두 차례와 오프라인 모임 두 차례에 대한 리뷰를 간략하게 작성해 보려고 한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프로그램이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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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온라인 밋업


첫 워크숍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진행된 첫 번째 온라인 모임에서는 10명으로 구성된 1기 볼드 무버들이 처음으로 두 팀으로 나뉘었다. 나는 B팀에 속했는데 같은 팀에는 모주영, 전선미, 이승일님이 함께했다. 이때는 각자의 삶과 인상 깊었던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가전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얘기하며 서로를 조금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었다.

모주영님은 정수기, 인덕션, 전자레인지를 자주 사용하고 특히 이동식 트롤리가 가전제품 사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선미님은 정수기를 가장 편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온수를 사용할 때 안전에 대한 걱정도 있다고 했다. 이승일님은 세탁기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인데 드럼통 안쪽으로 몸을 기울여 빨래를 꺼내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아마존 에코, 구글 홈, 애플 홈팟, 네이버 클로바 등 AI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보일러나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을 음성으로 제어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경험담을 공유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전제품을 활용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는 걸 이 모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2차 워크숍 (헤이그라운드)


[이미지 설명] 볼드무브 2차 워크숍에서 문자통역사가 흰 키보드를 치고 있는 모습. 볼드무브가 열린 헤이그라운드 브릭스는 모든 행사에 문자통역을 지원한다.


12월 4일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2차 워크숍은 박세라 LG전자 선임연구원님의 진솔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이런 형태의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박 선임님은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내준 작은 공감들이 모여 지금의 볼드무브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수의 이슈는 소수이기 때문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참가자들이기에 박 선임님의 짧은 발표가 끝나고 큰 박수가 터졌다.

1부에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유정님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 볼드무브 1기에는 '원샷한솔', '구르님' 등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는데, 강연을 들으면서 과연 이 시대의 장애 관련 콘텐츠는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사회 전반의 장애 감수성을 높이고, 새로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크리에이터 자신의 긍정적 자아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형성된 크리에이터들의 긍정적 자아 이미지는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전이되고, 다시 높아진 사회의 인권 감수성과 만나 이전에는 없던 화학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나는 그러한 화학작용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진보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지 생각했다. 

2부에서는 각자의 실천적 목표를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세 가지 큰 미션을 정했다. 첫째는 가정생활에서의 의존성 줄이기다. 매일 집안일이나 육아 중 최소 한 가지는 혼자 독립적으로 해내고 이를 인증하는 것을 작은 목표로 잡았다. 둘째는 TFE(Tech for Everyone)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가전 접근성 관련 기사를 읽고, LG ThinQ 앱의 기능을 시험해 보고 피드백을 남기기로 했다. 셋째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여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한편, 첫 워크숍에 이어 이날도 도도와 유정이 함께했다. 내가 워크숍에 몰두하는 동안, 도도는 행사장 뒤편에서 테이블 여섯 개를 이어 붙인 즉석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특히 원샷한솔 삼촌과 함께 보낸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도도가 다양한 어른들과 어울리며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커뮤니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2차 온라인 밋업


12월 11일에 열린 이 온라인 모임에는 하마터면 나는 참여하지 못 할 뻔했다. 아내 유정이 외출한 사이 아기 도도를 혼자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참여가 원활하지 못했음에도 B팀 팀원들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고, 회의 내내 스크린에 난입했던 도도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채팅방에 올려주시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는 B팀이 본격적으로 해킹할 가전제품을 정했는데 정수기로 결정됐다. 정수기 한 제품만 가지고도 할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대화는 모임이 끝나고도 한참 채팅방에서 이어졌다. 팀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정수기의 용도는 아침 물 마시기, 따뜻한 차 준비하기, 얼음 사용하기 등 다양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팀원들은 높이 조절과 온수 사용의 안전성이, 시각장애가 있는 나는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의 접근성 문제가 정수기를 사용하면서 주로 겪는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미 현재 상태로 만족스러운 점도 많았다. 최신에 나온 정수기들은 온도 설정 유지 기능, 구체적인 출수량을 정해놓고 내릴 수 있는 기능 등 장애인 사용자들에게 특히 유용한 기능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슬림한 디자인 등 인테리어 요소로서의 기능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컴포트 키트의 개발과 음성 인식 기능의 고도화 등 제품 개선이 조금만 더 수반된다면 정수기 정복도 머지않은 미래로 보였다.


3차 워크숍 (그라운드 220, 마지막 모임)


12월 18일에 열린 마지막 워크숍은 장소부터 특별했다. LG전자의 가전 체험형 쇼룸인 영등포 그라운드 220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박세라 선임님의 제안으로 빨강과 초록의 드레스 코드로 연말 분위기를 살려 보기로 했지만 나는 옷의 색깔을 잘못 파악하고 남색 옷을 입고 참석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이미지 설명] LG전자의 그라운드 220에서 세탁기와 건조기가 전시된 공간을 배경으로, 이승일님이 회색옷을 입은 홍윤희 이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음. 배경에는 여러 대의 LG TROMM Objet Collection 세탁기와 건조기가 전시되어 있고, 홍윤희 이사장 앞으로 고개를 숙인 초록색 니트를 입은 스토리소사이어티 구아정 이사님의 뒷모습도 보임.

[이미지 설명] LG전자 매장에서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원샷한솔님이 깔끔한 디자인의 LG 정수기의 조작 패널을 살펴보고 있음. LG 직원이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으로 제품의 버튼과 인터페이스를 한솔님에게 가리키며 세밀하게 확인해 주는 모습.

[이미지 설명] 나와 LG전자 직원이 그라운드 220의 흰색 테이블에 앉아 대화 나누는 모습. 나는 LG의 점자 스티커를 만지고 있고, 맞은편에 흰색 니트 스웨터를 입은 직원이 설명을 하고 있음.


우리는 먼저 1층 쇼룸에서 LG전자의 다양한 가전제품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세탁기나 청소기를 휠체어 사용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정수기와 오븐의 터치 패널을 시각장애인 사용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조작할 수 있을지 실물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니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렇게 자유롭게 쇼룸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해방감이 느껴졌다. 가전제품의 구매에 있어 사실 많은 장애인 사용자들은 사전 정보를 얻거나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워크숍은 2층으로 올라가 스토리 소사이어티 채자영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립재활원 이평호 연구원의 ‘보조기기를 통한 나다움의 발견과 접근성 향상’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은 후, 팀별로 모여 2차 온라인 밋업에서 나눈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우리 B팀은 정수기 챌린지를 하고 있었으므로 더 편리한 정수기 사용을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고민해 보았다. 상지 장애 및 뇌병변장애가 있는 사용자들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컴포트 키트로 뜨거운 물 사용 시 쉽게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이동형 가림막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각장애인들이 어려워하는 유지관리 측면에서 필터 교체 시기에 대한 알림 기능 강화와 오염 방지를 위한 자동 세척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안되었다. 더 나아가 렌탈 서비스와 통합된 관리 시스템 안에서 특별히 장애인 사용자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개선 체계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러한 제품 개선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접근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구현할 것과 컴포트 키트의 핵심 원칙이 ‘최소한의 변화로 최대한의 효과(Less is More)’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우리는 제품 디자인의 심미성을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았다. 이 점에 있어 LG전자는 이미 방향을 정확히 잡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앞으로도 더욱 굳건히 그 방향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이 모임에서는 마지막으로 볼드무버들이 돌아가며 참여 소감을 나누었다. 비록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이것이 끝이 아닌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귀갓길에 올랐다. 주차장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홍윤희 이사장님 등 무의 매니저님들과 LG전자 관계자님들이 에스코트와 환송을 해 주었다. 이 환대야말로 이번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내내 나와 참여자들을 감동시킨 포인트였다. 볼드무버들의 역할은 이제 그 환대를 더 많은 LG전자 장애인 소비자들이 느낄 수 있게 주체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일 테다. 


앞으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1기 볼드무버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LG전자 브랜드 해킹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냈다. LG전자는 실제로 추후 컴포트 키트 개발에 이 의견들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LG전자는 지난 12월 9일에 신규 컴포트 키트 6종을 공개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덕션 실리콘 패드와 정수기 실리콘 커버, 저시력자를 위한 로봇청소기 컬러시트,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냉장고 회전 선반 등이 그것이다. (관련 기사: LG전자, ‘컴포트 키트’ 신규 6종 출시)

그러나 LG전자의 장애인 소비자 관련 사업은 컴포트 키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LG전자가 추진해 온 사업들을 보면 그 방향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2019: 시·청각장애인용 TV 보급사업
  • 2021: 전용 점자 스티커 배포, 장애인 자문단 운영, 수어 상담 서비스 도입
  • 2022: 아이콘 모양의 범용 점자 스티커 개발 및 보급
  • 2023: ‘모두를 위한 모두의 LG’ 캠페인
  • 2024: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보조 액세서리, 컴포트 키트 출시 (3월, 12월)
이 트렌드를 요약하면 일방향성 자선 사업에서 쌍방향 소통을 통한 제품·서비스 개선으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2020년 이전에는 LG전자에게 장애인을 위한 제품은 있었지만 ‘장애인 소비자’는 없었다. 그러나 2021년부터는 LG전자가 직접 장애인 소비자와 소통을 시작했고, 빌드업을 거쳐 2024년 말에 바로 우리가 참여한 볼드무브라는 커뮤니티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LG전자의 변화에 더 많은 장애인 소비자가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LG전자는 이미 올해 3월 국립재활원과 협약을 맺어 가전제품 접근성 개선을 위한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또한 ‘모두를 위한 모두의 LG’ 캠페인을 통해 장애인과 시니어를 위한 제품 교육 영상을 제작하고, 매장에서도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장의 제품 개선을 넘어 연구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서비스와도 연결하는 것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 기업의 ESG 비전인 ‘모두의 더 나은 삶(Better Life for All)’을 실천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장애인 소비자를 파트너로 보고 지속적인 발굴 및 협업을 늘려가는 것은 무척 반갑다. LG전자 입장에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다양한 사용자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장애인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기회이니 강력한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LG전자는 가전을 넘어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을 표방하고 있는데 장애인 소비자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프런티어 기업인 LG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나는 볼드무브가 이러한 LG전자의 장기 전략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동안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장애 관련 사업은 일회성이거나 공급자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1기 볼드무브의 활동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지만 이러한 LG전자의 여정에 나도, 다른 볼드무버들도 계속해서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후기]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 반가웠던 LG전자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 첫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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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와 사단법인 무의가 함께 만든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의 첫 모임에 다녀왔다.

 

‘볼드무브’는 ‘Bold Today, Possible Tomorrow(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라는 슬로건으로 장애인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실제 제품 개선 아이디어까지 창출할 목적으로 LG전자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LG전자는 ‘모두를 위한 가전’을 표방하며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촉각 스티커를 비롯해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혁신적 도구들을 ‘컴포트 키트’라는 이름으로 개발해왔다. 여기에 ‘모두의 1층’, ‘휠체어로 성수 완전정복 지도’ 개발 등 늘 상상을 뛰어넘는 장애인 이동권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무의가 만났으니, 이보다 더 기대되는 협업 프로젝트도 드물 것 같다!


[첫 모임 단체 사진] 빨간색과 흰색의 볼드무브 배경 현수막 앞에서 8명의 참가자들이 다양한 포즈로 활기차게 서 있다. 앞줄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4명의 참가자가 나란히 앉아 각각 밝은 미소와 함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 참가자는 ‘BOLD MOVE’ 피켓을 들고 있고, 다른 참가자는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뒷줄에는 서 있는 4명의 참가자들이 수어로 ‘LG’ 모양을 만들어 볼드무브의 정신을 표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참가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포즈와 따뜻한 표정, 나무 천장에서 내려오는 부드러운 조명이 어우러져 화기애애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Described by ChatGPT

 

앞으로 나를 포함한 10여 명의 1기 볼드무버들은 3개월 동안 가전제품을 통해 ‘나다움’을 발견하고,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직접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오늘은 바로 그 첫 모임이었다. 장소는 늘 갈 때마다 정말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는 설렘을 주는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이었다.

 

첫 모임에서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의 ‘나만의 이야기를세상에 용기 있게 전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듣고, ‘나다움 발견하기’ 워크숍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은 스토리 소사이어티의 채자영 대표님이 해 주셨는데 처음 뵙는 분이지만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시각장애인 참가자들을 위해 자신의 외모와 인상착의를 먼저 설명하고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저는 167cm 정도의 키이고 오늘의 분위기에 맞게 블랙 자켓과 블랙 바지를 입었습니다.”

 

이런 상세한 시각적 설명은 이후 모든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해주셨는데 주최 측의 섬세한 준비가 빛나는 대목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워크숍이 시작됐다. 첫 순서는 남형도 기자님의 강연이었다.

 

남형도 기자님은 강연 내용에 앞서 실제로 만났다는 것부터가 참 반가웠다. 남 기자님은 2010년 데뷔 이후 본인만의 독특한 취재·보도 방식인 ‘체헐리즘’을 개척해오셨는데 사실 장애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분이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쓴 벚꽃 축제 체험기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던 기사이다. 그런 기자가 어떤 동기와 과정을 거쳐 기사를 쓰게 되는지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 쓰레기를 치우시는 여사님이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모습을 보고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순간이 기자님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경험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가끔은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이어진 ‘나다움 발견하기’ 워크숍은 재미있는 발견들의 연속이었다. 우선 나를 표현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고르는 과정에서 뜻밖의 단어를 발견했다. 내가 애용하는 AI 비서 Claude와 함께 고민한 끝에 ‘실천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는데, 가전제품 접근성 개선을 위해 그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내 모습이 잘 담긴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에는 유튜버 ‘구르님’ 김지우님이 집 안 곳곳에 IoT 기기를 설치해 스탠드 같은 제품을 음성으로 제어한다고 했는데, 나도 스마트홈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나중에 심도 있는 얘기를 해 보고 싶어졌다. 정원희님이 제안한 ‘세척 없는 가습기’는 당장 어제 가습기를 꺼내 대충 세척하고 쓰고 있는 터라 뜨끔하면서도 정말 공감되는 아이디어였다.

 

‘슈리우스’ 채널을 운영하는 김필우님은 시각장애인이면서도 패션, 특히 신발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데 최근 육아로 1년 정도 콘텐트를 업로드 못하고 있다는 말에 왠지 짠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이어서 가끔 집에 놀러가기도 하는데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신발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100만 구독자 유튜버 ‘원샷한솔’ 김한솔님의 이야기도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인상적이었다. 삼양식품과 협업해 개발한 점자 표기 컵라면 덕분에 나도 종종 도움을 받는데 이런 좋은 사례가 이번 ‘볼드무브’ 커뮤니티에도 이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발표하는 세션에서는 특히 정미나님의 솔직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어려워도 잘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장애와 함께 산다는 건 33년이나 함께 살아온 나도 여전히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내다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이기에 긍정하고 싶고 남들에겐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런 복합적 감정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런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보면 그래도 문득 화해의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때가 바로 그 때다. 그럴 땐 내 장애가, 아니 그걸 더 나은 것으로 승화시킨 내가 대견스러워지는 것이다. ‘볼드무브’도 그런 경험이 되리라 확신한다.

 

처음에는 ‘나다움 발견하기’라는 주제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20대 때 참여했던 ‘장애청년 드림팀’이 떠올라서 왠지 향수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장애에 대해 오랜만에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장애는 종종 꺼내보지 않으면 어느새 나를 규정하는 족쇄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활동들은 늘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꿀잼은 나와 동행해 준 유정과 도도였다. 특히 도도는 행사 내내 귀여운 옹알이를 하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헤이그라운드는 서울에서도 접근성이 잘 갖추어진 곳으로 손에 꼽히는 베뉴라 꼭 도도를 유아차에 태우고 데리고 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의 모임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이야기하는 곳이니까 더더욱 걱정이 없었다. 기대대로 모두들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어 넘 감사했다.


   

[볼드무브 로고 앞에서] 따뜻한 실내 조명 아래, 대형 디스플레이에는 여러 손이 하나로 모이는 볼드무브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떠 있다. 그 앞에 체크무늬 코트를 입은 나와 회색 우주복 같은 따뜻한 옷을 입은 도도가 있다. 도도는 유아차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고, 나는 그런 도도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고 있다.

  - Described by Claude


이런 사회적 의미를 담은 행사일수록 내용만큼이나 형식과 바이브가 중요하다. 감히 평하건대 이번 워크숍은 내용, 형식, 바이브를 모두 잡은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다음 주에는 ‘나다운 챌린지’를 선언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어떤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오갈지, 또 어떤 통찰을 얻게 될지 기대된다. 나 역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다.


* 관련 글: [후기] LG전자가 개발한 작지만 중요한 아이템, 점자 스티커 - 시각장애인 사용자라면 꼭 설치하세요. (워시타워 작동 영상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