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가 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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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가 J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생후 200일을 1주일 정도 앞둔 10월 13일이었다. 무신론자인 나에게도 세례식은 특별했다.

사진 설명: 제기동 성당에서 진행된 도도 이시도로의 세례식 장면이다. 나무로 된 강단 앞에 서 있는 유정과 헌용, 그리고 도도의 대부 테오도로의 모습이 보인다. 헌용이 안고 있는 도도가 대부님을 바라보고 있다. 가족 모두가 정장 차림으로 특별한 날의 의미를 더하는 분위기이다. - Described by Claude

한 사람이 특별한 공로나 조건 없이 어떤 커뮤니티로부터 받아들여지고 환대받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의례로 공식화한다는 것은 강렬하게 따뜻한 경험이다. 더군다나 천주교는 이렇게 받아들여진 신자에게 성인의 이름을 딴 세례명을 선사한다. 세례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세례명의 주인공인 성인과 동일시하며 그 삶의 궤적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천주교인 사람들끼리 만나면 꼭 서로 세례명을 물어보곤 한다. 마치 그로부터 서로의 삶의 태도에 대한 힌트를 얻기라도 하는 것처럼.
도도의 세례명은 이시도로이다. 세비야의 성인 이시도로(Isidore of Seville)는 축일이 도도의 생일과 가깝기도 하거니와 그의 삶은 우리 부부와 많이 공명한다. 6세기~7세기 세비야의 대주교를 지냈고 「어원론(Etymologiae)」이라는 당대의 백과사전을 펴내어 중세 유럽의 지식 전수와 교육에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통번역을 전공했고 이젠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우리 부부와 통하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성 이시도르는 방대한 정보를 분류하고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인터넷과 프로그래머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다고 하는데 이 또한 힙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세례명을 이시도로로 결정한 것은 에스파냐의 정열을 가지고 있고, 도도의 ‘도’라는 글자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유정에겐 무척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사진 설명: 세례식의 핵심 순간을 포착한 장면이다. 흰색 제의를 입은 신부님이 의식을 진행 중이며, 신부님에 가려 유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헌용이 도도 이시도로를 안고 있고, 도도 이시도로는 신부님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옆에 서 있는 대부 테오도로가 미소를 지으며 도도 이시도로를 바라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경건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 Described by Claude

세례식은 유정의 고등학교 절친이기도 하면서 직장인 밴드 보컬이기도 한 C의 아기 D와 함께여서 더 특별했다. 생년월일이 겨우 10주밖에 차이 나지 않는 두 남자아이가 같은 날 함께 세례를 받으니 세례식 내내 가족들의 기쁨이 두 배가 되었다. 도도의 대부가 되어준 테오도로는 제기동 성당에서 유정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청년으로 이젠 나와도 인연이 깊다. 만날 때면 늘 남다른 센스로 나를 잘 챙겨줄 뿐 아니라 취미로 베이스 기타를 친다는 흔치 않은 공통점도 있다. 사실 TMI를 밝히자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메인 베이스 기타는 테오도로로부터 중고로 구매한 것이다! 아무튼 좋은 날, 좋은 사람들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는 자리여서 더 행복했다.
한편 세례를 받는 도도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세례식 내내 내 품에 얌전히 안겨 있었고 가끔은 신부님의 말씀에 “아아아아~ 어어어어~”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화답해 주었다. 아마도 기분이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도도가 훗날 이 블로그 글이나 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때 다시 물어봐야겠다.
세례식 후에는 장인어른의 모교를 방문해 산책을 했다.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는데 J동성당에서 멀지 않고 지형 경관이 넓게 탁 트여 있어 나도 유정도 도도도 모처럼 기분 좋은 캠퍼스 나들이를 했다. 봄 같이 포근한 날씨였다. 기후 변화로 아기를 마음 놓고 데리고 나갈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드는데 마침 적절한 제안을 해 주신 장인어른께 감사했다. 이렇게 도도가 세례를 받은 특별한 날이 가족과의 추억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원래는 세례의 종교적 의미와 환대라는 주제로 이 블로그 글을 쓰려고 했지만 도도를 키운 후로 심오한 주제로는 글을 쓰기가 어렵게 되었다. 깊이 골몰할 만큼의 짬이 잘 안 나거니와, 아무리 심오한 생각을 한다 한들 애초에 도도의 성장을 바라보며 느끼는 경이로움만큼의 감흥이 내 안에서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언급만은 꼭 남기고 싶다. 서두에 썼듯 조건 없이 누군가로부터 환대받는 것은 놀랍도록 강렬한 경험이다. 이 세상의 종교가 부디 모두에게 그런 강렬한 환대를 베풀어주었으면 좋겠다. 그야말로 어떠한 조건이나 차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