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교육 거버넌스다 ― 통제하의 자율, 강제하의 포용은 옳은가?

중앙집권적 관료제는 어떻게 교육을 지배해 왔나?

1. 대한민국 교육은 오랫동안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체계 위에 서 있었다.

2. 교육부 장관은 학교장의 인사부터 교과서 선정까지 유·초·중등학교의 교육정책 전반을 관장하며 ‘제왕적 장관’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장관)가 선출된 권력(교육감)을 압도하는 구조는 민선 교육감제 시행 18년째인 현재까지 흔들리지 않고 있다.

3.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 학교와 교사는 이 위계 구조의 하위에 위치하며, 정책의 집행자로 기능하도록 고정되어 있다. 특히 교사는 ‘말단 행정직’의 지위를 강요받는다.

4. 이러한 구조는 단지 관료제의 역효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자율성과 교육의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정치적 질서로 기능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교육의 본질적 질문조차, 교사가 아닌 교육부의 고시와 승인에 종속된다.

교사는 무엇이 되었나?

5. 교사는 행정 시스템의 말단이 아니라, 공공성과 전문성을 구현하는 시민적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6. 그러나 지금의 체계는 교사의 교육적 판단을 불신하며, 교사들을 ‘지시 이행자’로 전락시킨다.

7. 교육과정 결정권에서 배제된 교사는, 생활지도 권한에서도 학부모 민원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8. 교사의 지도는 존중이 아닌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책임만 남은 자리에서 권위는 철저히 무너졌다.

9. 서이초 사건은 이 붕괴된 위상이 단지 교육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교사의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비극적으로 방증했다.

구조에 대한 도전은 있었다

10. 교사들이 이 구조에 단순히 순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1.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전교조는 그 저항의 상징이었다. 전교조는 중앙집권적 교육정책의 심장을 뚫는 강력한 힘이었다.

12. 하지만 단극 저항 체제는 집중된 힘만큼이나 쉬운 표적이 되었다. 2010년대 내내 탄압받았고, 그 결과 저항력은 물론 교사 집단 내부의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도 약화했다.

13. 그 대안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교과 기반, 지역 기반의 다양한 노조들이 출연하며 교사들은 저항의 다극화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생활 밀착형 문제 해결과 생존권 투쟁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그 또한 문재인 정권이라는 우산 아래여서 가능했다. 이는 후술할 거버넌스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14. 어쨌든 이러한 교사들의 다변화한 저항은 단순한 조직 분산이 아니라,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거버넌스에 대한 조직적 반발이었다.

15. 그러나 전체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 다극적 저항 또한 제한된 영향력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현재 다양한 교사 집단이 존재하지만, 그 요구가 실질적 정책으로 전화되기 위한 제도적 통로는 지금 이순간에도 차단되어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850만 학생과 50만 교원의 요구가 교육부 장관 한 명에게 수렴되는 단극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거버넌스는 참여자들조차 위계화한다

16. 문제는 교육부의 권한 집중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17. 이 수직적 거버넌스는 그 안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위계적 질서를 강제한다.

18. 17개 시도교육청은 중앙의 정책을 ‘현장에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하며, 정책 설계에 있어 실질적 자율권은 없다.

19. 교원노조 역시 정책 테이블의 협의 주체가 아닌, ‘의견 청취 대상’으로만 간주된다. 전술했듯 교사 집단의 다극적 저항 역시 중앙이 설정한 어젠다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구조 내부의 반응으로만 머문다.

20. 요컨대, 시도교육청은 중앙의 키워드를 반복하거나 모방하며, 자율을 가장하지만 실질적인 어젠다 생산 권한은 부재하다. 교원노조도 정책 담론에 참여하지만, 거버넌스 하부 구조에서 소모될 뿐, 중심을 구성하지는 못한다.

21. 여전히 교육정책의 어젠다 세팅 권한은 조직적으로는 교육부, 지역적으로는 서울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22. 수직적 거버넌스는 비판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비판마저 위계화하고, 저항조차 체계 안에 포섭한다. 자율은 흡수되고, 저항은 관리된다. 구조는, 견고하게 지속된다.

그런데 그 통제가 포용을 가능케 했다?

23.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불편한 사례를 마주한다.

24. 지금까지 비판해온 이 중앙집권적 거버넌스—그 수직적 통제가 때로는 포용의 진전을 가능케 한 유일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이다.

25. 대표적인 사례가 장애인 교원 고용 확대다.

26. 현재 전국에는 5천여 명의 장애인 교원이 존재한다.

27. 이것은 현장의 인식 변화나 자발적 개방의 결과가 아니다. 1990년 제정된 「장애인고용촉진법」이 국가기관의 장애인 고용 의무화의 초석을 놓았고, 2005년, 당시 우원식 의원(현 국회의장)이 발의한 법률 개정이 교원임용시험 체계 내 장애인교원 특별전형 의무화로 이어진 결과다.

28. 법에 따라 2007학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은 매년 일정 비율의 장애인 교사를 선발하게 되었고, 지금의 수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29. 요컨대, 장애인교원 포용은 의식의 성장으로 실현된 것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한 강제적 개입의 산물이었다.

30. 우리는 이 사례 앞에서 다시 묻게 된다. 정녕 통제 없이 포용은 실현될 수 없는가?

다시 묻는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31.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개별 정책이 아니다.

32. 그 정책들을 반복적으로 만들고 실패하게 만드는, 통치 구조, 즉 위계적 거버넌스에 있다.

33. 이 체계에서는 자율이 허락을 받아야 하고, 포용은 강제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34. 이런 조건부 자율과 억압적 포용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35. 그렇다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정책이 아니라, 그 정책을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권력의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정당화하는 질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36. 첫째,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37. 지금처럼 교육부에 건의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법률안 발의, 행정 고시 제안, 교육부의 수용 의무 부과 등이 가능해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38. 둘째, 교과서 발행 체계를 자유발행제로 이행해야 한다.

39. 검정제 중심에서 인정제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유발행제까지 이양하는 단계적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교과서는 교사의 철학과 전문성이 구현되는 가장 구체적 장치이며, 그 장치를 누가 통제하느냐가 교육 자율성의 핵심이다.

40. 셋째, 포용 정책을 국가 프레임워크로 제도화해야 한다.

41. 법률이든 고시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포용이 임의가 아닌, 국가의 책임으로 강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포용의 규범을 실현하는 데 있을 뿐이다.

누가 해야 할까?

42. 두 말할 것 없이 궁극적 의사결정자인 국회, 특히 민주당이 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말잔치는 그만하자. 민주당이 가장 잘해 온 것은 민주화다. 이제는 교육이라는 마지막 중앙집권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할 때다.

43. 다음으로 시도교육감들이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라면, 이제 그 권력에 걸맞은 정치적 담대함을 보여야 한다. 교육부의 하위 집행기관이 아니라, 분권형 교육 질서를 설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44. 그리고 교원노조들이다. 이미 구성원의 수로 인해 무시하지 못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정해진 어젠다를 수정하거나 반대하는 조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정치적 행위자로 서야 한다.

45. 시대의 과업은, 거버넌스를 해체하고 다시 짜는 일이다.

46. 이재명 정부 교원 정책의 화두가 교사 정치 참정권 보장이다. 하지만 참정권 보장은 단지 몇 개의 법률안 통과로 달성되지 않는다. 구조 안에서 실질적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우리가 끝까지 물어야 할 질문

47. 우리는 아직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48. 통제하에서만 허용되는 자율, 강제하에서만 작동하는 포용은 정당한가?

49. 교육 개혁의 열쇠는 정책이 아니라, 구조다. 그 구조를 다시 묻는 일에서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50. 새로운 분권형 교육 거버넌스를 상상하고 설계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