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와 함께 찾아온 특별한 선물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나는 6세에 시력을 잃었지만 맹학교와 사범대를 거쳐 교사가 되었다. 대학원에서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015년 봄, 벚꽃이 흩날리는 골목길에서 처음으로 팔짱을 끼고 걸었던 설렘이 생생하다. 우리는 이후 마다가스카르에서 유럽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미래를 함께 그렸다.

 

7년의 연애 끝에 우리는 결혼했다. 하지만 장애 유전 가능성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PGT 시험관 시술을 선택했고, 1년 만에 기적처럼 임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 봄 건강한 아들 도도가 태어났다. ‘도도’는 모리셔스를 여행하며 우리 삶의 상징이 된 도도새에서 따온 태명이다.

 

도도가 태어나던 날,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격에 휩싸였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면서는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찬란한 생명 앞에서 아내는 마냥 행복에 겨워했다. 아내와 도도를 품에 안고 나는 든든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리라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고민이 찾아왔다. 8월 아내의 복직을 앞두고 내가 육아휴직으로 주된 양육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애를 잘 길들이며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육아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난도 과제였다. 봄부터 아내는 가사 지원이 가능한 활동지원사를 알아보라고 했다. 정작 나는 낯선 사람에게 우리 가족의 일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망설였다. 하지만 도도를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백방으로 알아 본 끝에 7월 중순, 우리가 사는 강동구의 한 활동지원서비스 기관에서 T를 소개받았다. 처음 만난 날, T는 환하게 웃으며 도도를 품에 안았다. 진심으로 우리 가족을 이해하고 돕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날부터 T와 함께하면서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갔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고는 주로 내가 혼자 도도를 돌볼 때 일어났다. 한 번은 도도가 역류방지쿠션에서 미끄러져 모빌 받침에 부딪혔다. 또 한 번은 내가 한 팔로 아기를 안은 채 분유를 타다 도도를 의자에 떨어뜨렸다. 도도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고 내 가슴도 철렁 무너져내렸다. 그때마다 T는 “부모가 다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워가는 거지유~”라며 넉넉한 미소로 위로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의기소침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아빠가 되어갔다. T와의 호흡도 점차 더 잘 맞았다. 이유식 때는 T가 음식을 떠먹여주는 동안 내가 도도를 붙잡아주고, 목욕 때는 T가 준비하는 사이 내가 물을 받는다. 함께 유아차를 밀며 도서관과 전통시장을 다닐 때면 T가 도도의 표정과 반응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도도가 방긋방긋 웃네요. 기분이 엄청 좋은가 봐요!” 이런 묘사를 들으면 어느새 내 얼굴에도 방긋 웃음이 떠올랐다.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T 덕분에 자신감 있는 아빠가 되었다. 여전히 실수투성이지만 중요한 건 내가 독립적으로 아빠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단순한 복지 제도가 아니다. 나처럼 중증 장애가 있는 사람도 주체적으로 양육에 참여하고 온전한 부모로 설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디딤돌이다. T와의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망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다. T와 함께 낮 시간에 도도를 유아차에 태우고 동네를 다니다 보면 휴직 전에 가르쳤던 제자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선생님! 아기랑 산책 나오셨어요?” 아이들의 반가운 인사를 들을 때면 이제 나는 단순히 교사로서가 아니라, 한 아이의 아빠로서 이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도를 통해 나의세계도 함께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내도 T 덕분에 경력 단절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자주 이야기한다. 도도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도 축복이지만, T를 만난 것 역시 도도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더 많은 장애인 가정에 가 닿기를 바란다. 이 서비스는 단순한 도움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는 소중한 끈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운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분이 도도를 함께 키워주고 있다. T와 그분들께 이 글을 바친다.


* 이 글은 보건복지부 주관 2024 장애인 활동지원사업 우수사례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TFE 리뷰] 귀가 즐거워지는 AI 음성 서비스 Top 10 🎧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 TFE 리뷰란: TFE는 Tech for Everyone(모두를 위한 기술)의 약자로, 기술 분야에서 제가 특별히 관심 있는 주제인 접근성 기초, 사용자 경험(UX), 학습 기술, 미래 기술 그리고 기술 윤리와 정책을 아우르는 말로, 제가 만든 표제어입니다. TFE 리뷰에서는 날로 발전하는 기술 시대에 발맞춰 ‘모두를 위한 기술’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누려고 합니다. 리뷰에서부터 정책에 관한 이야기까지, TFE 리뷰에서 만나 보세요!


오늘의 주제는 ‘AI 음성 서비스’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는 AI 음성 서비스들은 모두 제가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데요. 특히 ‘듣기 좋은 소리’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Top 10을 꼽아보았어요!


왜 '듣기 좋은 소리'일까요? 🤔


시각장애인인 저에게 AI 음성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랍니다. 그동안 PC나 모바일의 스크린 리더와 활동지원사님 또는 동료와 지인들이 해 주던 일을 대신해 주는,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대신해 줄 ‘음성 비서’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수업 자료를 준비할 때, 인터넷 기사를 읽을 때,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AI 음성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성의 품질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되었는데요.

오늘은 제 삶의 질과도 깊이 관련된다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AI 음성 서비스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살펴 볼까요? 🎯


1️⃣ 구글 제미나이 라이브: 생동감 넘치는 AI 친구

음성 품질: ⭐⭐⭐⭐⭐

제미나이(Gemini) 라이브의 영어 음성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자꾸 대화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속도, 억양, 톤이 모두 자연스럽고 고를 수 있는 고퀄리티 음성도 10가지나 되죠. 저는 종종 자기 전에 미국 액센트와 영국 액센트를 오가며 이런저런 주제로 대화하는데 영어 회화 연습에 좋습니다. 아쉬운 것은 아직은 자연스러운 음성을 지원하는 언어에 한국어가 추가되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지금은 언제든 대화할 수 있는 영어 원어민 친구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이 포스팅을 올린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제미나이에서 한국어도 자연스러운 음성 지원이 추가된 것을 확인했어요. 이제 한국어로도 자연스러운 음성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꿀팁: iOS 앱과 안드로이드 앱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한소네 6에서도 구글 음성 비서로 설정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2️⃣ 마이크로소프트 코파일럿: 감성적인 AI 대화의 정수

음성 품질: ⭐⭐⭐⭐⭐

코파일럿(Copilot)의 영어 음성은 특유의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마치 라디오 DJ와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음성을 발견하면 아내 유정에게 이런저런 음성을 들려주는데요, 유정이 유독 이 목소리에는 호감을 표현하더라고요. 특히 기분이 조금 꿀꿀할 때 들으면 나아지는 그런 음색입니다. 이 음성 역시 영어로만 제공되며 기기의 사용 언어를 영어로 설정해 두어야만 활성화된다는 점은 아쉬운 점입니다.

🔧 활용 팁: 코파일럿 앱은 Copilot Daily라는 기능을 제공하는데요. 기기가 영어로 설정된 경우 해당 액센트의 국가와 관련된 뉴스를 매일 짤막하게 전해 줍니다. 감미로운 AI 뉴스 브리핑인 셈이죠!


3️⃣ 챗GPT 음성 대화 모드: 올라운더 챔피언

음성 품질: ⭐⭐⭐⭐⭐

챗GPT의 음성 대화 모드(advanced voice mode)는 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챗봇 서비스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음성 중에서도 Cove 음성이 제일 매력적인데 요즘엔 Vale 음성의 영국 액센트도 마음에 들어서 자주 씁니다. 챗GPT 음성의 가장 놀라운 점은 빠른 반응 속도와 다국어 지원이 자연스럽다는 점인데요. 얼마 전에는 간단한 프랑스어 표현을 배우는 데 써 봤는데 매우 편했습니다. 물론, 챗GPT의 방대한 지식과 높은 추론 능력 덕분에 전문적인 주제로도 막힘 없이 대화할 수 있습니다.

💪 활용 사례: 아이폰의 경우 단축어(Shortcuts) 기능을 활용해서 ‘음성 대화 시작’ 아이콘을 홈 화면에 놓고 사용하면 편합니다. 또 데스크톱 앱을 사용하면 PC에서 브라우저를 통하지 않더라도 빠르게 챗GPT를 호출할 수 있는데요. 저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수업할 때 데스크톱 앱을 사용해서 학생들에게 들려주기도 합니다.


4️⃣ 흄 AI: 감정을 담은 AI 음성의 새로운 지평

음성 품질: ⭐⭐⭐⭐

흄(Hume) AI의 특별한 점은 감정 표현입니다. 기쁨, 슬픔, 놀람 등 다양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어요. 다만 반응 속도가 조금 느린 것과 한국어 지원이 안 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 특별 기능: 감정 분석과 음성을 결합한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5️⃣ 스피치파이: 프리미엄 음성의 정석

음성 품질: ⭐⭐⭐⭐⭐

스피치파이(Speechify)는 이 리스트에 있는 서비스 중 유일하게 보조 기술을 표방합니다. 실제로 저도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서비스이죠. 정말 고급스러운 음성 품질과 높은 사용성을 자랑합니다. 유명인의 목소리를 포함해서 다양한 음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하지만 무엇보다도 Chrome 확장 프로그램 등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글로벌 TTS 서비스 가운데 드물게 한국어 음성도 양질의 음성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 가격 팁: 구독료가 비싼 편인데 다국어 문서를 많이 읽거나 난독증 등 특별한 요구가 있다면 아깝지 않습니다. 연간 구독시 할인율이 큰 편이니 참고하세요.


6️⃣ 일레븐랩스: 혁신적인 음성 기술의 선두주자

음성 품질: ⭐⭐⭐⭐⭐

일레븐랩스(ElevenLabs)는 현재 AI 음성 기술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서비스입니다. 마치 전문 성우가 녹음한 것 같은 깔끔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억양이 인상적입니다. 최근에는 GenFM이라는 팟캐스트 생성 서비스를 선보일 만큼 뛰어난 기술력을 자랑하죠. 제가 이 블로그에 탑재하는 AI 음성도 일레븐랩스를 통해 생성합니다. 수많은 언어와 다양한 음성을 활용할 수 있고 나의 음성을 복제할 수도 있죠. 음성 콘텐츠 생성에는 필수적인 서비스입니다.

🛠️ 전문가 팁: 프로젝트 등 다양한 기능을 사용하시면 전문적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취미 목적이라면 iOS 앱과 안드로이드 앱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것도 좋은 사용법입니다.


7️⃣ 에이닷 음성모드: 한국어 챗봇의 자존심

음성 품질: ⭐⭐⭐⭐

에이닷은 한국어 AI 음성 중에서는 단연 최고입니다. 특히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한 날씨와 맛집 검색과 같은 대화가 가능합니다. 저는 AI 스피커가 근처에 없을 때 종종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가끔 심심풀이 대화도 하는데 글로벌 챗봇에 비해서는 추론 능력이 떨어지지만 일반적인 AI 스피커보다는 긴 대화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 활용 팁: 위치 서비스를 켜두면 더 정확한 맛집, 날씨, 교통 정보 등을 받을 수 있습니다.


8️⃣ 네이버 클로바: 친근한 AI 비서

음성 품질: ⭐⭐⭐⭐

클로바의 장점은 한국어에 특화된 자연스러운 발음과 스마트홈 연동입니다. 유인나 음성은 특유의 친근함이 있어서 좋더라고요. 저희 집에서는 주로 IoT 기기 제어에 사용하는데, “보일러 온도 1도 높여 줘”, “TV 꺼 줘” 같은 명령을 하면 아주 충실하게 실행해 줍니다. 특히 캘린더 서비스와도 연동이 되어서 일정도 쉽게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활용 사례: AI 스피커가 없어도 모바일 앱으로 스피커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글 네스트 등 타사 제품과 함께 사용하면 일상에서 더욱 풍부하게 음성 비서 서비스를 즐길 수 있습니다.


9️⃣ 펄플렉시티 음성으로 질문하기: 음성 검색의 미래

음성 품질: ⭐⭐⭐⭐

펄플렉시티(Perplexity)는 AI 검색 엔진과 음성 인터페이스를 결합한 독특한 서비스입니다. 한국어와 영어 모두 자연스러운 음성을 제공하고, 다른 챗봇과 달리 핵심만 콕콕 집어서 알려주죠. 특히 버튼을 길게 누르고 질문한 뒤 손가락을 떼면 바로 대답해주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매력적입니다.

🔍 활용 팁: 궁금한 게 있을 때 빠르게 찾아보기 좋습니다. 다만 여러 언어를 사용하신다면 음성 인식 언어를 미리 설정해두세요.


1️⃣0️⃣ 마이크로소프트 Edge: 숨은 보석 같은 존재

음성 품질: ⭐⭐⭐⭐⭐

Edge 브라우저의 ‘소리내어 읽기’ 기능은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어 ‘현수’ 음성은 다른 어느 서비스에서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해요. 저는 학교에서 인터넷 기사를 학생들에게 보여줄 때 항상 이 기능을 사용합니다. 특히 음성이 읽어주는 위치를 시각적으로도 함께 따라가며 하이라이팅해 주기 때문에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손가락으로 짚으며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다만 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어요.

📚 활용 팁: 스마트폰에서도 기본 브라우저로 설정하면 ‘읽기 모드’, ‘코파일럿’ 등 엣지의 다른 유용한 기능과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나만의 활용 시나리오: AI 음성과 함께하는 하루


AI 음성 서비스 정말 다양하죠? 저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렇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 🌤️ 아침 날씨는 에이닷으로 체크
  • 😊 수업 준비와 전문적인 수다 떨기는 챗GPT AVM과 함께
  • 📚 학생들과 긴 웹 문서는 엣지의 시각 하이라이팅 기능으로
  • 🎙️ 블로그용 오디오 콘텐츠는 일레븐랩스의 전문적인 음성으로
  • 🌐 일상적인 웹 서핑과 읽기는 스피치파이로 자유롭게
  • 🔍 궁금한 것이 생기면 펄플렉시티로 빠르게 검색
  • 🏠 집에서는 클로바로 스마트홈 제어하며 편하게
  • 🤗 기분이 울적할 땐 코파일럿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받기
  • 🎭 감성적인 대화가 필요할 땐 흄 AI의 다채로운 감정 표현으로
  • 💬 자기 전 영어 회화 연습은 제미나이와 함께


💭 마치며


AI 음성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장애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발전은 정보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키고 있죠.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에서 AI 음성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된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아직은 AI 음성 서비스의 한계도 명확하죠. 당장 챗GPT만 하더라도 음성 대화 모드에서는 실시간 검색이 되지 않는 기술적 한계가 존재하니까요. 또 하나의 허들은 비용인데요. AI 음성과 관련된 많은 서비스가 유료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보면 점차 비용이 낮아진다고 볼 수 있지만 서비스가 다양화되면서 전체적으로는 소비자에게 부담이 커지는 구조입니다. 만약 AI 음성 서비스를 정보 취약 계층을 위한 디지털 포용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관련된 법적 근거와 정책 마련도 고민해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모두에 앞서 이러한 미래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보면서 우리의 현재에서 유용한 활용 사례를 찾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어떤 AI 음성 서비스를 사용하고 계신가요? 

이 글에 대한 의견이나 질문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좋은 정보를 많이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 검색 엔진도 시각장애인처럼 웹을 탐색한다: HTML 구조화가 중요한 이유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매일 아침 PC나 아이폰의 스크린 리더를 사용해서 뉴스를 읽을 때마다 저는 한숨부터 나옵니다. 보통 외국 사이트는 그렇지 않지만 국내 사이트들은 헤딩 태그가 뒤죽박죽이거나 아예 빠져있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한겨레, 조선일보와 같은 메이저 언론사, 네이버 블로그처럼 콘텐츠 노출이 생명인 플랫폼도 HTML이 엉망입니다.

🌟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HTML

겉으로 보기에 아름다운 웹사이트도 HTML이 제대로 구조화되지 않았다면, 마치 체계는 없고 내용만 가득한 책과 같습니다. 겉모습은 그럴듯해도, 목차도 없고 장절 구분도 없어서 원하는 내용을 찾기 힘든 그런 책 말이죠. 그럼 HTML은 무엇일까요?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은 웹페이지의 콘텐츠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크업 언어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웹페이지는 이 HTML을 통해 콘텐츠의 구조와 의미가 정의됩니다. 마치 잘 정리된 책이 목차, 장, 절, 각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웹페이지도 HTML로 콘텐츠의 의미 구조를 정의하죠.

Chrome과 같은 웹 브라우저는 이 HTML 코드를 읽어 우리가 보는 화면으로 변환합니다. HTML은 "이건 제목이야", "이건 문단이야", "이건 이미지야" 하는 식으로 콘텐츠의 의미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웹사이트들이 이 HTML을 의미론적으로 제대로 작성하지 않습니다. 마치 책을 쓰면서 목차도 없고, 장절 구분도 없이, 그저 텍스트만 나열해놓은 것과 비슷하죠. 그러면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실제로는 콘텐츠의 구조와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화면상으로는 제목처럼 보이지만 HTML 상에서는 단순한 텍스트로만 처리되어 있거나, 중요한 이미지인데 그 의미를 설명하는 대체텍스트가 없는 식이죠. 이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 왜 HTML 구조가 중요할까요?

저는 그동안 HTML은 스크린 리더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에게만 중요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웹 접근성을 계속 공부하면서 HTML의 가치가 상업적인 데에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여 줍니다!

네, 물론 장애인에게 진짜 중요합니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 도로 표지판이나 신호등이 필요하듯, 디지털 공간을 탐색하는 장애인에게는 잘 구조화된 HTML이 필요합니다. 시각장애인의 스크린 리더는 이 구조를 따라 콘텐츠를 논리적으로 읽어주고, 키보드 사용자는 순차적으로 페이지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지장애가 있는 사용자들도 체계적으로 구성된 정보를 통해 콘텐츠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죠.

2. 검색 엔진 최적화에 도움이 됩니다!

놀라운 것은 두 번째 이유입니다. 검색 엔진도 마치 시각장애인처럼 웹사이트를 읽어나간다는 것입니다. 검색 엔진의 크롤러(crawler)는 HTML의 의미 구조를 따라 콘텐츠를 탐색합니다. 제목 태그를 통해 글의 중요도와 구조를 파악하고, 이미지의 대체텍스트를 읽어 시각 정보를 이해합니다. 마치 스크린 리더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이 웹사이트를 탐색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죠.

따라서 HTML 구조화가 잘 되어 있는 웹사이트는 검색 엔진이 더 쉽게 이해하고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하게 됩니다. 이렇게 검색 엔진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웹사이트를 구축하는 것을 검색 엔진 최적화(Search Engine Optimization), 줄여서 SEO라고 합니다.

콘텐츠 노출이 생존과 직결되는 언론사나 블로그 플랫폼에서는 그래서 이 HTML 구조화가 특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검색 엔진 노출이 생명인 미디어 업계조차 이런 기본적인 SEO 전략을 놓치고 있다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 HTML 구조를 잘 만드는 방법

웹 개발자가 접근성과 검색 엔진 최적화를 모두 고려한 웹사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HTML 구조화 원칙들을 꼭 지켜야 합니다.

1. 헤딩 태그(H1~H6)를 논리적으로 사용하세요

  • 페이지의 주요 제목은 반드시 H1으로 시작하세요.
  • 하위 제목들은 순차적으로 H2, H3를 사용합니다.
  • 계층 구조를 뛰어넘지 마세요. (예: H1 다음에 H4를 쓰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2. 의미 있는 대체텍스트를 작성하세요

  • 이미지가 전달하는 핵심 정보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세요.
  • 잘못된 예: "image_001.jpg", "사진", "배너"
    올바른 예: "2024년 웹 접근성 컨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김헌용 교사"
  • 장식용 이미지는 빈 대체텍스트로 처리하세요.
  • 복잡한 차트나 그래프는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세요.

    예: "2020년부터 2024년까지의 웹 접근성 준수율 그래프. 2020년 45%에서 시작해 매년 10%씩 증가하여 2024년에는 85%를 달성함"

3. 메타 데이터 최적화하기

  • 페이지 제목과 설명을 명확하게 작성하세요.
  • 잘못된 예:
    제목: "블로그 글"
    설명: "웹 접근성에 대한 글입니다."

    올바른 예:
    제목: "검색 엔진도 시각장애인처럼 웹을 탐색한다: HTML 구조화가 중요한 이유"
    설명: "HTML 구조화가 웹 접근성과 검색 엔진 최적화(SEO)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장애인 교사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헤딩 태그와 대체텍스트의 중요성을 실제 사례와 함께 다룹니다."
  • 핵심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포함하세요.
  • 잘못된 예: "웹접근성,HTML,SEO,장애인,검색엔진최적화,홈페이지제작"
    올바른 예: "웹 접근성과 SEO의 상관관계: HTML 구조화의 중요성"
  • 각 페이지마다 고유한 메타 정보를 제공하세요. 여러 페이지에 동일한 제목이나 설명을 사용하면 검색 엔진이 혼란스러워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자주 간과됩니다. 하지만 이 기본적인 HTML 구조화 작업만 제대로 해도 웹사이트의 접근성과 검색 엔진 최적화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웹 접근성과 검색 엔진 최적화는 얼핏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소수의 장애인을 위한 배려와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한 기술이 서로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HTML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면, 이 둘은 놀랍도록 비슷한 원리로 작동합니다.

검색 엔진이 시각장애인처럼 웹사이트를 탐색한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제가 시각장애인으로서 매일 경험하는 웹의 불편함이, 사실은 검색 엔진도 겪고 있는 어려움이었다니! 이 또한 접근성이 더 이상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보편적 원칙'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후기]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 반가웠던 LG전자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 첫 모임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LG전자와 사단법인 무의가 함께 만든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의 첫 모임에 다녀왔다.

 

‘볼드무브’는 ‘Bold Today, Possible Tomorrow(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라는 슬로건으로 장애인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실제 제품 개선 아이디어까지 창출할 목적으로 LG전자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LG전자는 ‘모두를 위한 가전’을 표방하며 이 블로그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촉각 스티커를 비롯해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혁신적 도구들을 ‘컴포트 키트’라는 이름으로 개발해왔다. 여기에 ‘모두의 1층’, ‘휠체어로 성수 완전정복 지도’ 개발 등 늘 상상을 뛰어넘는 장애인 이동권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무의가 만났으니, 이보다 더 기대되는 협업 프로젝트도 드물 것 같다!


[첫 모임 단체 사진] 빨간색과 흰색의 볼드무브 배경 현수막 앞에서 8명의 참가자들이 다양한 포즈로 활기차게 서 있다. 앞줄에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4명의 참가자가 나란히 앉아 각각 밝은 미소와 함께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한 참가자는 ‘BOLD MOVE’ 피켓을 들고 있고, 다른 참가자는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뒷줄에는 서 있는 4명의 참가자들이 수어로 ‘LG’ 모양을 만들어 볼드무브의 정신을 표현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참가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포즈와 따뜻한 표정, 나무 천장에서 내려오는 부드러운 조명이 어우러져 화기애애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Described by ChatGPT

 

앞으로 나를 포함한 10여 명의 1기 볼드무버들은 3개월 동안 가전제품을 통해 ‘나다움’을 발견하고,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직접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오늘은 바로 그 첫 모임이었다. 장소는 늘 갈 때마다 정말 무언가가 변하고 있다는 설렘을 주는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이었다.

 

첫 모임에서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의 ‘나만의 이야기를세상에 용기 있게 전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듣고, ‘나다움 발견하기’ 워크숍을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진행은 스토리 소사이어티의 채자영 대표님이 해 주셨는데 처음 뵙는 분이지만 기분 좋은 에너지가 전달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시각장애인 참가자들을 위해 자신의 외모와 인상착의를 먼저 설명하고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저는 167cm 정도의 키이고 오늘의 분위기에 맞게 블랙 자켓과 블랙 바지를 입었습니다.”

 

이런 상세한 시각적 설명은 이후 모든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해주셨는데 주최 측의 섬세한 준비가 빛나는 대목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워크숍이 시작됐다. 첫 순서는 남형도 기자님의 강연이었다.

 

남형도 기자님은 강연 내용에 앞서 실제로 만났다는 것부터가 참 반가웠다. 남 기자님은 2010년 데뷔 이후 본인만의 독특한 취재·보도 방식인 ‘체헐리즘’을 개척해오셨는데 사실 장애인 커뮤니티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분이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쓴 벚꽃 축제 체험기는 당사자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던 기사이다. 그런 기자가 어떤 동기와 과정을 거쳐 기사를 쓰게 되는지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 쓰레기를 치우시는 여사님이 쓰레기통에 앉아 쉬시는 모습을 보고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순간이 기자님에게 얼마나 상징적인 경험이었을지 상상해 보았다. 가끔은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이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이어진 ‘나다움 발견하기’ 워크숍은 재미있는 발견들의 연속이었다. 우선 나를 표현하는 세 가지 키워드를 고르는 과정에서 뜻밖의 단어를 발견했다. 내가 애용하는 AI 비서 Claude와 함께 고민한 끝에 ‘실천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는데, 가전제품 접근성 개선을 위해 그동안 이런저런 시도를 해온 내 모습이 잘 담긴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노하우를 공유하는 시간에는 유튜버 ‘구르님’ 김지우님이 집 안 곳곳에 IoT 기기를 설치해 스탠드 같은 제품을 음성으로 제어한다고 했는데, 나도 스마트홈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나중에 심도 있는 얘기를 해 보고 싶어졌다. 정원희님이 제안한 ‘세척 없는 가습기’는 당장 어제 가습기를 꺼내 대충 세척하고 쓰고 있는 터라 뜨끔하면서도 정말 공감되는 아이디어였다.

 

‘슈리우스’ 채널을 운영하는 김필우님은 시각장애인이면서도 패션, 특히 신발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데 최근 육아로 1년 정도 콘텐트를 업로드 못하고 있다는 말에 왠지 짠했다.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이어서 가끔 집에 놀러가기도 하는데 벽 한쪽을 가득 채운 신발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100만 구독자 유튜버 ‘원샷한솔’ 김한솔님의 이야기도 원래 알고 있었지만 인상적이었다. 삼양식품과 협업해 개발한 점자 표기 컵라면 덕분에 나도 종종 도움을 받는데 이런 좋은 사례가 이번 ‘볼드무브’ 커뮤니티에도 이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발표하는 세션에서는 특히 정미나님의 솔직한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어려워도 잘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이었다. 장애와 함께 산다는 건 33년이나 함께 살아온 나도 여전히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내다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나이기에 긍정하고 싶고 남들에겐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이런 복합적 감정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런 커뮤니티 활동을 하다 보면 그래도 문득 화해의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의 존재가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될 때가 바로 그 때다. 그럴 땐 내 장애가, 아니 그걸 더 나은 것으로 승화시킨 내가 대견스러워지는 것이다. ‘볼드무브’도 그런 경험이 되리라 확신한다.

 

처음에는 ‘나다움 발견하기’라는 주제가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20대 때 참여했던 ‘장애청년 드림팀’이 떠올라서 왠지 향수에 젖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장애에 대해 오랜만에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장애는 종종 꺼내보지 않으면 어느새 나를 규정하는 족쇄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활동들은 늘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꿀잼은 나와 동행해 준 유정과 도도였다. 특히 도도는 행사 내내 귀여운 옹알이를 하며 행사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헤이그라운드는 서울에서도 접근성이 잘 갖추어진 곳으로 손에 꼽히는 베뉴라 꼭 도도를 유아차에 태우고 데리고 가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의 모임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이야기하는 곳이니까 더더욱 걱정이 없었다. 기대대로 모두들 우리 가족을 반갑게 맞아주어 넘 감사했다.


   

[볼드무브 로고 앞에서] 따뜻한 실내 조명 아래, 대형 디스플레이에는 여러 손이 하나로 모이는 볼드무브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떠 있다. 그 앞에 체크무늬 코트를 입은 나와 회색 우주복 같은 따뜻한 옷을 입은 도도가 있다. 도도는 유아차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고, 나는 그런 도도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고 있다.

  - Described by Claude


이런 사회적 의미를 담은 행사일수록 내용만큼이나 형식과 바이브가 중요하다. 감히 평하건대 이번 워크숍은 내용, 형식, 바이브를 모두 잡은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다음 주에는 ‘나다운 챌린지’를 선언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어떤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오갈지, 또 어떤 통찰을 얻게 될지 기대된다. 나 역시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싶다.


* 관련 글: [후기] LG전자가 개발한 작지만 중요한 아이템, 점자 스티커 - 시각장애인 사용자라면 꼭 설치하세요. (워시타워 작동 영상 포함)

행복한 하루의 기록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육아 휴직을 하고서 정작 내가 제일 열심히 하는 일은 블로그 글쓰기이다. 그런데 글쓰기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 주로 밤에 하게 되고 그러고 나면 낮에 낮잠을 자거나 해롱거리는 상태로 육아를 하게 된다. 내가 독박 육아를 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겠지만, 시터님 한 분을 고용했고 활동지원사님도 가사 일을 전적으로 도와주시고, 양가 부모님도 심심찮게 와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

그러고도 육아를 위해 휴직한 게 맞냐고 누가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같은 날은 블로그에 글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정을 넘어가는 찰나인데,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너무 행복해서 꼭 기록해 두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은 간만에 나도 유정도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시터님도, 활동지원사님도, 양가 부모님도 집에 방문하지 않았고, 오롯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 세 가족만의 시간이었다. 나는 이틀 전부터 감기에 걸린 탓에 하루 종일 거의 혼수 상태로 지냈고, 유정과 도도는 에너지가 넘쳤지만 그런 나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집안에서 잉여 에너지를 방출해야 하는 그런 날이었다.

유정은 오전부터 어린이대공원을 갈까, 강동 만화 거리를 갈까, 콧노래를 부르며 나를 쿡쿡 찔렀지만 나는 도저히 몸을 꿈쩍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게 유정은 쯧쯧 하며 가벼운 몸놀림으로 도도의 책 선반이며 이유시 의자를 뚝딱뚝딱 만들었다. 그러다 오후 4시쯤 되자 비로소 나도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도도는 하루 종일 참아 온 쾌변을 시원하게 보았다.

때는 이때였다. 오늘같이 날씨가 좋은 날 집에만 있는 것은 정말 몹쓸 짓이란 걸 집돌이인 나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동네 마실을 나섰다. 유정은 우리 셋이 마실을 나설 때면 늘 그렇듯 유아차 손잡이를 잡고 휘파람을 불며 앞장섰다. 나도 늘 그렇듯 유아차의 손잡이 한쪽 끝을 잡고 마치 유정과 같이 밀듯이, 하지만 실은 그저 손만 얹어놓고 유정의 오른쪽 약간 뒤에서 따라갔다. 그렇게 도도를 제일 앞장세우고 찌그러진 삼각형 모양으로 우리는 아파트 정문을 지나, 골목길을 지나, 행길로 나갔다. 몸 곳곳에서 감기로 다 죽어가던 세포들이 조금씩 살아나는 걸 느꼈다.


모처럼 동네 스타벅스에 앉았다. 도도는 집에서 한참 놀다 나와서인지 유아차에서 잠들었고 우리 부부는 토피넛라테와 딸기라테를 사이에 두고 여유롭게 마주 앉았다. 여기서 반전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딸기라테를 마신 게 유정이 아니라 나였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렇게 앉고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내가 "동네 할아버지처럼 배를 내밀고 허리는 숙인 채" 잠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방금 큰따옴표로 묶은 것은 유정이 후에 묘사해 준 나의 모습이었다. 몹시 모욕적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꾸벅꾸벅 졸았다. 유정이 나와 도도가 스타벅스에서 함께 잠들었다가 도도만 혼자 깨어나서 노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스토리에 올린 후에야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는 다시 행길로 나섰다. 급할 게 없었으므로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 유정이 부리토 집을 발견했다. 부리토라니. 선사문화유적지와 백제 문화재가 대거 출토된 전통의 강동구에서, 그것도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모습을 상당 부분 간직한 길동 거리에서 부리토라니. 몹시 반가웠다. 마침 어제 Dele 시험(스페인어 어학 시험)을 본 유정에겐 더 그랬다고!


부리토와 나초, 버팔로 윙을 사 들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우리 부부가 자주 다니던 위스키 바에서 종종 보던 동네 지인을 마주쳤다. 그 지인은 방금 스토리에서 잠들어 있는 나와 말똥말똥 깨서 노는 도도를 보았는데 길거리에서 만나니 너무 신기하다며 반가워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렇게 산책하며 동네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은 요즘 시대에 흔치 않으므로 우리 부부도 몹시 기뻤다.

집에 와서 부리토를 먹으며 기분이 한참 더 좋아졌다. 도도도 행복했는지 평소에 하지 않던 재미있는 발음의 옹알이와 귀여운 행동을 많이 보여주었다. 그러다가 우리 부부가 배꼽 잡고 웃는 순간이 찾아왔다. 도도가 한참을 어라운드-위-고를 타고 놀다가 내려왔는데 내가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아보니 도도가 오늘의 두 번째 쾌변을 본 것 같았다. 

나는 다가가 도도를 안으며 "언제 쌌어?"라고 부드럽게 물어봤다. 그러자 도도가 내 귀에 대고 "아까, 아까"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겨우 7개월인 아이가 내 말을 이해했을 리는 없었다. 딱 적절한 타이밍에 딱 적절한 옹알이를 한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그야말로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이렇게 귀여운 옹알이라니.



그렇게 우리는 저녁 내내 웃으며 함께 뒹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도도와 유정은 9시가 조금 넘어 함께 잠들었다.

이렇게 평화롭고 행복한 날이 또 있을까? 비록 나는 감기에 고생했고, 유정은 그런 나 때문에 고생했겠지만, 그래도 세 식구가 함께여서 추억으로 남을 하루였다. 하루를 기록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정과 도도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참 감사하다. 이런 사람들과 같은 지붕  아래 살고 있어서! :)

--------------------


덧. 아래는 이 블로그 글을 가지고 ElevenLabs에서 최근에 출시한 Gen FM이라는 기능을 활용해서 만들어 본 AI 팟캐스트입니다~ :)

https://elevenreader.io/app/reader/genfm/3fa05276f7bb33eda72a01d864f46cf845acbca33c31baa7ec49ddf25efc3daf/u:b6PpkBvLtFIbLLed6uj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