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아빠가 된 하루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컴퓨터 앞에 앉아 번역 일을 하고 있었다.

"응애애애애애애애~"

도도의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운 울음 소리가 들려 왔다. 바닥에 있는 매트로 내려가 급히 더듬어 보니 도도가 역류방지쿠션에서 옆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면서 모빌 받침에 부딪힌 것 같았다.

시터님도 깜짝 놀라 달려 오시고 나도 도도를 어르고 달래며 평화롭기만 했던 금요일 오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다행히 도도가 다친 곳은 없었다. 하지만 가슴이 쿵 내려앉는 순간.

생후 다섯 달이 되어가는 도도는 이제 뒤집기는 기본이고 조금씩 배밀이를 한다. 유정이 도도가 깨어 있을 땐 항시 옆에 붙어 있으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본격 육아 5일 만에 가슴 철렁한 순간을 겪고 말았다.

홈카메라에는 잠에서 깨어 쿠션을 탈출하려고 뒤집는 도도와 그런 것도 모르고 헤드폰을 쓴 채 컴퓨터를 하고 있는 나의 뒷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나쁜 아빠.

작고 꼬물거리는 도도에게 - 100일을 맞아 아빠가 보내는 편지

이 글은 오디오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ElevenLabs

도도야, 네가 태어나기 전 엄마 아빠는 참 많은 소중한 순간을 함께했어.

엄마랑 아빠가 처음 만난 건 대학원이었어. 엄마 아빠 모두 그때까지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거든. 그래서 어찌 보면 엄마랑 아빠가 통번역을 배우는 대학원에서 만난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야.

엄마랑 아빠가 처음 서로 알게 된 건 2013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어. 그때 엄마는 아빠를 먼저 발견하고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단다. 만일 그때 엄마가 아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함께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엄마랑 아빠는 지금처럼 함께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단다.

그때 그 설레는 첫 만남으로부터 1년이 지나 이번에는 아빠가 엄마에게 먼저 연락했어. 엄마는 그때 잠비아라는 나라에 있었단다. 도도가 커서 언젠가는 가게 될 아프리카라는 대륙에 있는 나라야. 엄마는 그때 일하느라 많이 바빴을 텐데 아빠가 연락했을 때는 마침 모기장을 치고 누워서 쉬고 있다고 했어. 엄마는 반갑게 답장을 해주었고 아빠는 그 답장에 용기를 얻었어. 

다시 6개월 정도가 흘렀어. 2015년 봄의 어느 날, 엄마랑 아빠는 벚꽃이 흩날리는 서울의 한 골목길을 걷고 있었어. 그때 엄마랑 아빠는 처음으로 팔짱을 끼었단다. 서로 호감이 있는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봄 길을 걷는 기분은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한 기분이란다. 도도도 꼭 그런 경험을 해보길 바라.

엄마랑 아빠는 그 후로 그렇게 팔짱을 끼고 세상 곳곳을 여행했단다.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 아나카오, 모론다바, 모리셔스, 쾰른, 안트베르펜, 암스테르담. 모두 언젠가는 도도도 가 볼 곳이야. 정말 멋진 곳들이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경험하며 엄마랑 아빠는 누구 못지않게 즐거운 젊은 시절을 보냈단다.

엄마 아빠가 만난 지 10년 가까이 흐른 2023년 여름, 드디어 도도가 엄마 아빠에게로 왔어.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으로 손톱보다도 작은 도도를 확인했을 때 그 감격은 잊지 못해. 엄마는 신이 나서 아빠에게 도도의 생김새를 설명해 줬어. 아빠는 도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너무 행복했어. 아빠는 도도가 엄마 배 속에서 건강하게 자라주기만을 바랐고, 도도는 정말 그렇게 잘 자라주었어.

참고로 엄마는 도도가 뱃속에 있을 때도 온 동네를 열심히 돌아다녔단다.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유지했어. 도도도 그때가 기억나니?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을 거야! 도도가 이렇게 건강하게 태어난 건 다 그런 엄마의 노력 덕분이란다.

오늘로부터 100일 전, 2024년  4월 3일, 도도는 이 세상에 태어났어. 오후 3시 31분, 아빠는 분만실 밖에서 도도의 울음소리를 명확히 들었단다. 힘차고 불만이 가득 섞인 울음소리였어. 엄마 뱃속이 편한데 왜 나를 밖으로 내보내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어. 하지만 그조차도 너무 귀엽고 대견했단다. 도도는 내내 울지 않고 가만히 세상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것 같았어.

도도야, 오늘은 네가 태어난 지 100일을 기념해서 가족이 모두 모였어. 도도가 엄마 아빠에게 온 후로 우리 집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단다. 도도는 우리 가족을 완성시켜주었어. 도도가 아빠에게 찰딱 붙어 있을 땐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아.

도도야, 많이많이 사랑해. 앞으로도 지금처럼 멋지고 건강하게 자라길 바랄게.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2024년 7월 13일

도도의 아빠

헌용



사진 설명

1. 백일상 앞에 헌용과 유정이 파란 한복을 입은 도도를 안고 있다. 헌용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질 정도로 기쁨이 가득한 표정이다. 유정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행복감이 얼굴에 가득하다. 도도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백일상에는 케이크, 떡, 과일, '백일' 장식이 있으며 꽃과 인형들로 꾸며져 있다. 배경에 '백일' 현수막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다.

2. 백일상 앞에 앉아있는 도도의 클로즈업 사진이다. 도도는 남색 한복과 꽃 장식이 달린 전통 모자를 쓰고 있다. 양손으로 한복 상의를 잡고 있으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고 있다. 양손에는 금색 팔찌가 보이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다. 주변에는 '百'(백) 글자가 새겨진 장식과 다양한 백일 상 소품들이 보인다. 도도의 통통한 볼과 귀여운 표정이 돋보이는 사진이다.

Note: 사진 설명은 Claude가 작성했습니다. 실제 모습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교육부의 AI 디지털교과서 사업, 현실과 이상 사이의 딜레마

교육부가 AI 디지털교과서를 내년부터 도입하겠다고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야심찬 계획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 미국 거대 테크기업들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게 AI 기술인데 교과서를 만드는 데 AI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술력도 자금도 부족한 교육부가 어떤 근거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걸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과서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고, 기술 업계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친다. 냉정하게 말해 이번 사업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년에 챗GPT처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AI" 교과서가 나오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AI가 진짜 AI가 아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AI 사랑을 보며 나는 이명박의 '자원외교'가 떠오른다. '뭔가 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접근하다가는 이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 교육행정기관과 출판사 몇 곳이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문제는 그 모든 기관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나라 교육의 질을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기둥들이라는 사실이다.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교과서를 웹에 구현해야 한다. HTML, CSS, 자바스크립트 등 웹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해 사용자가 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출판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기술 전문성을 요구하는데 기존 출판사들에게는 생소한 분야이다. 둘째,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가 사용되기 때문에 철저한 보안 인증을 받아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보안은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고도의 기술적 조치와 법적 대비가 필요하다. 셋째, 보편적 학습 설계(UDL) 원칙을 따라 개발해야 하고 웹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다양한 학습자의 요구를 고려하고 장애가 있는 학생들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 고난도의 과제이다. 각각이 전문성을 요구하는 영역이며, 이를 모두 통합하여 교과서라는 형태로 구현해내는 것은 기존 교과서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다.

당연히 출판사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여러 에듀테크 기업들이 합류했지만, 역부족이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려면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한데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은 거의 없고, 제시한 시한은 너무 짧다. 모두 2024년 말에 끝내야 하는 일정이다.

그럼에도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의미 있는 이유가 있다. 바로 '웹 기반'이라는 점이다. 웹은 '접근성 표준'이 명확해서 개발자들에게 접근성 관련 요구사항을 전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는 그동안 장애학생과 장애인 교원의 니즈를 무시하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개발되어 온 교과서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다.

나는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을 통해 이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장교조는 교육부,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과의 협의를 통해 개발 가이드라인에 접근성 관련 내용을 반영했고, '모두를위한교과서공동대응그룹'이라는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 중이다. 이제 곧 수십 명의 장애인 교원들이 발행사들을 직접 만나 접근성 관련 자문을 하게 된다.

이 사업이 실패하지 않기 위해 교육부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혁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교육 주체 당사자들에게 공감과 설득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교육부는 시간에 쫓긴 나머지 이 중요한 과정을 건너뛰고 있다.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성공을 위해 일정과 예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이대로 추진할 경우 이번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제는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기술 혁신과 교육의 본질, 포용성과 효율성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최적의 균형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AI 기술의 발전은 ‘교육과 기술의 최적의 균형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교육 주체들이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되길 바란다.

나는 이 기회가 단순히 정치인의 치적 쌓기가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더 포용적이고 접근성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가는 모멘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한 방향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당장 내년에 AI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시작하지 못하더라도 이 사업을 통해 미래 교육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더 나은 교육적 선택이라고 믿는다.

교권보호위원회에 출석하고 왔다.

교육지원청에서 열린 교권보호위원회에 출석하고 왔다. 내가 오랫동안 가르친 학생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나에 대한 심각한 모욕적 발언을 했고, 그 내용에는 차마 언급할 수 없는 장애 비하 발언이 포함되어 있다. 심야 시간에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난 발언이라 교육활동 침해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지만 내 해석은 그렇지 않다. 나는 교권보호위원회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위 징계인 전학을 요구했다.

이 사건을 알고 나서 인권위에 전화 상담을 했을 때 인권위 진정을 하더라도 충분히 장애인 차별로 인정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가장 좋은 건 교육지원청에서 적절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이리라. 교육 당국의 자정작용이 인권위나 사법기관을 거치지 않아도 될 만큼 견고하기를….

육아와 시험문제 출제, 장교조 일 등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일들 때문에 이런 일에 감정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당연히 유정에게도 이전까지는 얘기하지 않았고 오늘 회의에 출석하고 돌아와서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얘기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 스스로 피해자가 된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어서 자꾸 회피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장교조 위원장으로 여러 곳에서 장애인교원이 겪는 고충을 얘기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느낀 것은 피해를 당하는 것과 ‘피해자’가 되어서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되어 내게 벌어진 일을 곱씹고 관련 규정을 찾아서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도 장교조 활동 경험이 아니었다면 마음이 더 약해졌을지도 모른다. 장교조 위원장인 나도 막상 이런 일을 겪으면 회피하고 싶은데 다른 장애가 있는 선생님들은 어떨지 생각하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잘못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책임을 지게 하는 건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중대한 잘못에 대해서 면책해 준다면 그것이 더 반교육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을 제대로 지게 만들려면 피해자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피곤하다. 이 글을 쓰는 것도 피곤하다. 내게 벌어진 일을 되새기는 게 무척 괴롭고, 소중한 시간을 이런 데 쓰는 게 아깝다. 그래도 이 또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도 ‘장애인교원’으로 살면서 감내해야 하는 일이라면 감내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