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으로 30년 살아 보니 좋은 점 5가지와 안 좋은 점 5가지

오늘은 김헌용 장애인 등록 30주년이다! 🦯

기념으로 시각장애인으로 30년 동안 살면서 좋았던 점 Best 5와 안 좋았던 점 Worst 5를 꼽아 본다.

참고로 사진은 장애인등록 30주년을 인증하는 복지카드. 최초 발급일이 1994년 1월 12일로 되어 있다. 중요한 개인정보 부분은 캐릭터 이미지로 가려놓았다.


🙌 시각장애인으로 30년 살아 보니 좋은 점 Best 5

  • 군대를 안 가도 된다.
  • 가족과 자가용으로 이동할 때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에 주차할 수 있다. 
  • 주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외모를 신경쓰지 않아도 돼서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
  • 인권과 언어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다.
  •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 시각장애인으로 30년 살아 보니 안 좋은 점 Worst 5

  • 자가용이 있어도 운전을 못한다.
  • 말이 별로 없는 사람과는 어울리기가 힘들다.
  • 직업적으로 능력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 남들과 대중 문화를 소재로 공감대 형성이 안 된다.
  • 밝은 대낮에도 자꾸 잠이 온다.

[팁] 키보드만으로 이모지와 다양한 기호 빠르게 입력하는 방법(알트 입력법 포함)

요즘엔 소셜 미디어나 메신저에서 이모지를 사용하는 빈도가 매우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보드에 별도 키로 존재하지 않는 글머리 기호(•, ‘불릿 기호’ 또는 ‘구분점’이라고도 함)와 같은 흔한 기호를 입력하는 것도 여전히 곤욕입니다. 심지어 작은따옴표(‘ ’) 같은 쉬운 기호도 키보드에 있는 아포스트로피(') 키로 쓰다 보면 앞뒤가 뒤집혀서 속까지 뒤집히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이죠. 😅

문제는 이런 디지털 소통 방식이 저와 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단순히 답답한 것을 넘어 관계의 장벽이 된다는 사실인데요. 마우스 사용이 어렵다 보니 이모지 패널에서 고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

하지만 PC를 사용하는 분이라면 키보드를 통해 다양한 이모지와 기호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단, 기호 입력을 위해선 숫자패드가 있는 키보드가 있어야 합니다! 🌟

아래는 키보드만으로 이모지와 다양한 기호들을 손쉽게 입력하는 방법입니다. 🎉👩‍💻


1. 키보드로 이모지 입력하는 방법


  • 윈도우 사용자는 윈도우 키 + . 또는 윈도우 키 + ;을 동시에 누르세요.
  • 맥 사용자는 Cmd + Ctrl + Space를 누르세요.
  • 이모지 패널이 열립니다. 여기서 원하시는 이모지를 선택하고 엔터를 누르신 후 esc를 누르시면 커서가 있는 자리에 이모지가 나타납니다.
  • 이모지의 카테고리는 최근에 사용한 항목, 웃는 얼굴 및 동물, 피플, 축하 행사 및 물건, 음식 및 식물, 교통편 및 장소, 기호로 나뉘어 있고, 각 카테고리에 수백 개씩 있습니다. 원하시는 이모지를 골라 쓰시면 됩니다.


2. 키보드로 다양한 기호 입력하는 방법


    알트 입력법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영어 알파벳(대문자와 소문자), 숫자, 일반적인 구두점, 특수 문자 등 다양한 문자를 키보드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알트 입력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무위키 기사를 참고하세요!
  • 윈도우 사용자는 숫자패드의 Num Lock을 활성화한 후, Alt키를 누른 상태에서 숫자패드로 숫자를 입력하세요.
  • 예를 들어, Alt 키를 누른 채로 숫자패드에서 149를 입력하고 Alt 키를 떼면 커서가 있는 자리에 글머리 기호(•)가 입력됩니다. 
  • 여는 작은따옴표의 코드는 145, 닫는 작은따옴표는 146이고, 여는 큰따옴표는 147, 닫는 큰따옴표는 148입니다. 말줄임표는 133, 가운뎃점은 183입니다.
  • 맥 사용자는 Option 키를 누르고 다른 키를 조합해서 원하는 기호를 입력합니다. 다만 윈도우에서의 코드와 조합하는 키가 다르다고 합니다.
  • 예를 들어, 글머리 기호(•)를 입력하려면 Option + 8을 누르면 된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해 보진 않았습니다.


제가 사용한 운영체제는 윈도우 10과 11입니다. 하지만 맥에서도 위에 안내한 방법으로 무리 없이 이모지와 다양한 기호를 입력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턴 소셜에서 대화하거나 문서 작성할 때 이모지와 기호를 풍부하게 사용해 보세요! 🌈🌟 모두가 쉽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 봅시다! 💪🌍

[팁] 센스리더로 인터넷 탐색할 때 자주 사용하는 키 13개

윈도우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때 일반적으로 Chrome이나 Edge와 같은 브라우저를 사용하게 됩니다. 저 같은 시각장애인이 인터넷을 사용할 때는 브라우저에 장착된 TTS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웹 페이지와 다양한 인터랙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크린 리더를 사용하는데요. 한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크린 리더는 (주)엑스비전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센스리더입니다.

요즘처럼 다양한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웹에서 구현되는 시대에는 웹 페이지를 탐색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웹 페이지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파악을 해야만 그 웹 페이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래는 센스리더를 사용해서 인터넷을 탐색할 때 알아두면 유용한 키 13개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 13개의 키를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거의 매번 사용하고 있는데 탐색이 매우 빨라져서 편리합니다. (아래 목록은 피드백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하겠습니다)


* 운영체제는 윈도우 10이며 센스리더 탭키 설정 중 ‘브라우저 탭키’ 환경을 기본으로 합니다.


[웹 브라우저에서 자주 사용하는 센스리더 탐색 키 13개]


  • h: 다음 헤딩으로 이동
      - 다음 제목이나 소제목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인터넷 기사나 블로그에서 목차별로 빠르게 이동해야 할 때 유용합니다.
  • 숫자 1~6키: 헤딩1부터 헤딩6까지 다음 헤딩 레벨로 이동
      - 다음 헤딩 레벨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큰 제목부터 작은 제목까지 헤딩1~헤딩6으로 분류되는데 같은 헤딩 레벨 사이를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n: 다음 컨트롤로 이동
      - 다음 주요 컨트롤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버튼, 라디오버튼, 체크상자, 풀다운 메뉴, 편집창 등 주요 컨트롤을 빨리 탐색해야 할 때 유용합니다.
  • l: 다음 링크로 이동
      - 다음 링크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웹 페이지에서 링크만 빠르게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z: 본문 영역으로 이동
      - 해당 페이지의 본문 영역으로 포커스를 한 번에 이동합니다.
  • i: 목록 내에서 다음 항목으로 이동
      - 목록 안에서 다음 항목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목록 안에 텍스트나 컨트롤이 구분점이나 숫자로 나열되어 있는 경우 빠르게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Ctrl + Alt + 방향키: 테이블 내에서 항목 간 이동
      - 테이블 안에서 항목 간에 좌우, 위아래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행과 열이 있는 테이블 안에 텍스트나 컨트롤이 배치되어 있는 경우 빠르게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F2: 다음 편집창으로 이동
      - 다음 편집창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 F3: 다음 검색한 문자열로 이동
      - 웹 페이지 내에서 Ctrl + f를 이용하여 문자열을 검색한 경우 다음 같은 문자열이 있는 위치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 F4: 다음 텍스트로 이동
      - 다음 텍스트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 F6: 다음 브라우저 기능 영역으로 이동
      - 브라우저 내에서 다음 기능 영역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페이지 영역, 툴바, 탭바, 사이드바 등 브라우저 영역 사이를 탐색할 때 유용합니다.
  • Tab키: 다음 링크 또는 컨트롤로 이동
      - 다음 링크나 컨트롤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단 탭키는 센스리더 포커스뿐 아니라 브라우저의 포커스도 함께 이동시킵니다.
  • Ctrl + Tab키: 다음 페이지 탭으로 이동
      - 다음 페이지 탭으로 창을 전환합니다. 브라우저에 여러 개의 페이지 탭이 열려 있을 때 그 사이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위 키는 모두 Shift 키와 함께 누르면 반대 방향으로 포커스를 이동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 헤딩으로 이동하고 싶다면 Shift + h 키를 누르면 됩니다.

[도도에게 들려주는 유정과 헌용의 모험] 프롤로그. 아빠가 도도에게

아빠에겐 여행이 꽤나 어려운 일이야. 흰지팡이가 없으면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가거든. 그런데 가끔은 흰지팡이가 있어도 길을 헤맬 때가 있어. 나갈 땐 괜찮은데 돌아올 때가 문제지. 종종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근처에서 의도치 않게 여행을 하곤 해. 엉뚱한 데 한눈을 팔다 보면 길을 잃는 거지(‘한눈 판다’는 표현이 아빠에겐 적절한지 모르겠구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다’는 뜻으로 쓴 표현이야). 그럴 땐 귀를 쫑긋 세우고 흰지팡이를 고쳐 잡아.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한참을 헤매다 보면 익숙한 지면이 발바닥에 느껴질 때도 있고 끝끝내 방향을 못 찾을 때도 있어. 못 찾을 때면 아빠는 엄마한테 영상 통화를 건단다. 엄마는 “헌용~”하고 외치면서 전화를 받지. 그리곤 카메라를 요리조리 돌려보게 한 후 길을 알려줘. 그럼 아빠의 여행은 안전하게 끝이 나는 거야.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거지.


엄마는 아빠에게 늘 그런 존재였단다. 응, 그래. 내비게이션 같은 존재. 아빠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면 엄마는 길을 안내해주곤 했어. 그런데 엄마도 여느 내비게이션이랑은 조금 달라서 빠른 길을 알려주진 않았단다. 항상 아빠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로 데리고 가곤 했거든. 그렇게 아빠는 엄마랑 많은 여행을 했어. 응, 맞아. 엄마만의 여행 방식 있잖아. ‘유정 투어’. 엄마는 그게 세상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했어. 남들은 목적지를 정하고 어떻게든 거기까지 빨리 가려고 하는데 엄마는 달랐지. 그렇게 갈 거면 택시를 부르라는 거야. 엄마랑 갈 거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해.


앞으로 쓸 글은 그렇게 아빠랑 엄마랑 유럽에 다녀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란다. 2023년 1월이었어. 아빠가 유럽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하나였어. 생애 최초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 아빠는 그것만으로 족했지. 멋지지 않니?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 아빠가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것들이 거기에 있었어. 쾰른대성당의 첨탑과 라인강변. 그리고 그것들은 아빠가 나이가 들면서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졌거든. 엄마랑 같이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어.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단다.


그런데 있잖아. 엄마랑 같이 여행을 간 이상 그걸로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단다. 그때부턴 엄마에게 모든 걸 맡겼어. 신나는 아빠와 엄마의 모험이 그렇게 시작됐지. 이 글은 아빠가 유럽에 있는 동안 그리고 유럽에서 돌아온 후 페이스북에 올린 일기와 엄마가 여행하는 동안 남긴 이미지랑 영상을 주재료로 사용했어. 아빠는 텍스트에, 엄마는 멀티미디어에 강하거든. 아빠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엄마가 명쾌하게 설명해 줄 거야.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도도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여행을 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아마 도도도 같이 다시 가보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땐 우리 셋이 더 즐거운 모험을 떠나자! 훨씬 더 흥미진진한 모험을!

 

2024년 1월

사랑하는 아빠 헌용


2023 성장 리포트: 성찰과 희망

한 해를 결산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2023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작성한 엑셀 일지 덕분에 내가 뭘 하면서 정신없이 보냈는지 정리할 수 있었다.

유정과 한 해를 돌아보며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함께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큰 틀에서 잘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2023년 나의 삶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첫째,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유정은 출산 준비를 위해 2월에 직장을 그만두고 3월부터 근처에 있는 외국어고등학교에 프랑스어 교사로 출강을 나가기 시작했다. 평생 남들의 2배, 3배 인생을 살던 유정에게 강동구라는 테두리 내에서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게 해결되는 생활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삶의 여유를 한꺼번에 가져다주었다.

신체적으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유정에게 너무나 필요한 라이프스타일이었고 그것을 위해 유정은 직장을 그만두는 결단을 해야 했다. 7월에 찾아온 도도는 그런 엄마의 결정에 완벽히 부흥하는 선물이었다.

우리 가족은 셋으로 늘었다. 그리고 도도를 중심으로 우리의 삶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아침과 저녁 배 속에 있는 도도와 대화를 나누고 집밥을 자주 먹고 양가 식구와도 자주 본다. 지난 9월에는 호주에 사는 사촌 누나네가 한국을 방문해서 함께 봤고 11월에는 유정 외가에 가서 김장을 했다. 12월엔 이젠 전통이 된 처가에서의 1박 크리스마스 파티도 했다.


둘째, 유정과 함께하는 퀄리티 타임이 늘었다. 유럽 여행처럼 긴 여행도 있었고 건강을 위한 동네 마실도 자주 나갔다. 공연이나 전시도 정리하고 보니 이렇게 많나 싶을 정도로 많이 보았다.

강동아트센터와 올림픽공원, 어린이대공원 등 생활권에 문화생활이 가능한 곳이 많은 이점을 십분 활용한 덕분이었다. 음악을 취미 또는 직업으로 하는 지인 찬스도 많이 썼다. 도합 18번이나 공연 또는 전시를 보았다. 사실 비싼 티켓으로 가는 공연보다 로컬에서 싸게 본 공연이 더 많았고 그래서 더 좋았다.

동네에서 공연을 본 날엔 어김없이 우리 동네에 처음 생긴 위스키 바인 스킵먼데이에 들렀다. 자주 가다 보니 역시 로컬에서 아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 또한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셋째, 음악 프로젝트가 다양해졌다. 정기적인 합주 연습이 줄어든 반면 단기 프로젝트가 늘었다. 유정과 ‘베란다 긱’ 같은 프로젝트도 시작했고 이전에 함께 근무했던 음악 선생님의 제안으로 교사밴드를 구성해 서울교육청 예술몽땅축제에 출전하기도 했다.

가장 신박한 건 12월에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미국에 살고 있는 지인이 제안한 원격 연주 녹음 프로젝트이다. 지인은 아들과 Son & Dad's Weekly Garageband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전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과 원격 프로젝트를 많이 하신다. 덕분에 유정과 나도 홈 레코딩 장비를 본격적으로 연결하고 녹음했다. (결과물은 1월 중에 나올 예정)

음악은 아마추어치고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평생의 취미는 된다. 특히 음악은 삶이 힘들 때 구원처럼 다가온다. 2023년에도 어김없이 여러 번 나를 절망에서 끄집어내어 삶의 트랙으로 다시 올려놓곤 했다. 아니, 반대일지도 모른다. 풍파가 정신없이 몰아칠 때 잠시 삶의 트랙에서 나를 끌어내어 쉴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넷째, 덕질을 열심히 했다. 내가 평생 열심히 하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2023년은 인공지능의 발전이 티핑 포인트에 도달한 해였다. 하지만 챗봇이라는 텍스트에 기반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찾아올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공지능에서 시작한 덕질은 브라우저 덕질, 음성 기술 덕질, 오디오 에디팅 덕질로 이어졌고 연말에는 테스트해 본 서비스가 50개를 넘었다. 인공지능 쪽에서 유명하다 하는 건 접근성이 허용하는 한 다 테스트해 보려고 노력했다. 챗봇, 이미지 생성기, 동영상 생성기, 그리고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데모 서비스들도 한 번씩은 써 봤다.

그런데 인공지능 툴 10개를 테스트하면 그중에서 실제로 구독료까지 내면서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건 한두 개뿐이다. 그나마도 내가 영어교육에 종사하다 보니 유용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일반인이 일상생활에서 유의미하게 사용하기까지는 아직 2~3년의 숙성 기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런데 이미 완숙 단계에 있는 산업이 있다. 바로 구독 기반 저널리즘 산업이다. 내가 덕질한 또 다른 분야가 바로 이건데 오터레터, 커피팟, 슬로우뉴스 등 한국인에게 맞춤화된 뉴스 플랫폼부터 뉴욕 타임즈이코노미스트 같은 영어권 최강 뉴스 플랫폼까지 모두 열혈 구독자가 되었다. 여기에 Google 앱이 매일 보여주는 맞춤화된 뉴스들까지. 2023년에 나의 뉴스 소비 채널이 모두 디지털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 교사로서 나의 전문성이 어느 정도는 인정받는 한 해였다. 2023년에는 교육공동체벗이 나를 빡시게 단련시켰는데 <별별 교사들> 출간부터 네 차례에 걸친 격월간 오늘의 교육 칼럼 기고를 통해 장애인 교사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확보되었다. 여기에 슬로우뉴스에서 주호민 사건을 다룬 나의 페이스북 글을 칼럼으로 게재해 준 것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님은 나를 성수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루트임팩트의 체인지메이커 컨퍼런스에 데뷔시켜주셨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준 기반은 바로 다름 아닌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장교조)이었다. 장교조는 세계 유일의 장애인교원으로 구성된 교원노동조합이다. 2023년에는 창립 4년 만에 교육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기염을 토했고 연말에는 조합원과 후원회원을 합쳐 회원 수가 200명을 넘겼다. 감사하게도 장교조의 비전과 가치에 공감해 주는 분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젠 교육부와 교육청은 물론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유관 기관들에서도 장교조의 존재를 대부분 알고 있다.

장교조는 양적으로만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단단해지고 있다. 장교조를 운영하는 집행부를 구성하는 선생님들의 장애 유형은 2023년에 시각, 청각, 지체, 뇌병변장애로 다양해졌다. 성별도 남성 60% 여성 40%로 어느 정도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집행부는 장교조의 대표성을 띠기 때문에 조합원 구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 좋은데 그 점에서 대표로서 늘 신경 쓰고 있고 아직까지는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직역 특성상 조합 내에 정신장애가 있는 선생님은 거의 없지만 2023년에는 ADHD가 있는 선생님도 조합원으로 가입해 주셨다.

다양성과 포용성은 교육의 기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장애인이 모인 단체여서가 아니라 다양성과 포용성이라는 가치를 내건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은 보편성을 획득한다. 개별성이 강한 정체성을 가진 선생님들이 장교조 내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조합 내에서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이 2023년 한 해 동안 나를 아주 많이 성장하게 해주었다.


이렇듯 2023년 나의 삶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 증가, 유정과의 퀄리티 타임 증가, 음악 관련 프로젝트의 다양화, 테크놀로지와 저널리즘 덕질, 장애인 교사로서의 활동 기반 확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정말로 많이 성장한 해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성장에는 반드시 아픔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 리포트에는 좋은 이야기만 담았다. 하지만 2023년은 시련과 아픔도 많은 해였다. 도도가 찾아오기까지 우리 부부가 감내해야 했던 고생(주로 유정이 감내하고 나는 서포트하는 입장이었지만), 퀄리티 타임과 여러 프로젝트의 양립을 위해 잠을 줄여가며 무리하다가 세 번이나 몸져누웠던 일, 장교조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내홍, 그리고 랜덤하게 발생하는 여러 사건·사고들. 어쩌면 제3자에게는 그런 이야기들이 훨씬 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좋은 일을 복기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그래서 아마 2023년의 어두운 순간들을 이런 한 편의 리포트로 정리하는 일은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 엑셀 일지에는 찬란한 순간보다 어두운 순간이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미화시키는 인간의 본성에 충실하며 이 리포트를 썼다.

2024년에도 많은 좋은 일과 그것보다 많은 힘든 일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이런 성장 리포트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게는 후회와 고난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게 만드는 유일한 힘, 그러니까 희망이다. 그래서 이 리포트는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희망을 품게 해준 2023년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