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E 리뷰] 두 LG 청소기는 시각장애인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었나? (1부) - 코드제로 A9S 6개월, 로보킹 AI 3개월 사용 후기 (사용법 영상 포함)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 들어가며


아기 도도가 태어난 후 청소는 저희 집에서 매우 중요한 루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청소는 시각장애인에게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꽤나 번거로운 작업인데요. 머리카락이나 작은 먼지는 잘 만져지지도 않고, 더군다나 장난감이 어지러히 널려 있는 바닥에서 우연히 발견한다 해도 집기도 힘들죠. 결국은 자주 청소하는 수밖에 없는데 집안 구조가 복잡해지면 장애물들을 피해 청소를 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번 TFE 리뷰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먼저 1부에서는 저의 청소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준 두 가지 제품인 LG전자의 스틱청소기와 로봇청소기를 심층 해부해 보겠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사용 팁 영상도 올리니 많이 봐 주세요!


🧹🤖 두 청소기를 소개합니다!


먼저 제가 리뷰할 제품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올해 4월 중순, 너무나도 기다리던 LG 무선 스틱청소기가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정식 제품명은 LG 코드제로 오브제컬렉션 A9S(이하 '코드제로').


 📷 이미지 설명: 무광 다크 그레이 색상의 스틱청소기가 올인원 타워 3.0에 거치된 전체 사진. 세로로 긴 타워형 거치대에 본체가 도킹되어 있으며, 타워 측면에 추가 흡입구들이 보관되어 있음. 흰 벽과 밝은 우드 패턴 바닥에 놓여 있어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 가전의 느낌을 줌.


코드제로는 즉시 우리 가족의 최애 가전제품으로 등극했습니다. 제 18개월 된 도도는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머리카락 줍기가 특기인데요.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이 발바닥에 느껴지면 저는 반사적으로 코드제로를 거치대에서 꺼내 듭니다.

코드제로는 250W의 강력한 흡입력을 자랑하는데요, 청소는 순식간에 끝나고, 올인원 타워가 알아서 먼지를 비우고 UVC 살균 기능으로 필터 내 미생물까지 깔끔하게 제거해 줍니다.


두 번째 제품은 7월 말에 설치한 로봇청소기입니다. 정식 제품명은 LG 코드제로 AI 오브제컬렉션 로보킹 올인원 프리스탠딩(이하 '로보킹 AI').


 📷 이미지 설명: 베이지/크림 화이트 색상의 로봇청소기가 올인원 스테이션에 도킹된 전면 사진. 둥근 원반 형태의 로봇청소기 본체가 허리 높이 정도의 네모난 스테이션 하단에 들어가 있음. 전체적으로 모서리가 둥글게 처리되어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밝은 색상으로 인테리어에 자연스럽게 조화됨.


로보킹 AI는 바닥 청소를 완전히 자동화해 주었습니다. 처음엔 '육아하는 집에 로봇청소기는 무용지물'이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완전히 기우였더라고요.

로보킹 AI는 장애물을 매우 잘 피해다닙니다. 특히 한 주에 한 번씩 아기 매트를 모두 걷어내고 집안 전체를 청소할 때 진가가 드러나는데요. 물걸레까지 사용해서 로보킹 AI가 바닥을 닦는 동안 저는 마음 놓고 다른 집안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도도가 로보킹 AI를 졸졸 쫓아다니며 "찡찌기"라고 외치는 것을 보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코드제로와 로보킹 AI 모두 올인원 시스템입니다. 스테이션과 타워가 가구처럼 자연스럽게 공간에 녹아들고, 청소기는 항상 같은 자리에 정돈되어 있죠. 발에 물건이 채이는 것이 무척 신경 쓰이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선 이것도 무시 못할 장점이랍니다.

그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볼게요.


🧹✨ 청소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코드제로 A9S


청소기 성능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사양은 흡입력입니다. 2023년형 코드제로 A9S의 흡입력은 250W입니다. 여기서 W(와트)는 모터의 출력을 나타내는 단위이고 높을수록 강력한 흡입력을 의미하는데요. 전작 시리즈인 A9 시리즈가 140W였던 것을 생각하면 100W 이상 향상되면서 사용자 만족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지표인 본체 무게는 2.47kg으로 시장 최경량 수준입니다. 배터리는 2개가 제공되어 사용 시간이 최대 120분에 달하는데, 일반적으로 배터리 1개만 사용하더라도 60분이라는 넉넉한 시간을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코드제로의 특장점은 바로 이 강력함과 가벼움의 조화입니다. 250W 흡입력은 도도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뻥튀기 부스러기는 물론 웬만한 먼지는 다 빨아들이고, 2.47kg은 한 손으로도 가볍게 들 수 있는 수준입니다. 저는 한 손으로 청소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벽이나 가구를 짚으면서 청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사용하기에도 부담 없는 무게입니다.

이에 더해 흡입구(헤드)도 큰 몫을 하는데요. 단순히 걸레판을 부착하는 것을 넘어 자동으로 물이 공급되고 고온 스팀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스팀 기능을 간략히 설명하면, 물통에 물을 채우고 스팀 배터리를 장착하면 최고 100도의 고온 스팀으로 바닥의 기름때나 굳은 때를 제거해 주는 기능입니다. 거의 상업용 공간 청소 효과를 낸다고 보시면 됩니다. 바닥 위생이 특히 신경 쓰이는 육아 가정에 유용한 기능이죠.

마지막으로,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올인원 타워 3.0의 유용성인데요. 단순한 거치대가 아니라, 자동 먼지 비움, 배터리 2개 동시 충전, UVC LED 살균 기능을 갖췄고, 스팀 물걸레 기능을 위한 스팀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 베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청소기를 올인원 타워에 거치하면 자동으로 먼지통이 비워지고 충전이 시작됩니다. 12시간 주기로 약 2시간 동안 UVC LED가 자동으로 작동해 먼지 봉투 안에 있는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가 증식할 수 없게 깔끔하게 살균합니다. 타워 양쪽 문을 열면 다양한 흡입구를 보관할 수 있어 정리도 간편합니다.

코드제로에 대해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다른 LG 제품과 달리, 본체에서 버튼 조작과 LG ThinQ 앱의 음성 안내가 연동되어 있지 않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워시타워 같은 경우 본체에서 버튼을 누를 때마다 스마트폰에 깔려 있는 LG ThinQ 앱에서 어떤 세탁 코스가 선택되었는지 음성으로 알려줍니다. 그런데 코드제로는 본체에서 버튼을 눌러도 설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청소기 사용 자체에 큰 지장을 주진 않지만, 이런 세세한 연동이 초기 사용법을 익히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 같더라고요.

전반적으로, 코드제로는 알고 보면 사용법이 간단한데 물통 사용법, 스팀 배터리 탈부착, 올인원 타워 사용 등을 익숙하게 하려면 약간의 학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어요! 헷갈릴 만한 사용법은 아래 영상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기능이 있다 보니 코드제로는 사용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퍼포먼스가 나와 주면서 거기에 유용한 기능들을 배워가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죠. 코드제로 덕분에 청소기 돌리기가 번거롭고 오래 걸리는 집안일에서 부담 없고 즐거운 작업으로 바뀌었어요. 청소를 마치고 올인원 타워가 먼지통을 비우는 시원한 소리를 듣자면 제 가슴도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 스스로 학습하는 로보킹 AI의 진화


로보킹 AI는 2024년 8월에 출시된 LG의 프리미엄 로봇청소기입니다. 사실 딱 10년 전에 초기작인 LG 로보킹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요. 윗면에 터치 버튼이 많아 오조작이 잦았고 4년여 전부턴 배터리 수명이 급격히 줄어 더 이상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로봇청소기에 대한 설렘과 걱정이 반반이었는데 막상 사용해 보니 그 사이 많은 발전이 있었더라고요.

먼저 흡입력은 최대 10,000Pa입니다. Pa(파스칼)는 로봇청소기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위로 공기 압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센서는 라이다(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하는 센서), RGB 카메라(색상 정보를 인식하는 카메라), 3D 센서(입체적인 공간 정보를 파악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물걸레는 회전형 2개로 분당 약 180회 회전하고, 카펫 위를 청소핧 때는 물걸레가 9mm 자동으로 들어올려집니다. 배터리는 5,200mAh로 최대 3시간 사용 가능한데 주변 사례를 보니 50평대 아파트 청소에도 한 번 충전으로 넉넉하게 청소를 완료하더라고요. 올인원 스테이션은 코드제로 A9S와 마찬가지로 자동 먼지 비움 기능이 있고, 이에 더해 물걸레 자동 세척·건조, 전용 관리제 자동 투입 기능을 갖췄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보킹 AI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물걸레 청소 기능과 센서 성능이었습니다. 먼저, 물걸레 기능은 그 자체만으로도 제 값을 한다고 느꼈는데요. 저희 집은 마루바닥이라 물 공급량을 '중'으로만 설정하고 사용하고 있는데 청소 후 바닥이 전체적으로 깔끔해지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청소가 끝나면 스테이션에서 자동으로 물걸레를 세척하고 열풍으로 건조해 주어서 청결하게 관리할 수 있고요. LG가 개발한 전용 관리제가 자동 투입돼서 매번 걸레를 빨아줘야 하는 부담도 없습니다. 다만 주기적으로 물통을 갈아주고 걸레판도 세척해줘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일이 늘어나는 부분도 있네요. 그럼에도 청소 후 바닥이 빤들빤들해지는 걸 보면 전혀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센서 성능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라이다 센서, RGB 카메라, 3D 센서 조합으로 가구나 벽은 물론 작은 아기 장난감과 옷가지도 잘 피해다니더라고요. 무엇보다 사람을 잘 인식하고 회피하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한 번은 집에 손님이 와서 좁은 주방에서 성인 4명이 왔다갔다 하는데도 로보킹 AI가 사람들에게 부딪히지 않고 잘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4개의 정밀 센서가 높낮이를 민감하게 감지해 현관이나 화장실에서 떨어지는 일도 없고요. 10,000Pa의 흡입력은 타사 제품과 비교해도 아쉽지 않은 수준이고, 소음은 60-70dB 수준으로 크게 거슬리지 않습니다.

자율 주행 능력은 시간이 가면서 나아지는 걸 확인했습니다. 처음에는 특정 구역에만 오래 머무르고 충전대로 복귀하지 못하는 등 다소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그런데 인내심을 갖고 10회 정도 사용하고 나니 집안 구석구석을 효율적으로 청소하고, 이젠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스테이션까지 정확히 찾아 들어갑니다. 아예 청소 예약을 걸어두고 주기적으로 돌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아마도 주행 능력 향상은 초기 매핑 정보를 바탕으로 라이다 센서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로 도면을 업데이트한 결과로 보입니다. 제품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결과일 수도 있고요. 아무튼 결과적으로 주행 능력은 저희 집에 육아 용품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매우 좋다고 느껴집니다.

이렇듯 로보킹 AI의 강점은 발전 가능성입니다. 2부에서 설명하겠지만, 특히 로보킹 AI의 기능을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선 LG ThinQ 앱 사용이 필수적인데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편의성과 유용성이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고요. 그리고 현재 저는 프리스탠딩 모델을 사용하고 있지만, 추후 수도관 연결이 가능한 환경이 된다면 정수기처럼 자동 급배수 키트를 추가 설치하여 물통 관리 부담을 아예 없앨 수도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제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보안입니다. 다양한 카메라 기술을 사용하는 만큼 LG가 믿을 수 있는 프라이버시 보안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 사에 비해 압도적인 이점입니다. 저희 집은 홈카메라도 이 보안 문제 때문에 국산 제품을 사용하고 있거든요. 프라이버시는 값으로 매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사용 초기에는 이동 속도가 다소 느리다고 느껴졌고, 흡입력 조절 같은 간단한 조작도 LG ThinQ 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보니, 청소기나 저나 서로에게 적응하기 전에는 다소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방 편집 기능 등 유용한 기능은 시각장애인 혼자 사용하기 어렵고 비장애인이라 해도 사용법이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지 않아 대부분 기능의 존재조차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아무래도 LG ThinQ 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진입 장벽이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아래 로보킹 AI 사용법도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로보킹 AI를 총평하자면 '볼수록 매력 있는 로봇청소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로봇청소기는 여러 가전 중에서도 발전 속도가 가장 빠른 카테고리인데요. 그 점에서 한 번 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맞춤화 업데이트할 수 있다는 점, 즉 LG가 표방하는 'UP가전'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습니다.

✅ 나가며


오늘은 저의 육아 생활에서 청소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춰 준 LG의 두 청소기, 코드제로 A9S와 로보킹 AI를 시각장애인의 관점에서 리뷰해 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젠 결코 단순하지 않은 가전이 바로 청소기인데요. 이 리뷰가 청소기 구매를 고민하거나 사용법을 잘 몰라 헤매셨던 분들께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다음 리뷰에서는 청소기를 시작점으로 해서 LG전자만이 가진 포용적 기술에 관해서 짚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가 가전에 대해 이렇게까지 덕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LG는 정말 파면 팔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기업이더라고요.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포용적 소프트웨어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오늘의 리뷰 요약

  • 코드제로 A9S는 구형 모델(140W)에서 250W로 100W 이상 향상된 흡입력과 2.47kg 경량 설계로 한 손 조작 가능함. 즉흥적 일상 청소에 최적화되어 청소를 즐거운 작업으로 만듦.
  • 올인원 타워 3.0은 자동 먼지 비움, 배터리 2개 동시 충전, 12시간 주기 UVC LED 살균(2시간)으로 관리 부담이 최소화됨.
  • 스팀 물걸레는 최고 100도 고온으로 바닥 위생에 효과적이나 급수통과 안심 스팀 배터리 사용법 익히는 데 시간 걸림.
  • 로보킹 AI는 10년 전 모델 대비 큰 발전. 10,000Pa 흡입력, 라이다+RGB 카메라+3D 센서로 작은 장난감과 사람까지 정확히 인식·회피함.
  • 회전형 물걸레(분당 180회)와 올인원 스테이션의 자동 세척·건조로 정기 대청소에 유용함. 다만 주기적인 물통 관리와 걸레판 세척 필요함.
  • 초기엔 특정 구역만 머물러 답답했으나 10회 사용 후 AI 학습으로 효율적 청소 경로를 구축함. 초기 LG ThinQ 앱 진입 장벽은 개선 필요함.
  • LG는 UP가전 전략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지속, 프라이버시 보안 우수, 자동 급배수 키트 추가 가능 등 발전 가능성이 큼.

Perplexity의 AI 브라우저, Comet 20일 사용 후기: 인권위 진정부터 쿠팡 쇼핑까지

Perplexity의 AI 브라우저 Comet이 9월 4일 한국에 공개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0일 정도 사용해 본 경험을 공유합니다. 현재는 Pro 구독자, 대학생 인증 또는 초대장 기반으로 다운로드 및 사용 가능합니다. (* 이 포스팅 이후 10월 2일에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공개됨)


저는 첫날부터 편의성을 느끼고 바로 Chrome 대신 Perplexity의 Comet 브라우저를 기본 브라우저로 설정해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가장 많이 쓰는 기능은 요약이지만, 조금씩 더 대담한 에이전트 기능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이었던 사례는 국가인권위 온라인 진정 접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Comet에게 수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진정에 들어갈 내용을 모두 텍스트로 준비해 놓고 국가인권위 진정 접수 첫 화면에서 어시스턴트를 활성화시킨 후 내용을 붙여넣고 접수를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진정인 이름부터 입력하기 시작하더니 1단계,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까지 넘어가서 마지막 진정 접수까지 눌러 모든 절차를 완료해 버리더라고요. 처음엔 신기해서 보고 있었는데 나중에 한 번도 브레이크 없이 접수까지 누르는 걸 보고 경악했습니다.


Comet이 실수한 건 첨부파일 단계를 사용자에게 묻지 않고 뛰어넘은 것 정도이고, 텍스트의 실수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접수 후 수정이 가능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편의성과 우려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해진 루트를 그대로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진정 결과가 잘 나온다면 AI 브라우저가 장애인 차별 시정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사례가 될 것 같네요.


두 번째로 성공적인 사례는 쿠팡에서 원하는 제품을 찾고 장바구니에 담게 한 일입니다. Comet 브라우저를 열자마자 첫 화면에서 어시스턴트를 호출하고 쿠팡 로그인 페이지로 이동하라고 했습니다. Comet는 전혀 무리 없이 로그인 페이지를 링크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로그인은 제가 직접 했고, 다음부터가 진짜 에이전트의 힘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구매하고 싶은 물건은 사무실에서 쓸 만한 가볍고 개방감 있는 헤드셋이었습니다. 헤드셋은 브랜드도 너무 많고 브랜드마다 모델도 다양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비교해 볼 엄두가 전혀 나지 않는 제품이었습니다. Comet은 Perplexity AI 모델을 사용해서 인기 있는 헤드셋 제품에 관한 정보를 웹과 유튜브 등에서 수집해 결과로 제공해 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쿠팡 내 검색이 아닌 웹 검색을 활용했습니다. 그렇게 헤드셋 리스트가 추려지자 그 다음부터는 제가 원하는 조건을 계속 제시하며 저에게 맞는 제품을 두 개까지 남길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최종 후보 2개를 쿠팡 사이트 내에서 검색하고 정보를 요약해 달라고 했습니다. 쿠팡 내에서 리뷰 점수와 가격대를 보니 최종 결정은 쉽게 내릴 수 있더라고요. Comet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아 구매하기로 한 제품은 1만5천 원대 로지텍 유선 헤드셋이었습니다. Comet에게 해당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으라고 했고 Comet은 문제 없이 수행했습니다. 그렇게 블루투스 동글, 커피, 캔맥주까지 총 5개의 상품을 더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마지막에 담은 제주누보 6캔 같은 경우는 제품 조사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한 번의 프롬프트로 장바구니 담기에 성공했습니다. 결제까지는 시키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해낸 Comet와 저 자신이 대견하더라고요.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AI의 도움을 받아 주문한 상품들이 집에 도착하기 시작하는데 괜히 떨리네요. 온라인 쇼핑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광범위한 조사와 구매까지 한자리에서 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세 번째 성공 사례는 Google 문서 작성입니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3kl52ppSRmzoq9FqXA7R9vwJdoHKcq9NrwTdGbaWt3M/edit?usp=sharing


이 Google 문서는 제가 Comet 브라우저에서 프롬프트 하나로 생성한 문서입니다. 프롬프트는 이렇게 주었습니다.


"Google 문서를 열어서 시민기술네트워크를 응원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고, 접근 권한을 '링크가 있는 모든 사용자'로 설정하여 공유 링크를 복사해 줘." (시민기술네트워크는 AI와 기술을 공익을 위해 활용하고자 모인 사람들의 시민단체입니다)


Comet은 Google 문서 페이지를 열고 제가 시킨 대로 제목과 문서 내용을 스스로 작성한 후 문서 접근 권한을 '링크가 있는 모든 사용자'로 설정하고 링크 복사 버튼까지 눌러 주었습니다. 위 URL은 Comet가 작업을 마친 후 제가 이 편집창에 바로 Ctrl+v로 붙여 넣은 것입니다. Comet, 정확히는 Perplexity에서 제가 설정한 AI 모델이 작성해 준 내용은 "시민기술네트워크의 활동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사회혁신과 기술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 더 포용적인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였습니다. 다소 진부한 내용이긴 하네요. ㅎ


한편, 안타깝게도 Comet이 한컴독스 문서와는 아직 호환되지 않습니다. 한컴독스는 한글과컴퓨터에서 Google 문서를 벤치마킹해서 만든 웹 기반 문서 편집기입니다. 프롬프트는 위 Google 문서를 작성한 것과 같은 프롬프트를 주었고, 한 가지 다른 것은 'Google로 로그인하라'는 정보를 주었습니다. 한컴독스는 로그인 정보를 기억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요.


Comet은 한컴독스 페이지를 찾는 것부터 어려워했습니다. 아마도 웹에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Comet은 한컴독스 페이지를 찾아냈고, 로그인하고, '새 문서 만들기' 버튼을 누르는 것까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서 영역에 내용을 입력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새 문서를 세 개나 만들면서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사례에서는 문서를 15개나 열었지만 실패한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Comet 어시스턴트의 설명은 문서 영역이 읽기 전용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성 가능한 상태였는데 말이죠. 제가 알기로 Google 문서나 한컴독스 문서 모두 비슷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Comet과 한컴독스가 호환되지 않는 이유로 제가 추측하는 것은 한컴독스의 웹 접근성 부족입니다. AI가 웹을 탐색하는 방법은 HTML 코드와 DOM 정보를 보고 탐색하는 것이라 시각장애인이 스크린 리더를 사용해서 웹 탐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인권위 진정이 생각보다 수월하게 됐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웹 접근성 준수는 장애인뿐 아니라 AI 에이전트에게도 유리한 환경을 제공합니다. Comet으로 한컴독스에서 문서 작성이 된다면 한글 문서의 접근성 장벽이 크게 낮아질 것입니다.


여기까지 20일 정도 제가 Comet을 사용하면서 가장 대표적인 성공과 실패 사례를 정리해 봤습니다. 인상적인 순간은 인권위 진정이 첫 단계에서부터 끝까지 되는 것을 업무보조 선생님과 함께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 접수 버튼까지 누르는 걸 보고 함께 탄성을 지른 순간과, 쿠팡에서 제주누보 6캔을 장바구니에 담으라고 시켜놓고 아내 유정과 다른 방에서 아이폰으로 쿠팡 앱을 열어놓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잠시 후 장바구니에 자동으로 제주누보가 담기는 걸 유정이 눈으로 직접 보고 탄성을 지른 순간이었습니다. AI 에이전트의 시대,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습니다.

LG씽큐 MCP 사용 후기

결론부터 얘기하면 대박이다!

작년 말에 LG전자에서 LG씽큐 API를 공개했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올해 7월에 공식 MCP 서버를 Github에 발표했었구나! 챗GPT한테 물어봐서 알게 됨! ㅎ

어차피 MCP 서버가 API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당연한 수순으로 생각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빠른 시기에 만들어 줘서 고마움. 바로 Claude 데스크톱 앱에 연결하고 시험해 봤다.

이제 데스크톱에서 가전과 채팅 가능!

실제 대화

나: 로봇청소기를 시작해 줘.

Claude: 로봇청소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중간 코드 생략)
로봇청소기가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절전 모드에서 깨워서 정상적으로 작동을 시작했습니다.
    
나: 현재 실내 온도는 몇 도야?

Claude: 에어컨을 통해 현재 실내 온도를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중간 코드 생략)
현재 실내 온도는 26도 입니다.
에어컨 센서에서 측정한 상세 정보:
- 현재 온도 : 26°C (78°F)
- 설정 온도 : 25°C (77°F)
- 습도 : 63%
- 에어컨 상태 : 전원 꺼짐
- 공기질 : 좋음 (PM1: 8, PM2.5: 8, PM10: 9)
현재 에어컨이 꺼져 있는 상태에서 실내 온도가 설정 온도보다 1도 높게 측정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MCP를 통해서 LG씽큐 앱에 등록되어 있는 가전을 제어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다.

세밀한 제어는 아직 숙제

어차피 AI가 수행할 수 있는 동작은 MCP 서버 제공자가 정의한 것에 한정되기 때문에 아주 많은 동작을 컨트롤할 순 없다. 단적으로, 로봇청소기를 시작하고 멈추는 단순 동작은 제어 가능하지만, 흡입력이나 걸레 물 분사량을 조절하는 등의 세밀한 조작은 LG ThinQ 앱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 지금 로봇청소기 걸레가 건조 중인데 건조를 중지해 줘.

Claude: 로봇청소기의 걸레 건조를 중지하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먼저 현재 상태를 다시 확인하고 사용 가능한 제어 명령을 확인해보겠습니다.
    (중간 코드 생략)
WAKE_UP 명령을 전송했습니다. 이 명령으로 로봇청소기가 현재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건조 과정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ThinQ Connect API로는 걸레 건조 기능을 직접 제어하는 명령이 제공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 정확한 건조 제어를 위해서는 LG ThinQ 앱을 통해 직접제어하시거나, 로봇청소기의 물리적 버튼을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Claude는 내 요청을 수행하려 시도했지만, 애초에 MCP에 없는 기능이기 때문에 수행하지 못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이미 혁명

그럼에도 각종 기기의 현재 상태, 예컨대 냉장실과 냉동실 온도 등을 데스크톱에서 바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AI 사용자들에겐 큰 편의성 개선이다. 특히 나 같은 시각장애인에겐 더 그렇다.

참고로 개발자들이 스마트홈 허브로 많이 사용하는 홈 어시스턴트에서도 API를 이용해서 LG씽큐를 제어할 수 있다. 또한, 일반 사용자도 LG씽큐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아 홈 탭에서 자체 챗봇인 '챗씽큐'를 통해 가전을 편안한 자연어 대화로 제어할 수 있다.

아마도 곧 일반 소비자에게 출시될 예정인 씽큐온에서도 제어할 수 있는 범위는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씽큐온'은 LG전자가 작년 9월에 생성형 AI 기반 스마트홈 허브가 될 거라고 발표한 제품. 현재 우리 집에 있는 AI 스피커 가운데 국산 네이버 클로바가 가전 제어는 가장 잘하지만 곧 씽큐온이 그 자리를 넉넉하게 차지할 예정. ㅎ)

물론 이 중 가장 광범위한 조작이 가능한 플랫폼은 LG씽큐 앱 그 자체이다. 홈 탭에 있는 챗씽큐 말고 디바이스 탭에서 기기별로 제어하는 UI 말이다. 그 외에 다른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능은 API에 제공된 대표적 기능 몇 가지로 크게 제약된다.

우리는 왜 통합 AI 비서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미 똑똑한 스마트폰 앱 LG씽큐 앱이 있는데, 그리고 LG전자가 직접 가전을 제어할 수 있는 AI 스피커 씽큐온도 개발하고 있는데 뭐하러 MCP까지 필요한 걸까?

그건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비서 한 명쯤은 두고 싶어하는 우리의 심리랑 맞닿아 있다. 그냥 내 일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믿을 만한 비서 한 명, 아니 하나의 AI를 두고 싶은 욕구 말이다.

챗GPT와 Claude는 그에 근접해 가고 있고, 이제 많은 서비스들이 MCP를 통해 AI와 연동되지 않으면 '구식' 취급을 받게 될 거다. 스마트폰 앱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단 얘기.

이번 주 HardFork 에피소드에서도 다뤘듯, 어쩌면 스마트폰은 AI의 등장으로 인해 대중의 머릿속에서 더 이상 '스마트'하지 않게 인식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걸 '앱의 종말'이라고까지 표현하는 건 너무 많이 나가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은 일을 개별 앱이 아닌 AI 플랫폼에서 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MCP가 출시된 이후 여러 MCP 서버를 Claude에 연동해 봤지만, 마침내 가전 제어라는 유용성을 직접 체감하니 그런 확신이 더 생긴다.

고민할 것은?

물론 편해지는 만큼 위험도 더 커진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Claude가 MCP 가지고 뭐 한 가지만 하려 해도 계속 허용 여부를 묻는 건 좋은 조치이다.

더불어 국내에서도 카카오 등에서 MCP 생태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주요 기업들이 국내 플랫폼도 좋지만 Github에 좀 공개했으면 좋겠다. Github이 몇 번 써 보니 비개발자인 나도 유용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더라. 특히 MCP는 Github에 자세히 설명된 것 보고 하나하나 따라서 사용해 볼 수 있었다.


MCP(Model Context Protocol)란?

MCP는 2024년 11월에 Claude를 만든 Anthropic이 오픈소스로 발표한 소프트웨어 간 통신 표준이다. 각종 서비스나 데이터를 LLM 기반 챗봇 안에서 대화 중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대표적으로 Claude 데스크톱 앱에서 지원되고 있지만, 범용 프로토콜이어서 곧 있으면 ChatGPT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될 예정이다.

참고 링크

문제는 교육 거버넌스다 ― 통제하의 자율, 강제하의 포용은 옳은가?

중앙집권적 관료제는 어떻게 교육을 지배해 왔나?

1. 대한민국 교육은 오랫동안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체계 위에 서 있었다.

2. 교육부 장관은 학교장의 인사부터 교과서 선정까지 유·초·중등학교의 교육정책 전반을 관장하며 ‘제왕적 장관’의 권력을 누리고 있다. 선출되지 않은 관료(장관)가 선출된 권력(교육감)을 압도하는 구조는 민선 교육감제 시행 18년째인 현재까지 흔들리지 않고 있다.

3. 시도교육청과 교육지원청, 학교와 교사는 이 위계 구조의 하위에 위치하며, 정책의 집행자로 기능하도록 고정되어 있다. 특히 교사는 ‘말단 행정직’의 지위를 강요받는다.

4. 이러한 구조는 단지 관료제의 역효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사의 자율성과 교육의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정치적 질서로 기능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교육의 본질적 질문조차, 교사가 아닌 교육부의 고시와 승인에 종속된다.

교사는 무엇이 되었나?

5. 교사는 행정 시스템의 말단이 아니라, 공공성과 전문성을 구현하는 시민적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6. 그러나 지금의 체계는 교사의 교육적 판단을 불신하며, 교사들을 ‘지시 이행자’로 전락시킨다.

7. 교육과정 결정권에서 배제된 교사는, 생활지도 권한에서도 학부모 민원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8. 교사의 지도는 존중이 아닌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책임만 남은 자리에서 권위는 철저히 무너졌다.

9. 서이초 사건은 이 붕괴된 위상이 단지 교육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교사의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비극적으로 방증했다.

구조에 대한 도전은 있었다

10. 교사들이 이 구조에 단순히 순응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1.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전교조는 그 저항의 상징이었다. 전교조는 중앙집권적 교육정책의 심장을 뚫는 강력한 힘이었다.

12. 하지만 단극 저항 체제는 집중된 힘만큼이나 쉬운 표적이 되었다. 2010년대 내내 탄압받았고, 그 결과 저항력은 물론 교사 집단 내부의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도 약화했다.

13. 그 대안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교과 기반, 지역 기반의 다양한 노조들이 출연하며 교사들은 저항의 다극화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생활 밀착형 문제 해결과 생존권 투쟁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그 또한 문재인 정권이라는 우산 아래여서 가능했다. 이는 후술할 거버넌스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

14. 어쨌든 이러한 교사들의 다변화한 저항은 단순한 조직 분산이 아니라, 교육부를 정점으로 한 수직적 거버넌스에 대한 조직적 반발이었다.

15. 그러나 전체 권력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그 다극적 저항 또한 제한된 영향력 안에 갇힐 수밖에 없다. 현재 다양한 교사 집단이 존재하지만, 그 요구가 실질적 정책으로 전화되기 위한 제도적 통로는 지금 이순간에도 차단되어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850만 학생과 50만 교원의 요구가 교육부 장관 한 명에게 수렴되는 단극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다.

거버넌스는 참여자들조차 위계화한다

16. 문제는 교육부의 권한 집중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17. 이 수직적 거버넌스는 그 안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에게 위계적 질서를 강제한다.

18. 17개 시도교육청은 중앙의 정책을 ‘현장에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하며, 정책 설계에 있어 실질적 자율권은 없다.

19. 교원노조 역시 정책 테이블의 협의 주체가 아닌, ‘의견 청취 대상’으로만 간주된다. 전술했듯 교사 집단의 다극적 저항 역시 중앙이 설정한 어젠다 바깥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구조 내부의 반응으로만 머문다.

20. 요컨대, 시도교육청은 중앙의 키워드를 반복하거나 모방하며, 자율을 가장하지만 실질적인 어젠다 생산 권한은 부재하다. 교원노조도 정책 담론에 참여하지만, 거버넌스 하부 구조에서 소모될 뿐, 중심을 구성하지는 못한다.

21. 여전히 교육정책의 어젠다 세팅 권한은 조직적으로는 교육부, 지역적으로는 서울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다.

22. 수직적 거버넌스는 비판을 억압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비판마저 위계화하고, 저항조차 체계 안에 포섭한다. 자율은 흡수되고, 저항은 관리된다. 구조는, 견고하게 지속된다.

그런데 그 통제가 포용을 가능케 했다?

23.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불편한 사례를 마주한다.

24. 지금까지 비판해온 이 중앙집권적 거버넌스—그 수직적 통제가 때로는 포용의 진전을 가능케 한 유일한 조건이 된다는 사실이다.

25. 대표적인 사례가 장애인 교원 고용 확대다.

26. 현재 전국에는 5천여 명의 장애인 교원이 존재한다.

27. 이것은 현장의 인식 변화나 자발적 개방의 결과가 아니다. 1990년 제정된 「장애인고용촉진법」이 국가기관의 장애인 고용 의무화의 초석을 놓았고, 2005년, 당시 우원식 의원(현 국회의장)이 발의한 법률 개정이 교원임용시험 체계 내 장애인교원 특별전형 의무화로 이어진 결과다.

28. 법에 따라 2007학년부터 각 시도교육청은 매년 일정 비율의 장애인 교사를 선발하게 되었고, 지금의 수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29. 요컨대, 장애인교원 포용은 의식의 성장으로 실현된 것이 아니라, 법률에 근거한 강제적 개입의 산물이었다.

30. 우리는 이 사례 앞에서 다시 묻게 된다. 정녕 통제 없이 포용은 실현될 수 없는가?

다시 묻는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31.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개별 정책이 아니다.

32. 그 정책들을 반복적으로 만들고 실패하게 만드는, 통치 구조, 즉 위계적 거버넌스에 있다.

33. 이 체계에서는 자율이 허락을 받아야 하고, 포용은 강제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34. 이런 조건부 자율과 억압적 포용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35. 그렇다면,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정책이 아니라, 그 정책을 반복 가능하게 만드는 권력의 구조, 그리고 그 구조를 정당화하는 질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할까?

36. 첫째, 시도교육감협의회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37. 지금처럼 교육부에 건의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법률안 발의, 행정 고시 제안, 교육부의 수용 의무 부과 등이 가능해야 한다. 선출된 권력이 임명된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다.

38. 둘째, 교과서 발행 체계를 자유발행제로 이행해야 한다.

39. 검정제 중심에서 인정제를 확대하고, 장기적으로는 자유발행제까지 이양하는 단계적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교과서는 교사의 철학과 전문성이 구현되는 가장 구체적 장치이며, 그 장치를 누가 통제하느냐가 교육 자율성의 핵심이다.

40. 셋째, 포용 정책을 국가 프레임워크로 제도화해야 한다.

41. 법률이든 고시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포용이 임의가 아닌, 국가의 책임으로 강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이 포용의 규범을 실현하는 데 있을 뿐이다.

누가 해야 할까?

42. 두 말할 것 없이 궁극적 의사결정자인 국회, 특히 민주당이 해야 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말잔치는 그만하자. 민주당이 가장 잘해 온 것은 민주화다. 이제는 교육이라는 마지막 중앙집권 영역에서 실현되어야 할 때다.

43. 다음으로 시도교육감들이다.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라면, 이제 그 권력에 걸맞은 정치적 담대함을 보여야 한다. 교육부의 하위 집행기관이 아니라, 분권형 교육 질서를 설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44. 그리고 교원노조들이다. 이미 구성원의 수로 인해 무시하지 못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 단지 정해진 어젠다를 수정하거나 반대하는 조직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정치적 행위자로 서야 한다.

45. 시대의 과업은, 거버넌스를 해체하고 다시 짜는 일이다.

46. 이재명 정부 교원 정책의 화두가 교사 정치 참정권 보장이다. 하지만 참정권 보장은 단지 몇 개의 법률안 통과로 달성되지 않는다. 구조 안에서 실질적 권리를 쟁취하는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우리가 끝까지 물어야 할 질문

47. 우리는 아직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48. 통제하에서만 허용되는 자율, 강제하에서만 작동하는 포용은 정당한가?

49. 교육 개혁의 열쇠는 정책이 아니라, 구조다. 그 구조를 다시 묻는 일에서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50. 새로운 분권형 교육 거버넌스를 상상하고 설계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AIDT가 던지는 통제와 포용의 역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질 것들 - 민주당의 나태함에 부쳐

AI 디지털 교과서는 왜 실패했나?


1. AIDT의 결정적 패착은, 교육부가 정점에 선 중앙집권적 거버넌스 구조에 있었다.

2. AI가 열어주는 교육의 가능성은 분산성과 탈중심화, 그리고 학습자가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3. 그러나 AIDT의 설계, 심사, 배포의 전 과정에서 교사와 학생은 배제되었다. 분산도, 탈중심도 없었다. 오직 교육부와 출판사·개발사만 있었다.

4. 이에 더해, AIDT는 교육부가 독점해 온 교과서 콘텐츠 편집 권한과 결합해, 교육을 더욱 획일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콘텐츠와 툴이 완전히 결합되며, 중앙통제의 완결판이 된 것이다.

5. 그 결과는 AI를 활용한 교육이 아니라, AI를 명분 삼아 기존 교육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고착화한 것에 불과했다.

6. 압축하면, AIDT 강제는 통제 기반의 거버넌스가 자율적 학습 생태계의 가능성을 압살한 사건이었다.


AI 디지털교과서는 잘못되기만 했나?


7. 그런데 위 주장에는 강력한 안티테제가 존재한다.

8.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중앙집권적이고 통제적인 거버넌스였기 때문에 AIDT 정책에 장애학생과 장애인 교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었다.

9. KERIS가 2023년 9월에 배포한 「AIDT 개발 가이드라인」에는 “제8장 UDL 및 접근성”이 별도 챕터로 들어갔다. 이 내용은 바로 2024년부터 검정 심사 기준이 되었고, 모든 출판사/개발사가 강제로 최소한의 접근성 기준을 충족해야만 하는 강력한 제도적 수단이 됐다. KERIS는 뿔 난 출판사/개발사들을 달래주기 위해 2025년, 개발 업무 담당자들이 실질적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웹 접근성 테스트랩을 개관하기까지 했다.

10. UDL+접근성 기준의 가이드라인 삽입에서 컨설팅 테스트랩 구축까지, 이런 체계적인 포용적 조치는 우리나라의 공공 발주형 기술 사업에서 단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대담한 조치였다.

11. 이 정도의 강제적 조치는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자율적으로 협의하는 느슨한 구조에서는 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획일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였기에 가능했다. 통제 기반 거버넌스가 자율성을 억압했지만, 동시에 포용의 공간을 연 것이다. 우리 사회처럼 생존의 논리가 모든 가치를 덮어버리는 곳에서는, 이런 방식만이 취약계층에게 유일한 안전망이 되기도 한다.

12. 이것이 AIDT가 던지는 통제와 포용의 역설이다.


민주당이 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13. 그렇다면 민주당이 주도하는 AIDT 교육자료 격하 법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4. 민주당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핵심은 ‘교육자료’ 범주를 신설해, AI 디지털교과서 등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 및 전자 저작물을 모두 교육자료 에 해당하도록 규정하는 것이다. 즉, AIDT의 껍데기를 바꾸는 법안이다.

15. 껍데기가 바뀌면 AIDT는 각종 규제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 대신 치열한 시장의 경쟁을 뚫고 스스로 학교로 들어가는 판로를 개척해야 한다.

16. 요컨대, AIDT의 성격을 공공재에서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17. 4일, 이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민주당의 접근은 무엇이 잘못됐나?


18. 나는 이런 민주당의 ‘이전 정권 정책 백지화’식의 무차별적 폐기는 오히려 교육 현장에 혼란만 가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19. 게다가 교육의 공공성보다는 상업성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그 효과성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있겠지만 내가 관심 있는 거버넌스 개선과 포용성 증대 차원에선 분명한 역행이다.

20. 당장 가이드라인에 명시된 UDL 및 접근성 기준을 포함해 학생 및 교사 권리 보장을 위한 각종 규제가 모두 무효화될 것이다. KERIS가 개관한 테스트랩은 문을 닫을 것이고, 출판사/개발사들에 포용적 의무를 부과할 어떠한 정책적 수단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21. 검정심사제로 대표되는 경직된 하향식 교과서 정책을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로 전환하는 근본적 개혁은커녕 현재 교과서 정책의 문제점을 개선할 동력조차 일어버릴 것이다. 현장은 교과서와 교육자료가 따로 노는 개판이 될 것이다.

22. 요컨대, 민주당에겐 AIDT 사태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교육 거버넌스가 지닌 하향식, 중앙집권적 구조를 바꿀 비전도 없으며, 그렇다고 교육 취약계층 학생과 나와 같은 소수 장애인교원을 보호할 의지도 없다.

23. 한마디로 민주당에는 대안이 없다. 나태한 법안뿐이다.


무엇이 남나?


24. 교육자료로 격하된 AIDT는 치열한 시장의 경쟁을 거치겠지만 어쨌든 학교로 들어올 것이다. 이미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진 상태여서 그렇다. AIDT는 살아남을 것이다. 아무런 규제도, 정치적 압력도 받지 않는 형태로.

25. 출판사/개발사들은 AIDT가 평가와 입시에 활용되도록 로비할 것이다. 그래야 수익성을 담보할 수 있으니까. 각종 판촉물이 남을 것이다.

26. 출판사/개발사들은 교육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다. 교육부에는 빚이 남을 것이다. 빚은 다른 교육 예산의 축소를 가져올 것이다.

27. 그리고 장애학생 및 장애인교원의 눈물이 남을 것이다. 국가가 아닌 출판사로, 개발사로, 국회로 향하는 허망한 발길만이 남을 것이다.

28. 새 정부의 교육부 차관은 이것들을 “약간의 혼란”이라 명명했다. 묻고 싶다. 그렇게 가벼이 볼 일인지.

29. 내가 보기에 남을 것은 출판사/개발사들의 비건설적인 경쟁, 공공의 빚, 소수 약자의 절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