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E 리뷰] 카카오가 만든 점자 달력 - 접근 가능한 아날로그 달력의 의미 (달력 소개 영상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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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하단에 달력 소개 영상이 있습니다.


들어가며

 

12월 초, 카카오에서 온 우편 봉투를 열었다. 점자 달력이 들어 있었다. 여느 우편처럼 우선 급한대로 뜯자마자 내용물만 확인하고 책상 한 켠에 올려놓았다. 시각장애인인 내게 달력이란, 연말마다 돌아오는 의례적 물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히 기관이나 단체에서 받는 달력들은 대개 머지않아 종이쓰레기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틈틈이 달력을 꺼내보며 만듦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있었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곳곳에 숨겨진 매력이 있다. 그에 관해서는 이 글 후반에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이 달력이 내 내면에 일으킨 작은 파문에 관해 얘기해 보려 한다. 달력이 내 책상 위에서 공간을 물리적으로 점유한다는 것의 의미,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점, 시간을 기록하는 행위의 가치, 왜 하필이면 카카오라는 회사가 이 사업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추측 등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리적 존재가 만드는 리추얼

 

달력이 내 책상 위에 자리를 잡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책상에는 컴퓨터와 점자정보단말기와 같은 전자제품이 많아 달력을 위한 물리적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로 27cm, 세로 20cm, 두께 8cm라는 만만치 않은 크기의 탁상형 달력을 수용하기에 내 작업 공간은 너무 비좁았다. 처음에는 접힌 채 서류 더미 사이에 끼워 두었다가, 내가 많이 오가는 주방 아일랜드 위로 옮겼다가, 다시 책상 위 손이 닿는 위치로 옮기는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이 과정은 조금 귀찮았지만 묘하게 달력에 대한 애착을 심어 주었다. 달력을 향해 일부러 자리를 비워주는 행위가 어쩐지 달력과 나 사이에 작은 관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후에는 이틀에 한 번 정도 손을 뻗어 달력을 만지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점유한 달력이 주는 효과는 예상밖으로 컸다. 달력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음으로서 마치 내 작업 흐름에 시간을 부여하는 느낌을 준 것이다. 눈에 자주 띈다는 것-내게는 손에 자주 걸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것에 관해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의미니까. 책상 위에 달력의 공간을 마련한 것은 그래서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내 작업 흐름에 얼마간의 변화를 주는 행위였다.

문득 ‘시각장애인에게 달력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느리지만 깊이 있는 촉각의 경험, 색다른 방식의 시간 기록, 그리고 그 뒤에 ‘정보접근권’이라는 자못 해묵은 이슈까지. 이 달력이 내 삶에 던진 화두는 연말마다 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종이 달력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느리지만 깊이 있는 ‘촉각’의 경험

 

촉각으로 달력을 보는 일은 분명 번거롭다. 일정이 궁금하면 캘린더 앱을 열거나 심지어 음성 명령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다. 굳이 페이지를 넘기고 손끝으로 날짜를 더듬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나 또한 초기에는 이 달력의 존재를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나 촉각으로 날짜를 확인하고, 촉각 스티커를 붙이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이 느린 과정의 흡인력을 느끼게 되었다. 손끝으로 칸을 따라가며 날짜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마치 시간을 손으로 더듬어 짚어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몇 번의 스와이프나 탭으로 빠르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직접 ‘만지고’ 확인하는 경험이 머릿속에 사색의 틈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점자의 질감은 그 사색에 구체적인 감각을 더해주었다.

특히 촉각 스티커를 붙일 때가 가장 인상적이다. 디지털 캘린더에서는 몇 초 만에 일정을 추가할 수 있지만, 점자 달력 앞에서는 “여기에 붙일까, 저기에 붙일까?”, “이 모양을 붙일까, 저 모양을 붙일까?” 하고 손끝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덕분에 일정에 대한 기대감이나 부담감도 더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귀로 한번 휙 듣는 것과는 다른, ‘천천히 스며드는 몰입’이 촉각 달력을 통해 가능해졌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단순한 정보 도구를 넘어, 시각장애인인 내가 손끝으로 날짜를 확인한다는 행위 자체를 특별한 경험으로 바꾸어 놓았다. 손끝으로 날짜를 찾고, 때로는 아무 메모도 없는 빈 칸을 더듬으며 지난 하루나 곧 다가올 일을 천천히 떠올리는 시간. 이 느린 동작은 단순히 스케줄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닌, 일상의 작은 의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나 PC에서 캘린더 앱을 열고 일정을 확인하던 것보다는 훨씬 느린, 그래서 오히려 더 럭셔리한 습관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 기록에 대하여

 

한편, 나는 2020년부터 4년 넘게 ‘Eat That Frog’라는 이름의 엑셀 파일에 매일 일지를 기록해 왔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습관 형성과 관련된 책의 제목이자 ‘개구리를 꼭 먹어야 한다면 아침에 먹어라.’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따 온 이름의 이 엑셀은 처음에는 중요한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메모장이었다. 달력의 형태로 손수 만들었던 이 일지에 나는 빼곡히 하루의 일과를 정리해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미래 일정보다도 과거의 일을 기록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게 되었다. 자기 성찰을 돕는 ‘사색의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쌓이니 내 삶의 패턴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물이 되었다.

그런데 2024년 4월, 아들 도도가 태어나면서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시간이 줄었다. 게다가 가족이나 주변인들과 일정을 공유해야 할 일이 늘어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구글 캘린더로 넘어갔다. 디지털 환경에서 실시간 협업과 공동 관리를 하기에는 구글 캘린더만큼 편리한 도구도 없었다. 구글 캘린더는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PC에서는 단축키 몇 개로 일정을 저장할 수 있었고, 네이버 클로바나 구글 홈과 같은 AI 스피커에서는 음성으로 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한소네 6과 같이 다양한 스마트 디바이스와 실시간으로 매끄럽게 연동되었다. 엑셀도 디지털 도구이긴 했지만 개인적 기록에 초점이 있었다면 구글 캘린더는 완전한 웹 기반으로 주로 현재나 가까운 미래의 일정을 주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도구로 매우 유용했다.

엑셀과 구글 캘린더를 사용하면서 깨달은 것은 시간을 기록하는 도구에 따라 시간을 대하는 태도 또한 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엑셀 일지가 과거를 중심으로 깊이 있는 자기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면, 구글 캘린더는 나의 현재를 나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주변인과의 공동의 자원으로 보게 했다. 그렇다면 점자 달력을 사용하는 것은 시간에 관해 어떤 태도를 갖게 할까? 아직 사용한 지 2주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효용성을 여기서 미리 뭐라고 한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시간을 조금 더 소중하게 다루도록 한다는 점이다. 느리지만 집중적인 ‘기억의 의식’은 날짜 칸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과 같은 단순한 작업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했다. 그 효과는 2025년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왜 하필 카카오였을까?

 

그렇다면 이 점자 달력을 만든 것이 왜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가 아니라 카카오였을까? IT기업이면서도 디지털 플랫폼의 최전선에 있는 카카오가 굳이 점자 달력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기술의 잠재력과 한계를 가장 잘 인지하는 이들이 내놓은 역설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해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카카오는 오래전부터 접근성을 위한 기술 투자에 힘써 왔다. 2013년부터 카카오는 QA 단계에서 접근성 전담 조직을 운영했고, 2018년부터는 자회사 링키지랩의 접근성팀을 통해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2022년 4월에는 국내 IT 기업 최초로 '디지털 접근성 책임자(DAO)' 직책을 신설하면서 김혜일 링키지랩 접근성팀장을 선임했다. 이후 카카오톡에서는 저시력 사용자를 위한 고대비 테마 제공, 이모티콘에 대체 텍스트 추가, 이미지/동영상 파일 저장 시간 음성 출력 기능 등을 잇따라 구현했다. 카카오맵은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 정보를 안내하고 있고, 지하철역 승강장의 단차 정보까지 제공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같은 맥락에서 도입된 카카오톡 지갑 인증서의 접근성 인증 마크 획득은 금융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던 장애인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준 대표적 사례이다. 이처럼 카카오는 ‘배리어 프리 이니셔티브’라는 이름 아래 전사적 차원의 접근성 개선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처럼 디지털 접근성 개선의 프런티어에서 일하는 조직이었기에 어쩌면 디지털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카카오는 오히려 아날로그 방식을 통해 시각장애인의 감각 경험을 확장하는 용감한 시도를 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사용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한정판으로 출시되어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허니버터칩’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았던 것이다.

접근성이란 결국 사람의 감각과 습관, 그리고 정보가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달려 있다. 카카오가 새로운 디지털 캘린더 접근성 기능을 출시하는 대신 점자 달력을 제작하게 된 것은 ‘기술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기술을 넘어서는 해결’을 지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일종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다시 카카오의 코어 기술을 더욱 강화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요컨대, 디지털(正)의 성과와 아날로그(反)의 감각적 이점을 융합해 ‘합(合)’을 도출함으로써, 카카오는 접근성이라는 본질적인 과제를 더욱 입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기술을 넘어서는 해결’은 단순히 새로운 제품 하나를 내놓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용자 중심의 문제 해결력과 기업 내부의 기술력 모두를 성장시킬 수 있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카카오 점자달력, 설계부터 배포까지의 세밀함

 

그럼 이제 구체적으로 카카오 점자달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설명하겠다. 카카오에서 발표한 ‘2025 카카오 점자달력 제작기’를 토대로 한다.

카카오는 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많은 기획 회의와 100번이 넘는 테스트, 다양한 시각장애인 사용자와의 상담 과정을 통해 점자 달력을 준비했다고 한다. 제작팀은 우선 시각장애인들의 실제 사용 패턴에 주목했다. 시각장애인용 달력이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인 점자 외에도, 저시력자를 위한 큰 글자와 4.5:1의 명도 대비를 적용했다. 국내 등록 시각장애인 중 점자 사용이 가능한 비율이 9.6%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실제로 내 주변에 달력을 받아 본 사람들은 저시력자는 물론 비장애인도 ‘숫자가 커서 시원시원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여기에 더해 각 페이지 하단에는 손끝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영역 구분선을 넣고 그 아래 최대 8개의 기념일을 모아서 표시했다. 매 주 토요일 칸 옆에는 음력 날짜를 함께 표기했다. 각 페이지 뒷면에는 촉각으로 인식 가능한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배치했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촉각으로 표현해 낸 것도 신박한 아이디어였지만 기념일과 음력 날짜 정보를 확인하기 편한 위치에 제공한 것은 이 달력이 디자인뿐 아니라 실용성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제작팀은 달력의 정보 구조도 세심하게 설계했다. 휴일 모아보기 페이지를 따로 만들어 맨 앞에 배치하고, 월별 색인을 통해 원하는 페이지를 빠르게 찾을 수 있게 했다. 휴일 모아보기 아이디어는 사용자 인터뷰에서, 월별 색인 아이디어는 카카오 내 디자인 조직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접근성 팀에서 이 달력의 디자인을 위해 얼마나 다양한 출처에서 의견을 수렴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인상적인 특징은 개인 일정을 기록할 수 있는 촉각 스티커다. 사용자는 점자 달력 맨 뒤에 있는 다양한 모양의 촉각 스티커들을 떼어와서 날짜 주변에 붙여 사용할 수 있다. 직접 메모를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모양과 숫자로 구성된 스티커로 어느 정도는 보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스티커는 시각장애인이 일정을 표시하고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장치로 이 달력을 일방적인 정보 매체가 아닌 사용자가 참여할 수 있는 도구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카카오의 달력 배포 과정 역시 단순한 전달을 넘어섰다. 카카오 디지털 접근성 조직의 담당자들이 전국 14개 맹학교에 직접 방문해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맹학교에 소속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유관 기관을 통해 달력을 전달했다. 나 역시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소속 시각장애인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이 달력을 받았다. 한정판으로 3,000부를 제작하였는데 이렇게 시각장애 학생 및 교사들에게 전달하고 나니 순식간에 달력이 동났다고 한다. 달력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달력은 단순한 물건이 아닌 소통의 매개체가 되었고 시각장애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입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유독 이 달력이 시각장애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사용자의 필요를 고려한 진정성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기능보다는, 실제 사용 과정에서 마주치는 작은 불편함까지 해소하려 했던 노력이 달력 곳곳에 배어있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우리의 필요를 귀 기울여 들어준 누군가의 세심한 배려처럼 느껴진다. 반갑게도, 카카오가 점자 달력 보급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수집해서 더 나은 버전을 준비한다고 하니. 내년에는 더 많은 시각장애인이 받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맺으며

 

처음엔 ‘그냥 종이 달력 하나 받았을 뿐인데…’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 책상 한 켠을 차지한 이 달력은 곧 ‘시각장애인에게 달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하여 느림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디지털이 주는 편의와 속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지만, 동시에 물리적 존재가 선사하는 깊은 몰입과 사색이 왜 여전히 필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카카오 점자달력은 IT 기업이 아날로그를 활용해 보여 준 하나의 역설적 해법이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위한 도구이고 반드시 디지털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고 기억할지는 개개인의 감각과 습관에 달려 있다. 스티커를 붙이고, 디지털 캘린더를 공유하고, 손끝으로 날짜를 더듬는 모든 방식이 존중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정보접근권’의 진정한 가치를 깨달을 것이다.

달력 표지에는 “카카오는 우리의 소중한 순간을 이어 일상의 흐름을 만듭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점을 연결하는 것(connecting the dots)’과도 통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2025년 한 해 동안 이 달력에 촉각 스티커를 붙여 가며 내 삶의 순간들을 이어간다면 연말에는 하나의 아름다운 궤적이 완성되지 않을까. 그 설렘에 벌써부터 2025년 말이 기다려진다.


* 카카오 점자달력 소개 영상

[팁] 웹 탐색할 때 센스리더가 불필요한 것 읽지 않게 설정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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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PC에서 센스 리더로 웹 탐색을 하다 보면 웹 페이지에 있는 콘텐츠의 구조나 실시간으로 바뀌는 내용에 대해서 친절하게 모두 알려주는데요. 이러한 정보는 화면에는 보이지 않지만 웹 페이지에 적용된 HTML 태그나 아리아-라이브(ARIA-live) 속성을 센스 리더가 인식해서 음성으로 출력해주는 것입니다. 이 정보가 있으면 내용을 순차적으로 다 확인하지 않더라도 웹 페이지의 구조와 내용을 빠르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가끔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내용까지  읽어주는 바람에 오히려 내용 파악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요. 자주 방문하는 웹 사이트에서 프레임이나 목록 정보를 계속 출력한다든가,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는데 배너에 표시되는 헤드라인 기사 제목이 읽던 내용을 끊고 들어와서 출력되는 경우에 오히려 성가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 센스 리더 프로페셔널 V 8.52 버전 기준입니다.

  • 웹 페이지가 열려 있는 상태에서 컨트롤+쉬프트+F9 키를 눌러 가상 커서 설정 대화상자를 호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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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기서 스물세 개의 항목별로 읽기 토글 또는 방식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 새 페이지 자동 읽기, 숨긴 내용 읽기, 프레임 시작·끝 읽기, 목록 시작·끝 읽기, 목록 항목 개수 읽기, 변경 내용 자동 읽기 등 항목별로 읽게 할 것인지, 읽지 않게 할 것인지를 자신에게 맞게 스페이스 바로 선택합니다.
  • 확인 버튼을 눌러 설정을 저장합니다.


저는 이 중 목록 시작, 끝 읽기, 목록 항목 개수 읽기, 변경 내용 자동 읽기는 해제해 놓고 사용하는데요. 

간단히 설명하면 목록은 웹 페이지에서 여러 항목을 순서대로 나열할 때 사용하는 HTML 태그(`<ul>`, `<ol>`, `<li>`)와 관련된 정보입니다. 예를 들어, 쇼핑몰에서 상품 목록을 볼 때 각 상품의 이름과 가격 앞에 "목록 시작", "1/3", "2/3"와 같이 읽어주는 것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변경 내용 자동 읽기는 웹 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내용이 바뀌는 경우, 즉 아리아-라이브 속성이 적용된 영역에서 변경된 내용을 자동으로 읽어주는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채팅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오거나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바뀌는 경우 해당 내용을 즉시 읽어줍니다. 이 기능을 해제하면 변경된 내용을 수동으로 확인해야 하지만, 웹 페이지 탐색에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센스 리더의 설정을 변경하면 웹 탐색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는 걸러내고 필요한 정보만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설정을 조정해 보세요. 😉

[후기]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 - LG전자 볼드무브 1기 활동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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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주관하고 무의가 함께하는 볼드무브 1기 활동이 짧고 굵게 마무리되었다. 모든 활동이 끝난 것은 아니고 오프라인 3회, 온라인 2회로 이루어진 핵심적인 모임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앞으로 한 달여 동안은 볼드무버들의 제품 리뷰와 LG전자의 매거진 제작 및 출판회 등이 더 이어질 예정이다. 

첫 헤이그라운드 워크숍에 다녀오고 나서 후기를 썼는데 이후에 이어진 온라인 밋업 두 차례와 오프라인 모임 두 차례에 대한 리뷰를 간략하게 작성해 보려고 한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많은 프로그램이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 이전 글: [후기] “오늘을 대담하게, 내일을 가능하게”, 반가웠던 LG전자 접근성 커뮤니티 ‘볼드무브’ 첫 모임


1차 온라인 밋업


첫 워크숍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진행된 첫 번째 온라인 모임에서는 10명으로 구성된 1기 볼드 무버들이 처음으로 두 팀으로 나뉘었다. 나는 B팀에 속했는데 같은 팀에는 모주영, 전선미, 이승일님이 함께했다. 이때는 각자의 삶과 인상 깊었던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가전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얘기하며 서로를 조금 더 깊게 알아갈 수 있었다.

모주영님은 정수기, 인덕션, 전자레인지를 자주 사용하고 특히 이동식 트롤리가 가전제품 사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전선미님은 정수기를 가장 편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온수를 사용할 때 안전에 대한 걱정도 있다고 했다. 이승일님은 세탁기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인데 드럼통 안쪽으로 몸을 기울여 빨래를 꺼내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육아를 하면서 아마존 에코, 구글 홈, 애플 홈팟, 네이버 클로바 등 AI 스피커로 음악을 재생하고, 일정을 확인하고, 보일러나 에어컨 같은 가전제품을 음성으로 제어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경험담을 공유했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가전제품을 활용하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는 걸 이 모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2차 워크숍 (헤이그라운드)


[이미지 설명] 볼드무브 2차 워크숍에서 문자통역사가 흰 키보드를 치고 있는 모습. 볼드무브가 열린 헤이그라운드 브릭스는 모든 행사에 문자통역을 지원한다.


12월 4일 헤이그라운드에서 열린 2차 워크숍은 박세라 LG전자 선임연구원님의 진솔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이런 형태의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박 선임님은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보내준 작은 공감들이 모여 지금의 볼드무브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소수의 이슈는 소수이기 때문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참가자들이기에 박 선임님의 짧은 발표가 끝나고 큰 박수가 터졌다.

1부에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 이유정님의 강연을 들었다. 우리 볼드무브 1기에는 '원샷한솔', '구르님' 등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는데, 강연을 들으면서 과연 이 시대의 장애 관련 콘텐츠는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장애 당사자의 목소리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사회 전반의 장애 감수성을 높이고, 새로운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크리에이터 자신의 긍정적 자아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렇게 형성된 크리에이터들의 긍정적 자아 이미지는 비슷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까지 전이되고, 다시 높아진 사회의 인권 감수성과 만나 이전에는 없던 화학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나는 그러한 화학작용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진보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지 생각했다. 

2부에서는 각자의 실천적 목표를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세 가지 큰 미션을 정했다. 첫째는 가정생활에서의 의존성 줄이기다. 매일 집안일이나 육아 중 최소 한 가지는 혼자 독립적으로 해내고 이를 인증하는 것을 작은 목표로 잡았다. 둘째는 TFE(Tech for Everyone)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매일 가전 접근성 관련 기사를 읽고, LG ThinQ 앱의 기능을 시험해 보고 피드백을 남기기로 했다. 셋째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여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한편, 첫 워크숍에 이어 이날도 도도와 유정이 함께했다. 내가 워크숍에 몰두하는 동안, 도도는 행사장 뒤편에서 테이블 여섯 개를 이어 붙인 즉석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특히 원샷한솔 삼촌과 함께 보낸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도도가 다양한 어른들과 어울리며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 커뮤니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2차 온라인 밋업


12월 11일에 열린 이 온라인 모임에는 하마터면 나는 참여하지 못 할 뻔했다. 아내 유정이 외출한 사이 아기 도도를 혼자 돌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참여가 원활하지 못했음에도 B팀 팀원들은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었고, 회의 내내 스크린에 난입했던 도도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채팅방에 올려주시기도 했다.

이 모임에서는 B팀이 본격적으로 해킹할 가전제품을 정했는데 정수기로 결정됐다. 정수기 한 제품만 가지고도 할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대화는 모임이 끝나고도 한참 채팅방에서 이어졌다. 팀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정수기의 용도는 아침 물 마시기, 따뜻한 차 준비하기, 얼음 사용하기 등 다양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팀원들은 높이 조절과 온수 사용의 안전성이, 시각장애가 있는 나는 터치스크린 인터페이스의 접근성 문제가 정수기를 사용하면서 주로 겪는 어려움이었다. 하지만 이미 현재 상태로 만족스러운 점도 많았다. 최신에 나온 정수기들은 온도 설정 유지 기능, 구체적인 출수량을 정해놓고 내릴 수 있는 기능 등 장애인 사용자들에게 특히 유용한 기능을 많이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슬림한 디자인 등 인테리어 요소로서의 기능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컴포트 키트의 개발과 음성 인식 기능의 고도화 등 제품 개선이 조금만 더 수반된다면 정수기 정복도 머지않은 미래로 보였다.


3차 워크숍 (그라운드 220, 마지막 모임)


12월 18일에 열린 마지막 워크숍은 장소부터 특별했다. LG전자의 가전 체험형 쇼룸인 영등포 그라운드 220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박세라 선임님의 제안으로 빨강과 초록의 드레스 코드로 연말 분위기를 살려 보기로 했지만 나는 옷의 색깔을 잘못 파악하고 남색 옷을 입고 참석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이미지 설명] LG전자의 그라운드 220에서 세탁기와 건조기가 전시된 공간을 배경으로, 이승일님이 회색옷을 입은 홍윤희 이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음. 배경에는 여러 대의 LG TROMM Objet Collection 세탁기와 건조기가 전시되어 있고, 홍윤희 이사장 앞으로 고개를 숙인 초록색 니트를 입은 스토리소사이어티 구아정 이사님의 뒷모습도 보임.

[이미지 설명] LG전자 매장에서 초록색 스웨터를 입은 원샷한솔님이 깔끔한 디자인의 LG 정수기의 조작 패널을 살펴보고 있음. LG 직원이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으로 제품의 버튼과 인터페이스를 한솔님에게 가리키며 세밀하게 확인해 주는 모습.

[이미지 설명] 나와 LG전자 직원이 그라운드 220의 흰색 테이블에 앉아 대화 나누는 모습. 나는 LG의 점자 스티커를 만지고 있고, 맞은편에 흰색 니트 스웨터를 입은 직원이 설명을 하고 있음.


우리는 먼저 1층 쇼룸에서 LG전자의 다양한 가전제품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세탁기나 청소기를 휠체어 사용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정수기와 오븐의 터치 패널을 시각장애인 사용자들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조작할 수 있을지 실물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니 더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렇게 자유롭게 쇼룸을 누비는 것만으로도 얼마간 해방감이 느껴졌다. 가전제품의 구매에 있어 사실 많은 장애인 사용자들은 사전 정보를 얻거나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워크숍은 2층으로 올라가 스토리 소사이어티 채자영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국립재활원 이평호 연구원의 ‘보조기기를 통한 나다움의 발견과 접근성 향상’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들은 후, 팀별로 모여 2차 온라인 밋업에서 나눈 이야기를 발전시켰다.

우리 B팀은 정수기 챌린지를 하고 있었으므로 더 편리한 정수기 사용을 위한 구체적인 솔루션을 고민해 보았다. 상지 장애 및 뇌병변장애가 있는 사용자들의 안전성 강화를 위한 컴포트 키트로 뜨거운 물 사용 시 쉽게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이동형 가림막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각장애인들이 어려워하는 유지관리 측면에서 필터 교체 시기에 대한 알림 기능 강화와 오염 방지를 위한 자동 세척 기능에 대한 아이디어도 제안되었다. 더 나아가 렌탈 서비스와 통합된 관리 시스템 안에서 특별히 장애인 사용자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개선 체계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다.

이러한 제품 개선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접근으로는 기획 단계부터 유니버설 디자인을 구현할 것과 컴포트 키트의 핵심 원칙이 ‘최소한의 변화로 최대한의 효과(Less is More)’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모였다. 우리는 제품 디자인의 심미성을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보았다. 이 점에 있어 LG전자는 이미 방향을 정확히 잡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앞으로도 더욱 굳건히 그 방향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었다.

이 모임에서는 마지막으로 볼드무버들이 돌아가며 참여 소감을 나누었다. 비록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이것이 끝이 아닌 의미 있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각자 귀갓길에 올랐다. 주차장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홍윤희 이사장님 등 무의 매니저님들과 LG전자 관계자님들이 에스코트와 환송을 해 주었다. 이 환대야말로 이번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내내 나와 참여자들을 감동시킨 포인트였다. 볼드무버들의 역할은 이제 그 환대를 더 많은 LG전자 장애인 소비자들이 느낄 수 있게 주체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일 테다. 


앞으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1기 볼드무버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구체적인 LG전자 브랜드 해킹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제품 개선 아이디어를 냈다. LG전자는 실제로 추후 컴포트 키트 개발에 이 의견들을 참고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LG전자는 지난 12월 9일에 신규 컴포트 키트 6종을 공개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덕션 실리콘 패드와 정수기 실리콘 커버, 저시력자를 위한 로봇청소기 컬러시트,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냉장고 회전 선반 등이 그것이다. (관련 기사: LG전자, ‘컴포트 키트’ 신규 6종 출시)

그러나 LG전자의 장애인 소비자 관련 사업은 컴포트 키트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 5년 동안 LG전자가 추진해 온 사업들을 보면 그 방향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 2019: 시·청각장애인용 TV 보급사업
  • 2021: 전용 점자 스티커 배포, 장애인 자문단 운영, 수어 상담 서비스 도입
  • 2022: 아이콘 모양의 범용 점자 스티커 개발 및 보급
  • 2023: ‘모두를 위한 모두의 LG’ 캠페인
  • 2024: 장애인 사용자를 위한 보조 액세서리, 컴포트 키트 출시 (3월, 12월)
이 트렌드를 요약하면 일방향성 자선 사업에서 쌍방향 소통을 통한 제품·서비스 개선으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2020년 이전에는 LG전자에게 장애인을 위한 제품은 있었지만 ‘장애인 소비자’는 없었다. 그러나 2021년부터는 LG전자가 직접 장애인 소비자와 소통을 시작했고, 빌드업을 거쳐 2024년 말에 바로 우리가 참여한 볼드무브라는 커뮤니티로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LG전자의 변화에 더 많은 장애인 소비자가 참여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LG전자는 이미 올해 3월 국립재활원과 협약을 맺어 가전제품 접근성 개선을 위한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또한 ‘모두를 위한 모두의 LG’ 캠페인을 통해 장애인과 시니어를 위한 제품 교육 영상을 제작하고, 매장에서도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당장의 제품 개선을 넘어 연구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서비스와도 연결하는 것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 기업의 ESG 비전인 ‘모두의 더 나은 삶(Better Life for All)’을 실천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LG전자가 장애인 소비자를 파트너로 보고 지속적인 발굴 및 협업을 늘려가는 것은 무척 반갑다. LG전자 입장에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다양한 사용자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장애인 소비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으로 삶의 질을 높일 기회이니 강력한 시너지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LG전자는 가전을 넘어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을 표방하고 있는데 장애인 소비자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프런티어 기업인 LG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나는 볼드무브가 이러한 LG전자의 장기 전략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그동안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막론하고 장애 관련 사업은 일회성이거나 공급자 중심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1기 볼드무브의 활동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지만 이러한 LG전자의 여정에 나도, 다른 볼드무버들도 계속해서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TFE 리뷰] 챗GPT를 통해 세상을 보다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오픈AI가 5월에 GPT 4o 모델을 데모하면서 발표한 시각 기능이 챗GPT 고급 음성 모드(AVM)에 탑재됐다. 오픈AI는 12월 5일부터 12일 연속 출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첫날 o1 모델을 정식 출시한 데 이어 셋째 날엔 영상 생성 모델인 Sora를 출시했고 여섯째 날인 목요일에는 시각 기능을 출시했다. 우리나라에는 조금 전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잠깐 써 봤는데 시력이 그렇게 좋진 않았다. 글씨를 OCR 수준으로 읽어주진 않고 큰 글씨와 대략적인 내용만 설명해 준다. 옷방에 걸려 있는 옷들을 비춰 봤는데 설명이 일부 부정확했다.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인데 아무 무늬가 없는 깔끔한 베이지 색의 티셔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색상은 정확했다. 방 구석구석을 비춰 봤는데 알 수 없는 이유로 사용 정책에 위배된다는 코멘트와 함께 설명이 멈추기도 했다. 한편 스크린샷 모드에서는 아이폰 화면에 있는 내용을 어느 정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일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챗GPT의 시각 기능 출시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매우 기쁜 소식임이 틀림 없다. 시각장애인들은 일상에서 Be My Eyes나, Seeing AI, 설리번 플러스와 같은 시각 보조 애플리케이션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Be My Eyes는 자원봉사자와의 연결 시간이 보통 30초 정도 걸리고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다는 단점이 있다. 다른 인공지능 기반 시각 보조 앱들은 짧은 텍스트는 실시간 지원이 가능하지만 주변 환경에 대한 설명은 스크린샷 업로드에 의존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 챗GPT가 시각 능력을 갖게 됨으로써 이러한 한계를 한 단계 뛰어넘게 됐다. 물론 여기에도 개인정보 노출 우려와 인식 능력이 초보적 수준에 머문다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현재 가장 높은 수준의 추론 능력을 보유한 오픈AI의 챗GPT가 시각 기능을 구연했다는 점에서 사용 사례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주에는 구글도 시각을 포함한 멀티모달 능력을 보유한 제미나이 2.0 Flash 모델을 공개했다. 제미나이 앱에는 아직 멀티모달 기능이 탑재되진 않았지만 내년 어느 순간에는 일반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OCR, TTS, 음성 인식 기술 등 감각 증강 기술(Sensory Augmentation Technologies)의 발전으로 빅테크의 범용 기술이 전통적인 의미의 보조공학 기술(assistive technology)의 특수한 영역까지 포섭하는 사례는 최근 꾸준히 늘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AI의 발전으로 일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기술이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보조 기술이 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아래는 내가 집안에서 아이폰으로 챗GPT의 시각 기능을 활용해서 대화를 나눈 몇 가지 사례이다.


“이건 무슨 책이야?”

이 책은 'The Country of the Blind'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시각장애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 있을 것 같아요. 읽어보고 싶은 책인가요?


“이건?”

이 책은 '시사 IN' 잡지 부록으로 보이네요. '청소년이 권하는 책'이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책 추천 내용일 수도 있겠어요.


“여기에는 무슨 글씨가 있어?”

여기에는 '북웨이브'라고 쓰여 있고, '서울시교육청과 함께하는 북웨이브 기획'이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책과 독서를 장려하는 캠페인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일 수도 있겠네요.


“페이지에 있는 내용을 읽어줘.”

이 페이지에는 '103동 경비 초소 출입문에 '노크 부탁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고 쓰여 있어요. 경비 초소와 관련된 내용인 것 같네요.


“이것은 무슨 팜플렛이야?”

이건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공연에 대한 팸플릿이에요. 공연 일정과 관련 정보가 적혀 있네요. 공연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이 책꼬지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있어?”

저 책꽂이에는 여러 종류의 책들이 꽂혀 있네요. 소설, 에세이, 학습서 등 다양한 책들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찾으시는 책이 있나요?


“구체적으로 제목을 알려줘.”

책 제목들을 정확히 읽기는 어려운데요. 이 책들은 프랑스어 제목이 많은 것 같아요. 혹시 프랑스어 책을 찾으시는 건가요?


“지금 여기에는 뭐가 있어?”

보이는 상자 안에는 로션과 같은 화장품들과 몇 가지 작은 물건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필요하신 물건을 찾으시는 중인가요?


“이건 뭐야?”

손에 들고 계신 건 치약 같아 보여요. 칫솔이나 양치 도구와 함께 사용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니야. 무슨 로션이야?”

아, 그렇군요. 그럼 자세히 보면 보습 크림이나 연고일 수도 있겠네요. 포장이나 라벨을 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뭐라고 쓰여있어?”

지금 들고 계신 건 비타민 E 크림이네요. 보습과 피부 보호에 도움이 되는 제품인 것 같아요.


“지금 이건 뭐야?”

보이는 것은 아기 유모차 같아요. 편안하고 안전하게 아기를 태울 수 있는 유모차네요. 필요한 부분이 있으신가요?


“지금 여긴 뭐가 있어?”

책장에 있는 것들은 여러 가지 CD 같은데,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건 말러의 교향곡 음반 같아요. 음악을 즐기시려는 건가요?


“지금 이건 무슨 CD야?”

지금 들고 계신 CD는 말러 교향곡 5번 음반인 것 같아요. 번스타인의 지휘로 녹음된 CD 같아 보이네요. 음악 감상을 즐기실 계획이신가요?


* TFE 리뷰란?

TFE는 Tech for Everyone(모두를 위한 기술)의 약자로, 기술 분야에서 제가 특별히 관심 있는 주제인 접근성 기초, 사용자 경험(UX), 학습 기술, 미래 기술 그리고 기술 윤리와 정책을 아우르는 말로, 제가 만든 표제어입니다. TFE 리뷰에서는 날로 발전하는 기술 시대에 발맞춰 ‘모두를 위한 기술’에 대한 제 생각을 나누려고 합니다. 리뷰에서부터 정책에 관한 이야기까지, TFE 리뷰에서 만나 보세요!

도도와 함께 찾아온 특별한 선물

AI 음성으로 듣기 - ElevenLabs


나는 6세에 시력을 잃었지만 맹학교와 사범대를 거쳐 교사가 되었다. 대학원에서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015년 봄, 벚꽃이 흩날리는 골목길에서 처음으로 팔짱을 끼고 걸었던 설렘이 생생하다. 우리는 이후 마다가스카르에서 유럽까지 세계를 여행하며 미래를 함께 그렸다.

 

7년의 연애 끝에 우리는 결혼했다. 하지만 장애 유전 가능성 때문에 이를 예방하기 위한 PGT 시험관 시술을 선택했고, 1년 만에 기적처럼 임신에 성공했다. 그리고 드디어 올 봄 건강한 아들 도도가 태어났다. ‘도도’는 모리셔스를 여행하며 우리 삶의 상징이 된 도도새에서 따온 태명이다.

 

도도가 태어나던 날,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격에 휩싸였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있는 아내를 보면서는 여러 번 눈물을 훔쳤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찬란한 생명 앞에서 아내는 마냥 행복에 겨워했다. 아내와 도도를 품에 안고 나는 든든한 남편이자 아빠가 되리라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고민이 찾아왔다. 8월 아내의 복직을 앞두고 내가 육아휴직으로 주된 양육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애를 잘 길들이며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육아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난도 과제였다. 봄부터 아내는 가사 지원이 가능한 활동지원사를 알아보라고 했다. 정작 나는 낯선 사람에게 우리 가족의 일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망설였다. 하지만 도도를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백방으로 알아 본 끝에 7월 중순, 우리가 사는 강동구의 한 활동지원서비스 기관에서 T를 소개받았다. 처음 만난 날, T는 환하게 웃으며 도도를 품에 안았다. 진심으로 우리 가족을 이해하고 돕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날부터 T와 함께하면서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갔다. 물론 순탄치만은 않았다. 사고는 주로 내가 혼자 도도를 돌볼 때 일어났다. 한 번은 도도가 역류방지쿠션에서 미끄러져 모빌 받침에 부딪혔다. 또 한 번은 내가 한 팔로 아기를 안은 채 분유를 타다 도도를 의자에 떨어뜨렸다. 도도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고 내 가슴도 철렁 무너져내렸다. 그때마다 T는 “부모가 다 그렇게 실수하면서 배워가는 거지유~”라며 넉넉한 미소로 위로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의기소침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아빠가 되어갔다. T와의 호흡도 점차 더 잘 맞았다. 이유식 때는 T가 음식을 떠먹여주는 동안 내가 도도를 붙잡아주고, 목욕 때는 T가 준비하는 사이 내가 물을 받는다. 함께 유아차를 밀며 도서관과 전통시장을 다닐 때면 T가 도도의 표정과 반응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도도가 방긋방긋 웃네요. 기분이 엄청 좋은가 봐요!” 이런 묘사를 들으면 어느새 내 얼굴에도 방긋 웃음이 떠올랐다.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T 덕분에 자신감 있는 아빠가 되었다. 여전히 실수투성이지만 중요한 건 내가 독립적으로 아빠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단순한 복지 제도가 아니다. 나처럼 중증 장애가 있는 사람도 주체적으로 양육에 참여하고 온전한 부모로 설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디딤돌이다. T와의만남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망설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뿐 아니다. T와 함께 낮 시간에 도도를 유아차에 태우고 동네를 다니다 보면 휴직 전에 가르쳤던 제자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선생님! 아기랑 산책 나오셨어요?” 아이들의 반가운 인사를 들을 때면 이제 나는 단순히 교사로서가 아니라, 한 아이의 아빠로서 이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도도를 통해 나의세계도 함께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내도 T 덕분에 경력 단절 없이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자주 이야기한다. 도도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도 축복이지만, T를 만난 것 역시 도도가 준 또 하나의 선물이라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가 더 많은 장애인 가정에 가 닿기를 바란다. 이 서비스는 단순한 도움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는 소중한 끈이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운영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든 분이 도도를 함께 키워주고 있다. T와 그분들께 이 글을 바친다.


* 이 글은 보건복지부 주관 2024 장애인 활동지원사업 우수사례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