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에 실명하고 가족은 언제나 세상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해 주는 번역자였다. 그중에서도 쌍둥이 형의 존재는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데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 교회며, 시장이며, 병원이며, 미용실이며…. 형과 함께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서 형은 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알려주곤 했다.
고등학생 땐 한참 유행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이누야샤’를 형과 함께 봤다. 형은 150화도 넘는 에피소드 자막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내게 읽어 주었다. 자막만 읽어준 것이 아니라 화면도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한 에피소드를 수도 없이 스페이스바를 누르며 보았던 것 같다.
한참 지난 언젠가 형이 자신은 자막을 읽어 주느라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것 같다고 얘기했을 때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처음 깨닫고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로 내게 가족의 번역 노동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젠 내가 아빠가 되어 그때 형의 역할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도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그림책을 들고 다가온다. 책장을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짚으며 내게 무언가 물어보는 듯한 몸짓을 할 때 과거, 애니메이션을 함께 봤던 형이 떠올랐다.
내가 그랬듯, 정작 도도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를 것이다. 그저 ‘무언가가 있다’라는 느낌만으로 ‘이게 뭔지 모르겠으니 알려 달라’는 엉성한 질문을 온몸으로 내뱉을 뿐이다. 형은 내가 답답함을 표현하면 금세 결핍의 정체를 파악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형처럼 할 수 없다. 나는 도도가 보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감할 준비도 되어 있고 설명 능력도 충분하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 공감과 설명 능력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된다.
그렇다면 나는 도도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도도에게 좋은 번역자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 이런 물음이 수없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이겠지.
도도와 놀며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많이 생각난다. 돌아보면 그 추억은 모두 BGM처럼 깔린 가족의 번역 행위 위에 있었다. 그 추억과 일상을 지나며 형도, 엄마도, 아빠도. 다 내 인생 최고의 번역자가 되어 갔다. 새삼 고맙고 미안하다.
마찬가지로 나도 지금은 어설프지만, 도도에게 둘도 없는 번역자가 되고 싶다. 비록 내가 그림은 보지 못하지만. 글쎄…. 다른 방식으로라도 말이다. 아마도 도도가 조금 더 크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해 주는 번역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인생은 큰 사이클을 돈다. 역할을 바꿔 가며, 서로의 번역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