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겐 여행이 꽤나 어려운 일이야. 흰지팡이가 없으면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가거든. 그런데 가끔은 흰지팡이가 있어도 길을 헤맬 때가 있어. 나갈 땐 괜찮은데 돌아올 때가 문제지. 종종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근처에서 의도치 않게 여행을 하곤 해. 엉뚱한 데 한눈을 팔다 보면 길을 잃는 거지(‘한눈 판다’는 표현이 아빠에겐 적절한지 모르겠구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다’는 뜻으로 쓴 표현이야). 그럴 땐 귀를 쫑긋 세우고 흰지팡이를 고쳐 잡아. 정처없는 나그네처럼 한참을 헤매다 보면 익숙한 지면이 발바닥에 느껴질 때도 있고 끝끝내 방향을 못 찾을 때도 있어. 못 찾을 때면 아빠는 엄마한테 영상 통화를 건단다. 엄마는 “헌용~”하고 외치면서 전화를 받지. 그리곤 카메라를 요리조리 돌려보게 한 후 길을 알려줘. 그럼 아빠의 여행은 안전하게 끝이 나는 거야. 무사히 집에 돌아오는 거지.
엄마는 아빠에게 늘 그런 존재였단다. 응, 그래. 내비게이션 같은 존재. 아빠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고 하면 엄마는 길을 안내해주곤 했어. 그런데 엄마도 여느 내비게이션이랑은 조금 달라서 빠른 길을 알려주진 않았단다. 항상 아빠가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로 데리고 가곤 했거든. 그렇게 아빠는 엄마랑 많은 여행을 했어. 응, 맞아. 엄마만의 여행 방식 있잖아. ‘유정 투어’. 엄마는 그게 세상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라고 했어. 남들은 목적지를 정하고 어떻게든 거기까지 빨리 가려고 하는데 엄마는 달랐지. 그렇게 갈 거면 택시를 부르라는 거야. 엄마랑 갈 거면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해.
앞으로 쓸 글은 그렇게 아빠랑 엄마랑 유럽에 다녀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란다. 2023년 1월이었어. 아빠가 유럽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하나였어. 생애 최초의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 아빠는 그것만으로 족했지. 멋지지 않니? ‘기억을 찾아가는 여행’. 아빠가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본 것들이 거기에 있었어. 쾰른대성당의 첨탑과 라인강변. 그리고 그것들은 아빠가 나이가 들면서 기억 속에서 조금씩 흐려졌거든. 엄마랑 같이 그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어.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단다.
그런데 있잖아. 엄마랑 같이 여행을 간 이상 그걸로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웠단다. 그때부턴 엄마에게 모든 걸 맡겼어. 신나는 아빠와 엄마의 모험이 그렇게 시작됐지. 이 글은 아빠가 유럽에 있는 동안 그리고 유럽에서 돌아온 후 페이스북에 올린 일기와 엄마가 여행하는 동안 남긴 이미지랑 영상을 주재료로 사용했어. 아빠는 텍스트에, 엄마는 멀티미디어에 강하거든. 아빠가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은 엄마가 명쾌하게 설명해 줄 거야.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도도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아빠랑 엄마가 얼마나 흥미진진한 여행을 했는지 알게 될 거야. 그리고 아마 도도도 같이 다시 가보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땐 우리 셋이 더 즐거운 모험을 떠나자! 훨씬 더 흥미진진한 모험을!
2024년 1월
사랑하는 아빠 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