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강북구를 기반으로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각장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 전시회였습니다. 놀랍게도 전시된 작품은 교과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교과서와는 다른 교과서. 바로 대체교과서입니다.
혹시 대체교과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시각장애 학생에게는 점자책이나 확대교과서 같이 다른 형태의 교과서가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선 국립특수교육원(이하 국특원)이 시각장애 학생들을 위한 대체교과서를 17개 시도교육청을 대리해서 제작하고 있죠. 그리고 시각장애 교사들도 바로 그 대체교과서를 가지고 수업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각장애 교사들은 일정 부분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지요.
문제는 저학년으로 갈수록 교과서에 글보다는 그림이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글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학생들은 이미지를 통해 개념을 학습해야 하죠. 그런데 이미지를 점형으로 형상화하는 건 무척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기술입니다. 그래서 국특원이 제공하는 대체교과서는 이 이미지들을 대부분 말로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글을 몰라서 이미지가 수록된 교과서인데 그걸 다시 글로 설명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는 아이들이 중요한 개념들을 제대로 학습할 수가 없습니다. 참다못한 어머님들은 교과서를 새로 만들기로 하셨죠. 그렇게 탄생한 세상에 하나뿐인 ‘교과서’들이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전시회에서는 다양한 시각장애 학생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점자 보도블록 따라 걷기, 시각장애인 스포츠 종목인 골볼 체험하기 등. 부모님들이 이 전시회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셨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이 전시회를 기획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체교과서에 관해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시각장애 초등학생의 어머니인 임민지 님은 저에게 전시된 대체교과서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교과서들은 엄마들 입장에선 다시는 꺼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어요. 제대로 된 교과서가 없는 상황에서 너무 힘들게 만들었거든요. 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에 꼭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들이에요.”
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저의 어머니는 저보다 먼저 점자를 배우셨죠. 그리고 제가 점자를 잘 쓰고 읽을 수 있도록 늘 옆에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나마 점자에 능숙한 교사들이 많은 맹학교에서도 부모님의 지원은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하물며 일반학교에 통합된 시각장애 학생들은 점자를 모르는 선생님들에게 점자책으로 배워야 하는 이중고에 처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사도 볼 수 있고 학생도 읽을 수 있는 대체교과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2025년이면 새로운 교육과정과 함께 새로운 교과서가 도입됩니다. 하지만 또다시 부모님들이 직접 대체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는 제대로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우리 학교와 사회의 책임이 아닐까요?
이제는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교과서를 제작하는 출판사들과 그것을 구매해서 학교로 보급하는 교육청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출판사와 교육청 모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상태에서 국립특수교육원이 수십 곳의 출판사에서 제작하는 수백 종의 교과서를 짧은 기간 내에 대체교과서로 제작하는 불가능한 일을 모두 떠안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글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글로만 설명된 교과서가 제공되는 불합리한 개발 구조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대체교과서가 있어도 선생님의 말에만 의존해서 공부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들에게도 합리적인 형태의 교과서가 제공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전시회는 이번 주 일요일까지 하고 끝나지만 평등한 교육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 진정서 서명 & 공유: 임민지 님과 다른 부모님들이 함께 작성한 시각장애인 교과서 문제점 해결 진정서에 서명하고 주변에 공유해주세요. 여기를 눌러 서명 참여.
• 영상: 시각장애 학생 부모님들이 직접 기획하고 만든 대체교과서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 자막
지금 시각장애 학생 부모님들께서 자주 모임을 만드셨는데 그 자조 모임에서 준비한 전시회에 와 있습니다. 지금 제 옆에 펼쳐져 있는 것들은 일반 교과서들에 우리 시각장애인 저학년 어머님들께서 만드신 정말 독창적인 어떤 대체 교과서들이 있는데요. 지금 이렇게 노트의 점형 또는 촉각 자료로 이렇게 일일이 다 만드셨어요. 학교에서 나눠주는 대체 교과서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머님들께서 직접 다양하게 지금 대체 자료를 만들어 주셨고 이렇게 넘겨보면 이렇게 점자를 배우는, ‘니은’ 모습인 것 같은데요. 이거는 이렇게 점형을 또 이렇게 스티커 같은 걸로 표현을 해 주시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해서 대체자료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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